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떠남

by 예이린

삼, 이, 일, 일곱 시 정각! 새로고침 후 가장 가까운 주말을 클릭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재빠르게 이후 날짜를 눌렀다. 몇 가지를 체크하고 다음 페이지로 갔다. 성공이었다. 사진 한 장을 보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던 공간이었다. 여러 개의 룸이 있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의 취향은 다른 듯 비슷해서 가고 싶은 방의 인기가 가장 많았다. 마음 졸이며 예약했다.


그날로부터 두 달이 지나 방문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곳이었다. 최근 많은 이들이 찾는 세련된 느낌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시간의 흔적을 차곡히 끌어안고 있었다. 도착한 오후 시간대는 벚꽃이 피는 계절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날씨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대와 하얀 벽에는 햇살이 스며들고, 창밖에는 무성한 잎들이 싱그러운 색을 머금고 있었다. 초록 사이 어딘가 숨은 새들의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청아하게 들렸다. 혹여 틀어둔 음악에서 나오는 건가 싶어 스피커의 소리를 줄여보았다.


늦은 밤 거실로 갔다. 이리저리 머무르던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든 것 같았다. 책을 한 권 골라 읽기 시작했는데 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행을 향한 열정과 가장의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다 시작한 숙소였다고 했다. 참 오랜만에 글과 나만 존재하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눈길이 가는 공간을 찾는 일을 계속해 나가야지’ 생각했다. 아주 바빴던 지난해 써둔 일기 속 ‘내년 이맘때에는 어여쁜 하늘을 마주하도록 시간을 비워두겠다’는 다짐을 착실히 지키고 있었기에, 그날의 마음도 단단히 다질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이후 여러 요소를 고려하다 최적의 상황이 아니면 생각을 거두는 게 익숙했던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비워둔 시간을 구태여 떠나는 일로 채워갔다. 예약이 필요하면 했고, 휴가를 내야 하면 냈고, 알아볼 것이 있으면 찾았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발을 떼기 시작하자 마음이 단출해졌다. 낯설어 보였던 것들도 현장에서 피부에 닿으면 생생하게 반짝였다. 계절의 변화가 촘촘하게 느껴졌고 기억은 다부지게 쌓였다. 봄과 여름이 어느 해보다 선명해졌다.


일렁이는 물 옆에서 하던 독서, 달빛이 내린 밤의 유영, 창밖으로 오직 나무만 보이던 와인바, 호수공원 뒤로 드리우던 노을. 일상의 반경에서 벗어나 마주하는 것들은 황홀한 감정을 안겨주었고, 그런 순간마다 과거의 내가 준비한 선물을 받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도 늦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의 나에게 줄 선물을 준비한다. 주체성은 긍정을 기르기에, 지체 없이 떠났던 사계절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바라는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는 굳건한 신뢰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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