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생화

by 예이린

장미는 세 번째였다. 지난번 꽃의 가시가 무척 억셌기에 긴장한 채로 하나를 잡았다. 그런데 가시가 거의 없었다. 머리 바로 아래에 자리한 잔가시가 전부였다. 웃음이 났다. 이 하얀 장미의 이름이 ‘몬다이얼’이라는 것과 컨디셔닝이 쉽다는 특징을 알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꽃집에서 모든 작업을 끝낸 결과물을 받는 편리함보다 기다란 상자를 해체하고, 둘둘 말린 신문지를 풀고, 꽉 조여진 고무줄을 끊고, 잎과 가시를 자르고, 쓰레기를 정리해서 분리수거장으로 다녀오는 번거로움이 좋다니, 아이러니했다.


꽃을 직배송으로 받아보게 된 계기는 할머니의 기일이었다. 가족을 떠나보낸 날이며 집에 소국을 두었는데, 할머니는 오월이었기에 고민이 되었다. 가정의 달이기에 꽃집은 여러 기념일로 바쁜 성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카네이션으로 가득한 곳에 소국을 요청하는 게 내키지 않아 직배송 업체를 찾았다. 마침 약속된 배송일을 잘 지키는 업체였고, 꽃을 직접 만지는 시간이 생각보다 좋아 다시 찾았다. 그렇게 일상에 생화가 녹아들었다.


퇴근 후 가사 없는 음악을 들으며 물을 먹은 줄기 끝을 비스듬하게 자르고 화병에 다시 두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담백하고 말끔했다. 로즈데이에는 ‘커버넷’ 장미를 주문했다. 한 아름의 붉은 장미는 큰 비용을 들여야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신이 났다. 그 꽃들로 라운드형 다발을 직접 만들었다. 영상을 보며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땀이 맺혀 있었다. 다행히 자세히 보면 엉성할지라도 원하는 모양이 나왔다. 그날 직접 만든 다발을 들고 부암동 골목길, 고궁 돌담길, 청계천과 포장마차를 쏘다녔다. 꽃이 있어 더 낭만적으로 다가온 이 계절의 낮과 밤이었다.


물론 어려웠던 적도 있다. '맨스필드' 장미는 가시가 정말 날카로웠는데 처음으로 손가락을 베여 피가 났다. 이 종류는 앞으로 찾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컨디셔닝이 마무리될 때쯤 마음은 어느새 차분해져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동그란 화병에 두니, 부끄러워하는 듯한 분홍빛을 띤 게 참 예뻤다. 줄기 하나에 꽃 한 송이가 아니라 여러 개가 달린 스프레이형이라 오목조목했다. '앙증맞은 꽃, 내 손으로 다듬다 보면 피 조금 날 수도 있지.' 너그러워졌다.


‘아름다운 것은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하다.’ 생화를 만지는 시간이 쌓이니, 스물둘에 책에서 읽은 이 문장이 선명해진다. 색과 종류로만 설명되던 꽃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이름으로 보이고, 꽃집에서 받아든 매끈한 장미 뒤에 어떤 손길이 있었는지 그려지고, 무엇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조금만 시선을 옆으로 옮기면 어여쁜 생화가 있다. 먼 훗날의 내 공간에도 직접 손질한 꽃들이 자리하기를 바란다. 계속해서 일상에 색을 입히고, 성실하게 미를 감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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