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만남

by 예이린

조금 일찍 도착했다. 초여름이 빚어내는 싱그러운 초록빛이 가게 앞 공원에 펼쳐져 있었다. 테이블 양옆에 의자 두 개가 자리했다. 세 사람이라고 말씀드리자 사장님은 손수 의자를 하나 더 놓아주셨다. 친구나 연인이 아닌 이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생경했지만, 저 멀리 품에 안은 두 개의 꽃다발을 발견하자마자 어색함은 금세 풀어졌다. 흰색 포장지에 거베라와 리시안셔스가 있었다. 그분은 내가 입은 낮은 톤의 노란색 원피스와 꽃이 잘 어울린다며 미소를 띠었다.


“큰일 났네.” 조금 후 도착한 다른 이를 먼저 발견하고 말씀하셨다. 그분 손에도 또 두 개의 다발이 있었다. 전날 꽃시장에 가 잘 어울리는 것들을 골라 직접 만든 조합이었다. 때마침 올라온 내 사진에 자신이 담은 캄파눌라가 있었다며 반가운 표정을 지으셨다. 예이린으로 알게 되어 이제는 본명을 불러주는 분들을 대면한 순간이었다.


사실 집과 관련된 활동을 하며 몇 해를 지나오는 동안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적지 않게 했다. 어느새 팔로워가 훅 늘어난 멤버를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고, 일관된 게시물을 올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할 때도 있었다. 대단하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되뇌면서도, 가끔 튀어 오르는 막연한 의심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한 발짝 떨어져 나의 기록을 살핀 두 사람과 전시 준비를 위해 소통하고, 일을 진행하며 막연함은 조금씩 과거에 머물기 시작했다. 헤매면서도 지속했던 나의 기록에 ‘팬’이라는 단어를 기꺼이 보태고, ‘은은한 감동’을 받아왔다는 어여쁜 표현을 남겨주셔서 이제는 경험하고, 떠올리고, 깨달은 것을 담아내는 일에 오롯한 믿음이 생겼다.


‘저마다 자기 힘으로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라는 시의 구절이 자꾸만 떠오르던 여름날이었다. 전혀 다른 장면을 살아내고 있는 누군가의 내밀한 고민을 정돈된 언어로 듣고, 들뜬 마음으로 이제 막 피어나는 마음의 파동을 전해 받던 시간은 유난스럽지 않았지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잔잔한 여운을 주었다.


“마음의 그래프는 왔다 갔다 해도, 깊이는 깊어질 거예요.”라는 말을 꼭 기억하고 싶다며 메모장을 열던 이들과 집에서의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우연한 관계 또한 느슨하다 팽팽해지기를 반복하겠지만 그 밀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 사이 두 분이 닫지 못하는, 아직은 잘 모르는 어떠한 문을 닫아내는 데 내 힘도 조금이나마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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