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첫 주에 마케팅 전략 보고서를 작성하라고요?

(미친 거 아니야?)

Jul 3. 2025

독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나서, 독일어 공부를 하는 3년 동안 경력 공백이 생겼다. 변화가 빠른 마케팅 업계에서 3년 경력 단절이라니. 정상적인 인지 기능이 탑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무방비하게 (독일어 배운다는 핑계로) 놀고먹을 수 없다.

사실 그동안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언제까지 트렌드를 쫓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마음속에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다른 분야의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업무 성과 = 내 인생의 행복'이 아니라는 것 또한 깨닫고 나니, 예전처럼 커리어가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독일에서 다시 마케팅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고, 딱히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세상은 나를 또 마케팅의 세상으로 끌고 갔다. 그것도 생김새부터 생각하는 것까지 조금도 비슷한 구석이 없는 없는 유럽 시장으로.

내가 아는 독일은 그간 3년 동안 이곳에서 독일인 남편과 살면서 경험한 지극히 주관적인 것들 뿐인데, 독일 - 아니, 유럽 마켓을 담당하여 마케팅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도 3년 마케팅 경력 공백을 깨고?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했다.

어떻게?

마케팅 전략 보고서 덕분에.

입사 첫 주, 회사에서 독일 시장 마케팅 전략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기한은 일주일.

처음 든 생각은?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이 회사에 아는 게 뭐가 있다고,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마케팅 전략을 세우라는 것이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하라면 해야 하는 철저한 피고용인, 을이다. 회사 내부 포털을 열고, 저장되어 있는 파일이란 파일을 다 열어 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들을 검색하고, 데이터들을 수집했다. 분명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마케팅 전략 보고서였는데, 그 과정에서 독일 시장과 독일 마케팅에 대한 지식이 대폭 성장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건강한 식문화를 위한 주방기기를 생산하는 이 기업의 약점과 강점을 몇 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약점 및 위협:

1. 유럽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 및 신뢰도가 매우 낮다.

2. 낮은 인지도에 비해 제품 가격이 비싸다.

3. 독일의 보수적인 식문화가 이 주방기기의 필요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강점 및 기회:

1. 제품 성능 및 품질이 우수하다.

2. 오랜 역사와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3. 독일 시장에서 비건의 영향력이 나날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 기업이 이전에 진행했던 마케팅은 이러하였다.

첫째는, 회사 채널(기업 사이트, 블로그, 뉴스레터, 소셜미디어, 검색 광고 등)을 이용하여 자사 제품 강점, 신제품/세일 소식 등을 홍보

둘째는, 한국에서 성공했던 마케팅 전략을 그대로 사용하여,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를 주 타깃 고객으로 삼고 마케팅

여기서 생기는 문제점 및 의문점

1. 다양한 채널에 컨텐츠를 올리고 광고를 하려면 인력 및 컨텐츠 소스, 자금이 많이 필요한데 그를 충족할 수 없다.

2. 기업 인지도와 신뢰도가 없는 상태에서 회사가 아무리 자기 입으로(회사 채널) 우리 제품이 좋다고 이야기한들 사람들이 그것을 믿을까?

3. 한국 엄마들은 아이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일 수 있다면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과 금전적인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이와 달리, 항상 먹는 음식만 먹고 가계부에서 음식 지출비가 매우 작은편인 독일 엄마들이 과연 새로운 식문화를 받아들이고, 500유로라는 고가의 금액을 기꺼이 지불하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