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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예산이 적다면?

우리 회사의 마케팅 예산은 0원입니다.

by yein

어쩌다 보니 나는 신사업 또는 마케팅을 처음 시작하는 회사에서 일을 한 경험이 많다.


회사는 규모가 있는 곳인데 내가 담당해야 할 시장이 새로 개척해야 하는 곳이라던가,

어느 대기업 신사업 프로젝트에 조인하게 되어 신규 아이템을 마케팅해야 한다던가,

아니면 정말 스타트업 회사라던가.


그래서 언제나 마케팅 예산을 받는데 눈치가 보였고, 마케팅에 돈을 쓰는데 눈치가 보였다.


나라고 억 소리 나는 마케팅 예산을 굴리며 마케팅 업무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해 놓은 마케팅 노하우와 정해진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마케팅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할 사람 없이, 혼자서 기획하고 실행하며 + 마케팅 예산까지 적은 곳에서 마케팅을 하는 것은 정말 고독하고 힘든 싸움이다.


그래도 그런 경험과 시간들이 차곡히 쌓여서 현재의 나를 만들어 주었고, 나의 강점이 되었다. 아킬레스건이 강점이 된 이야기는 아래 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yeinconnect/50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마케팅 예산이 적은 회사에서 일한다면 가장 필요한 마인드셋은 당연히

"선택과 집중"

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회사 웹사이트, 뉴스레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채널을 온드 미디어 (Owned Media)로 삼고 운영하고 있었다.

*온드 미디어 (Owned Media): 브랜드나 기업이 직접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채널로, 직접 제작한 컨텐츠를 별도의 마케팅 비용 지불 없이 게시할 수 있는 곳


이 채널들을 이어받아 운영하다 보니 각 채널의 장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1. 뉴스레터: 뉴스레터는 고객 재방문 및 재구매가 높은 비즈니스에서는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식품이나 화장품 같은 FMCG 제품군(Fast-Moving Consumer Goods, 빠르게 회전되는 소비재) 비즈니스가 있다. 하지만 이 회사의 경우 제품은 가격이 비싸고, 한 번 사서 최소 10년-20년을 쓰는 제품이기 때문이라 고객이 한 번 구매 후 몇 주/개월 내에 다시 웹사이트에 방문하여 재구매를 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


2. 페이스북: 당시만해도 독일 사람들의 페이스북 사용도가 다른 소셜 미디어 채널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따라서 잘 운영하면 분명 좋은 효과가 날 채널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제품을 구매한 후 불만족한 고객들이 해당 회사의 페이스북 채널과 기타 다른 페이스북 커뮤니티에 독일어로 부정적인 글들을 많이 달아놓았고, 그것에 대한 대처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독일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의 부재로 인하여). 이곳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높은 수준의 독일어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된다.


3. 웹사이트: 웹사이트 내에 고객 리뷰, 블로그 등의 컨텐츠가 담긴다면 검색엔진최적화(SEO)에도 도움이 되고, 제품 신뢰도를 높일 수 있어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 자사 웹사이트를 그런 식으로 전혀 활용하고 있지 않다.


4. 인스타그램: 당시만 해도 페이스북이 좀 더 우세하고 우리 회사의 주 타깃고객과 더 맞긴 했다. 하지만 독일인들의 인스타그램 이용률이 나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고, 다양한 연령층이 이용하는 채널이라는 것이 강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채널에 올릴만한 컨텐츠 소스 및 인력 부족이 큰 문제다. 한국 본사에서 받은 몇 안 되는 상품 이미지들을 돌려쓰며 이곳 시장과 동떨어지고, 광고 느낌을 주는 컨텐츠만 무한 반복하며 업로드하고 있다.


> 독일 원어민이 아닌 내가 페이스북을 직접, 제대로 운영하고자 한다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 지금까지 운영하면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 뉴스레터를 그동안 항상 해왔던 것이라고 계속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 결론: 우선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에만 집중하자.


요즘 틱톡들을 많이 한다던데, 유튜브도 하면 좋지 않을까?

그냥 같은 컨텐츠 조금만 편집하고 손봐서 다른 채널에 올리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시간 많이 잡아먹지 않을 것 같은데?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제 글로벌 시대이니 영어로도 컨텐츠를 만들고,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하니 프랑스어 컨텐츠도 만들고, 중국 시장이 크니 중국어 채널도 만들고, 요즘 또 베트남이 뜨고 있다는데 베트남도 한 번 도전해 볼까?


나의 결정은 NO. 아니요, 아닙니다, 안 합니다, 하면 안 됩니다.



마케팅 예산이 적고, 인력이 없는 상황이라면 잘할 수 있는 것, 효율이 높은 것을 선택하고 집중해서 공을 들여야 한다.


이번에 새로 일을 시작하게 될 독일회사 역시, Managing Director가 나에게 최종 오퍼 제안을 하면서 말했다. 면접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모두 현재 회사가 겪고 있는 문제점을 설명한 후, 마케팅 제안을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중 내가 유일하게 지금 운영하고 있는 마케팅 채널이 너무 많다고, 나라면 진짜 내 고객이 있는 채널에 집중하겠다고 했다고. 이어서 말하기를, 사실 어느 채널 하나에서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그런데 또 일하는 사람은 일이 너무 많아서 못하겠다고 힘들어하는 상황 때문에 머리가 아프던 상황이었다고 했다. 소신 있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한 덕분에, 독일인 경쟁자를 제치고 내가 독일회사 마케팅 매니저로 채용이 된 것이다.


이것저것 불안하다고 다 조금씩 하다 보면 일하는 사람은 업무량에 스트레스 받고 지치고, 일을 시키는 사람은 성과가 생각처럼 나오지 않으니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고, 인내심이 요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과 집중'은 마케팅 예산이 적은 회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1순위 마인드셋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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