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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_참_힘들었어요

by 배경진

2월엔 풍랑주의보가 며칠이나 내렸는지 붉은 숫자를 세어보니 13개나 되더군요. 28일 중 거의 절반이지요. 주의보가 내리면 본섬을 오가는 ‘블루레이호’가 운항을 멈추어요. 그럼 배를 운항하는 선사 ‘아름다운섬나라’ 운영에 빨간 불이 켜져요. 관광객이 들지 않으니 섬 안의 카페와 음식점이 문을 닫아요. 그럼 거기도 빨간 불이 켜지겠지요. 내가 머무는 ‘블루’엔 손님이 발길을 뚝 끊어 주인장은 시름이 깊어지지요. “오, 이런, 섬 안팎이 온통 적신호네.”

해녀 삼촌들도 생계에 타격을 받아요. 1월은 뿔소라 금채기였어요. 뿔소라 잡는 걸 잠시 멈추는 거지요. 2월 1일, 금채기가 해제되어 해녀 삼촌들은 잠수복을 손질하고, 테왁을 손질하면서 물질할 날만 고대했는데, 여기도 풍랑주의보 때문에 긴 한숨을 쉬네요. 삼촌들은 8일 일하고 8일 쉬고, 8일 일하고 8일 쉬는 흐름인데, 이번 달엔 파도가 치솟고 바람이 강해서 딱 3일밖에 물질을 못했어요. 해녀 삼촌들, 식당주인들, ‘블루’의 주인장은 입을 모아요. “이상하다, 이상해, 날씨가 이상해. 예년 같지 않아. 이렇게 오래도록 바다가 거칠고, 바람이 거친 건 처음 봐.”


저도 지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1월 말에 일산 갔다 와서는 열흘 내내 주인장과 낚시 고수들이 빠져 나간 텅 빈 집에서 지냈어요. 밥-(한 솥 끓여놓은) 미역국, 밥-미역국, 밥-미역국. 최민식의 ‘만두’가 생각났어요. 삼촌들이 물질을 시작해야 같이 나가서 구경도 하고, 묻기도 하고, 뿔소라 망사리도 들어주면서 분주할 텐데. 섬 전체가 적막강산이라 도무지 의욕이 나지 않더군요. 땅 밑엔 유채와 청보리가 애써서 자라고 있겠지만 아직은 눈 호강을 시켜 주지 않고, 사방은 잿빛이라 눈 돌릴 만한 곳도 없고요. “여기 와서 2월이 제일 힘들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그래도 수확이 있다면 베프 순신 삼촌과 이틀거리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 거예요. 나눈다기보다 삼촌의 구술을 주로 듣는 쪽이지만요. 팔십 평생을 고랑고랑 풀어놓는데, 너무 구수하고, 귀담아 들을 만했어요.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나니 중복되는 내용도 있지만 차곡차곡 쌓아두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어요. 감자를 쪄 먹고, 떡을 쪄 먹고, 호빵을 쪄 먹었어요. 그러고 보니 무언가를 쪄 먹기만 했네요. 방안에서 단내가 난다 싶으면 일어나서 삼촌은 전동차로 늘짝늘짝(느릿느릿), 나는 재기재기(빨리빨리) 뒤따르며 섬을 동서남북으로 종단하고 횡단하면서 현장실습을 했어요. “저기 보라, 여기 보라, 거기 보라.”

*이추룩(이처럼) 힘든 2월을 보냈으니 다가오는 3월은 만화방창한 나날처럼 느껴질 게 분명해요.

유채가 도도록하게 올라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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