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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_해녀_김연진_2

by 배경진

(앞에서 계속)


1.

만나자마자 시작된 해녀 김연진의 이야기는 네 시간 넘게 이어졌다. 나이는 30대 중반.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한 다음 NGO(비정부기구)에서 일을 하다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몇 년 뒤 부모가 터를 잡은 제주로 내려왔다. 그때 눈에 띈, 띌 수밖에 없던 해녀삼촌들. 킥복싱과 축구를 꾸준히 할 만큼 운동을 즐기던 건강한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당장 물질을 시작했다. 물론 법환해녀학교에서 기초를 닦았다. 애월읍 구엄리는 중엄리, 신엄리 바다와 붙어 있다. 가파도와 마찬가지로 뿔소라, 성게, 전복, 해삼, 보말을 잡는다. 가파도는 40명이 넘는 데 반해 구엄리 해녀는 단 6명. 그만큼 내 사정, 네 사정 훤히 아는 가까운 식구라는 뜻도 내포된다.


2.

연진의 해녀 경력은 4년. 그나마 다른 일과 병행하므로 실력이 느는 게 더디다. 아직 하군 해녀에 불과한 그녀는 수확이 많지는 않아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바다에 들어가면 몸과 물이 착 밀착되는 그 느낌이 좋고, 집중력이 높아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은 삼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해녀탈의장에서 매일 논다.


3.

화가 최미선에게 딸의 물질을 반대하지는 않았느냐고 하니, 절대 아니었단다. 어릴 때부터 부부가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했으며, 아이들이 행복하면 그뿐. 남편 월급으론 벅찬 유학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손사래를 쳤지만 언제나 아이들의 결정에 따랐다. 연진은 물질만으론 생계가 어려워 제주 국제고에서 보조교사로 일한다. 학기 중엔 주말에만, 방학 땐 언제든 물질을 할 수 있어 그날을 손꼽는다. 외국어를 잘하니 국제적인 모임이 생기면 해녀를 널리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가까운 지역의 젊은 해녀들과 간혹 만나 친분을 쌓아간다. 이야기하는 내내 그녀는 웃고 있다. 별것 아닌 말에도 와하하 웃어젖힌다.


4.

제주흑돈으로 점심을 먹고, 구엄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달자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연진은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가며 물질의 동선을 알려주었다. 가파도는 평평한 바닷가라 걸어서 들어가는 반면, 구엄 바닷가는 절벽 아래가 일터이므로 들고 나는 게 가장 어렵단다. 바닷물에 흠뻑 젖은 망사리를 들어 올릴 때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은다. 해녀 일을 하고 나서 허리와 어깨가 아픈데, 작업환경 때문인 듯하다. 첫 대면부터 헤어지는 시간까지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를 반복했다. 식당에서 카페로 옮기는 그 짧은 동안에도 조수석에서 뒤를 돌아보며 말을 쉬지 않는다. 내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하는 열의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5.

화가는 헤어지는 길에 김장김치를 한 보따리 싸주었다. 묵직하다. 전해지는 마음과 같은 무게다. 딸은 해녀들이 만든 열쇠고리를 건넸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제주의 풍경을 만나 더 새롭고 풍성해진 어머니의 그림처럼 해녀가 된 딸의 물질 기량이 날로 늘고, 물벗도 하나 둘 생겨 덜 외롭고, 삼대가 지내는 하루하루가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화가의 그림에 아직 해녀가 등장하지 않았네. 제주에 있는 동안 화가의 전시가 열린다면 만사 제쳐놓고 가리라. 그땐 푸른 수국이 만개한 화면 위에 ‘곱닥하고 빨강한’ 산호를 찾아나서는 해녀 그림을 그려달라고 청해야겠다.

수산리동백.jpg 최미선, <수산리동백>
연최미선.jpeg 최미선, <연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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