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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캐나다 땅덩어리, 내 방 하나쯤은 있겠지

by 김예인

이제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2주 안에 직장과 집을 구하는 것이 목표인데, 그중 더 중요한 건 집. 당장 호스텔 예약이 끝나면 갈 곳이 없기에 그 안에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야 한다. 날도 추운데 길바닥에 나앉을 순 없지. 우선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한국인들이 많이들 찾아본다는 RentFaster,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를 이용해서 방을 찾아보기로 하고 조건을 세워보았다.





1. 여성 전용

캐나다는 혼성인 경우가 흔하다곤 하지만 여성 전용이 마음이 더 편하다.


2. 위치 (C-train 역에서 걸어서 10분 이내)

여름엔 비교적 괜찮지만 캘거리의 겨울은 혹독하다. 눈이 많이 내리고 눈으로 인해서 버스와 트레인의 지연이 잦은 편이다. 트레인은 버스보단 비교적 지연이 덜한 편이어서 최대한 트레인역과 가까운 거리의 집을 찾기로 했다.


3. 최소한의 편의시설 도보 가능 지역 (마트, 카페 등)

차 없이 뚜벅이로 움직일 생각을 하면 편의시설은 무조건 집과 가까워야 한다. 장을 보고 양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래 걸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4. 예산 CAD$1,000 (한화 100만 원)

사실상 가장 중요한 조건, 와이파이, 전기, 수도세가 모두 포함된 월세가 100만 원 이내여야만 했다. 마음 같아선 75만 원으로 잡고 싶지만 혹시라도 마음에 쏙 드는 집이 있다면 100만 원까지는 감수하기로 했다.


5. Furnished (가구 포함)

가구가 포함된 집들도 있지만 포함이 되어있지 않는 집들도 많다. 최소한 침대와 책상이 있는 곳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언제 또 이사를 할지 모르는데 매트리스를 사고 책상과 의자를 사기에는 품이 너무 많이 든다.


6. 신발 벗고 생활하는 곳

집은 무조건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곳이어야 한다. 뷰잉을 다녔던 대부분의 집들이 신발을 벗고 생활을 하는 곳이었지만 간혹 신발을 신고 집 앞으로 들어가는 곳들이 있었다. 그런 곳은 아무리 가격이 좋고 위치가 마음에 들어도 과감하게 패스했다. 실내화를 신는다고 해도 그건 용납할 수 없다.


7. 흡연 X, 대마초 X, 마약 X

비흡연자여서 흡연이 안 되는 집을 찾았고 대마초와 마약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름의 검색을 하고 몇몇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서 뷰잉(계약 전 집을 실제로 방문해서 둘러보는 것) 약속을 잡았다. 집의 형태(하우스, 아파트, 콘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캐나다에서 방을 구할 때는 집주인에게 구구절절 본인을 소개하는 메시지를 함께 보내야 한다. 조건이 좋은 집은 경쟁률이 치열하기 때문에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 월세를 낼 충분한 자금이 있다는 것을 어필하며 뷰잉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선뜻 집을 보러 오라고 하는 집주인도 있지만, 내가 집주인이 생각하는 세입자 조건에 충족하지 않으면 답이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그렇기에 세상 사람 좋은 티를 내며 길게 작성한 자기소개서와 같은 문자를 열심히 집주인에게 발송했다. 인터넷을 뒤져서 꽤 많은 집주인들에게 뷰잉 요청 문자를 돌렸을 때 즈음, 뷰잉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가게 된 첫 뷰잉.

한국에서부터 찜해둔 곳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건, 근처엔 버스만 다닌다는 것과 반지하라는 점. 그래도 방이 꽤나 넓고 깔끔해 보였고 방마다 잠금장치가 설정되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우선 둘러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집은 깔끔하고 방은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넓었다. 다만 반지하여서 신발을 벗자마자 발에 차가운 기운이 확 올라왔다. 4월에 이 정도라면 진짜 겨울엔 방이 얼마나 추울지 예상도 안되었다. 집 자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아쉽게 패스.



