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소설이 좋아져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묻는 말에 “그러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소설을 읽는다”며 덧붙인 이유가 나이였으니 그럴 만했다. 멀리하던 음식을 어느새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왕왕 들었는데 나에게는 소설이 그런 대상이었으니, 진심이기는 했다.
변화의 시작은 이 문장이었다. “네가 날 좋아하는데, 내가 널 사랑하는데, 보고 싶을 때 언제고 널 볼 수 있는데 내가 뭘 더 바라. 참 힘들게 사는구나, 누가 그렇게 말하면 속으로 비웃었지. 나 사실 힘들지 않은데, 바보들, 그러면서.” 건조한 문체 뒤에는 삶의 바닥이 주는 지지부진함과 그보다 훨씬 빠르게 강인해진 마음이 있었다.
친구가 여행에서 만났다고 했던 작가 이름이 보여 별생각 없이 펼친 책이었다. 그때는 이 부분을 사진으로 남기고 수십 번을 읽을 줄 몰랐다. 이후 외출할 때면 구태여 소설을 챙겼다. 내내 짐만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시공간이 다른 세계에 빠져드는 찰나가 좋아서 한 권은 꼭 가지고 다녔다.
공원에서, 수영장에서, 카페에서 틈이 나면 챙겨온 책을 펼쳤다. 종이 위에는 어떤 인물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결론이 종종 나의 오랜 고민과 일치할 때면 무엇으로도 표현되지 못해 남아 있던 얼기설기함이 스르륵 풀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투사인지 승화인지 분명하지 않은 그 순간들이 쌓이자 일상을 조금 더 가볍게 보낼 수 있었다.
누가 더 잘났거나 못났다는, 이기거나 졌다는 잣대 대신 어떤 헤어스타일에, 어느 옷을 입고, 무슨 습관이 있는지 끊임없이 묘사되는 것도 좋았다. 그곳에는 우열보다 고유성이 짙게 그려졌다. 완독하는 소설이 쌓이며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나의 못난 습관마저 어느 이야기 속 주인공이 지닌 귀여운 특징처럼 느껴졌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이십 대에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았는데 이제는 더 진짜 같다. 어쩌면 사십 대에는 또 다른 장르에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더 부지런히 작가가 구현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 구태여 행하는 조그마한 습관이 근사하고 단아한 시간을 만들어줄 것이기에 오늘도 가방에 한 권을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