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아는 사람도 없고, 직장을 구한 것도 아니고, 집을 구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떠나면 엄마 걱정돼서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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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래도 야무져서 잘할 거야. 해보고 안되면 돌아오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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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 알았지?"
28살, 외국계 대기업으로 이직한 지 딱 4개월이 되는 시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 뭐 하나 정해진 것 없었지만 모르니 용감하다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득 안고 2024년 4월, 나는 캐나다 캘거리로 떠났다.
한국이 싫지도 않았고 캐나다가 마냥 희망의 땅으로 보였던 건 아니다. 그저 해외에서 한 번 더 살아보고 싶었다. 나의 첫 해외생활은 23살,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미국 호텔 인턴을 준비한 것이 시작이었고 그렇게 1년의 해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1년 간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행복한 기억만이 남은 탓일까? 인턴을 다녀오고 난 이후, 외국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다. 하지만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내 나이는 어느새 25살, 취업을 준비해야 했다. 남들처럼 돈도 벌고 일도 해서 자리를 잡아야 했으니까.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고 전공과는 동떨어진 IT회사 채용팀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한동안은 해외에 대한 생각이 사그라들었다. 가끔 해외취업에 대해 알아보긴 했으나 인사채용직무로 해외에서 일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았고, 한국에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기엔 그동안의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그사이 이직을 하게 되었다. 같은 IT업계로의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가 외국계회사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해외로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곳에서 일하게 되면 좋을 것 같았다. 혹시 오래 일하게 되면 해외지사로 발령이 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의 인터뷰 끝에 남들이 들으면 다 알만한 외국계 대기업에 이직을 성공했다. 이제 진짜 자리를 잡은 것 같기도 하고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외에 대한 열망은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더 자주 해외취업을 찾아보고 있었다. 오히려 해외지사의 팀원들과 소통하면서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직 4개월 차, 회사에서 예상치 못했던 힘든 일이 시작되었을 때, 캐나다 워킹홀리데이가 2년으로 늘어나고 만 35살까지 확대, 심지어 2번 지원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금이 기회라고 느껴졌고 그렇게 난 또 한 번의 사직서를 내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다.
하지만 28살의 워킹홀리데이는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다. 사실 설렘보다는 불안함이 더 강했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두렵진 않았지만,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생각을 하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변 지인들은 응원해 주었지만 부모님은 반기지 않으셨다. 연고 없는 캐나다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딸을 보니 걱정이 앞서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손녀를 아예 멀리 떠나보내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셨고, 검진 차 들렀던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제 결혼해야지. 또 해외 나가면 어떡하냐'며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그래도 하고 싶었던 거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은 꼭 도전해야 할 것 같았다. 남들처럼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1년 딱 해보고 아닌 것 같으면 서른이 되기 전에 돌아와서 한국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지 생각했다.
미국 경유 후 꼬박 16시간을 날아서 도착한 캐나다에서의 첫날밤은 기대와는 다르게 춥고도 외로웠다. 친구도 만들고 정보도 얻을 겸, 첫 2주는 다운타운에 위치한 후기가 좋은 호스텔로 숙소를 잡았는데 그게 실수였던 걸까. 배정받은 2층 침대는 삐걱거렸고, 따뜻한 봄이었던 한국과는 다르게 캘거리의 4월은 여전히 춥고 매서웠다. 옷을 껴입고 호스텔에서 받은 이불을 덮었지만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찬 기운을 막을 순 없었다. 어쩜 위치도 딱 창문 옆 자리 침대로 배정받다니 이렇게 안 풀릴 수 있을까.
어두운 8인실 2층 침대에 누워있자니, 한국에서의 자신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두려움만이 가득해졌다. 이제 정말 믿을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니 뭔지 모를 감정으로 오른쪽 뺨으로 눈물이 한 방울 흘렀지만, 원래 처음은 항상 무서운 거라고, 밤엔 생각하는 거 아니라고 애써 다독이며 잠에 들었다.
그렇게 나의 캐나다 라이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