다행히 두 번째 뷰잉도 바로 잡혔다.

역과도 멀지 않고 마트도 근처에 있고 심지어 고양이도 있는 집이었다! 한국에서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지냈던 나에게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다만 이곳은 남자도 함께 사는 집이었고 서블렛이었다. 서블렛은 집주인이 세를 주는 것이 아닌, 세입자가 집 전체를 렌트하고 그 세입자가 다른 세입자를 구하는 형식이다. 하청의 하청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서블렛의 경우는 계약서를 작성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하여 과감하게 넘겼다.



세 번째 집은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가격은 $750달러로 75만 원, 집 전체가 따뜻한 분위기였고 대학가 근처랑 학생들이 주로 산다고 했다. 방도 넓었고 집도 나름 깔끔하게 잘 정리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우연히 찾아본 캘거리 범죄 지도에서 그 지역이 유독 범죄율이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상 소음 등의 경범죄 위주여서 위험하진 않아 보였지만 괜스레 빨간색으로 가득한 지도를 보니 선뜻 결정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아쉽게 이 집은 리스트에서 떠나보냈다.

*현재는 어쩌다 보니 범죄지도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지역 중 한 곳인 다운타운에서 살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봤던 지역은 나쁘지 않다. 실제로 현지 친구도 그 지역 살기 좋은 곳이라고 추천을 하더라. 범죄지도를 참고하는 건 좋지만 맹신할 건 또 아닌 듯하다.



그다음으로 갔던 네 번째 집은 마치 모델하우스 같았다(Negative).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같이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고 집이 깔끔하다 못해 비어 보였다. 집주인은 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렇게 집을 관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계속 어필했고 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곧 충격을 받았다. 거실부터 주방, 화장실, 심지어는 방 곳곳에 주의사항 종이가 붙어있었던 것이다. 집주인이 말한 대로 집은 깔끔하기 그지없었지만 집의 룰은 꽤나 엄격했다. 세탁기는 주 1회만 사용가능하며, 주방 및 거실을 포함한 모든 공용공간에서 룸메이트와 대화 절대 금지, 혹시라도 대화를 하고 싶으면 방에서만 가능했다. 혹시라도 음악, 영상을 보고 싶으면 방에서 이어폰을 사용하라고 하시더라. 특히 방에 몇 개씩 붙어있는 경고문구 종이를 보자니 숨이 턱 막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집의 위치가 좋았기에 고민이 되었다. 집에 가서 고민을 해보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니 집주인은 지금 당장 계약을 하지 않으면 기회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더 마음이 조급해져 정신을 차려보니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갑자기 여권사진을 요구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여권을 보여주고 사진을 찍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순간 집주인이 계약금은 현금으로 달라고 하더라. 그때 어디선가 본 현금으로 돈을 내면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니 계좌이체를 이용하라는 글이 생각났고 정신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그렇게 집주인에게 다시 말을 하고 찍은 여권 사진을 삭제하고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집을 뷰잉 하러 갔다. 그리고 이곳은 나의 첫 캐나다 보금자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위에 적었던 조건들과는 아주 거리가 먼 집이었다. 위치는 C-train 역에서 10분을 걸어가면 되는 곳이었는데 집을 가기 위해선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고 그 역은 종착역으로 다운타운까지 가는 데에 약 40-50분의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걸어갈 수 있는 마트와 카페는 전무하며 방엔 가구 하나 없는 집이었다. 가격도 $900으로 큰 메리트가 없는 곳이었는데 역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면서 보이던 로키산맥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성을 잠시 뒤로 하고 감성으로만 선택한 집이었던 것이다.

역시 생각한 대로 되는 일은 없다.




이후에도 몇 개의 집을 추가적으로 뷰잉 했지만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집, 남자들만 생활하는 집이어서 빠르게 패스하고 결국 그중 제일 마음이 이끌렸던 곳으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캐나다에 입국한 지 딱 6일이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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