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베프인 순신 삼촌 집에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오가고, 두월 삼촌은 바로 옆집이라 수시로 마주친다. 사투리가 심한 두월 삼촌과 의사소통은 잘 안 되지만 이분은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지 나를 가끔 안아준다. 올레에서 마주칠 때, 운동하러 집을 나서다 마주칠 때. 그러면서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본다. ‘낯선 땅에 발붙이느라 힘들지?’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두 어른 덕에 섬 속의 섬 가파도에 무사히 안착했다.
2.
셋은 종종 바닷가를 걷는다. 오후 3시에서 4시쯤. 하동항의 ‘블루’에서 시작해 서쪽 해안을 따라 상동항을 찍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나이가 제일 많은 두월 삼촌이 항상 앞선다. 뒤에서 보면 척추가 꼿꼿하다. 사투리를 내가 얼른 못 알아들으면 순신 삼촌이 통역을 한다.
3.
가파도에서 걷는다는 건 산책이 아니라 ‘운동’이다. 여기에 오자마자 일산호수공원에서처럼 걷기를 시작했다. 지나가던 삼촌이 물었다.
“어디 가는 거우꽈?”
“그냥 산책해요.”
“뭐라마씸?”
아, 못 알아듣는다. 말을 바꾸었다.
“네, 운동해요.”
삼촌들 머릿속에 사유를 포함하는 느린 산책은 없고 발이 빠른 운동만 있다.
4.
순신 삼촌은 나를 담당하는 자연교사다.
“저기, 세모가시리 보여? 3월 말쯤 되면 막 올라와. 그럼 뜯어다 말려 기름에 볶으면 맛있어.”
“저기, 모자반 보여? 돼지뼈다귀 넣고 몸국 끓이는 재료.”
“저기, 방풍나물. 한동안 풍에 좋다는 바람이 불어 관광객이 다 뜯어가서 씨가 마를 뻔했어. 바람 센 가파도 방풍나물은 맛좋기로 알아줘.”
“저기, 쑥이 올라오네. 겨울에도 영하로 잘 안 내려가니 가파도 쑥은 사시사철이야. 바다에 들기 전에 김 서리지 말라고 물안경을 닦지.”
매일 지나다녔건만 내겐 안 보였던 자연. 아는 만큼만 보인다.
5.
해녀들은 바다에 몸을 던져 농사를 짓는다. 그 농사엔 물때가 중요하다. 썰물 때 파도에 실려 바다로 나가고, 밀물 때 파도에 실려 뭍으로 들어온다. 잔잔한 파도가 바위를 철썩 적신 다음 저만치 물러난다. 삼촌은 손가락을 들어 물이 흐르는 방향, 물이 들고 나는 이치 등을 알려주는데, 잘 모르겠다. 수십 번 맞은 사계절을 통해 그들이 터득한 자연스러운 순리를 고작 몇 달 만에 이해한다는 건 무리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