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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Feb 25. 2021

후진 없던 초등학생 나와 동기화 중

글 쓰는 일을 해서 글쓰기가 싫어요


얼마 전 친구가 메신저로 사진 몇 장을 보냈다.

방 정리를 하다 우연히 중학교 때 발행된 교지를 찾았다는 것이다.


'얘는 아직도 이런 걸 가지고 있네'

이런 생각하며 받은 사진을 확인했고,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친구가 찾았다는 교지에는 중학생 시절 내가 쓴 글이 실려 있었다. 통일안보 글짓기 대회 최우수상.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3페이지를 꽉꽉 눌러 담은 글을 읽자니 그 시절의 내가 바로 귀 옆에서 땍땍 거리면서 떠드는 느낌이 들었다.


20년 가까이 된 활자를 읽기만 했다니 음성지원이 되다니.

말해도 말해도 할 말이 많았던 그때의 내가 떠오르자 반가움과 동시에 피곤함이 살짝 몰려왔다.

잊고 있던 과거의 흔적을 갑자기 마주하게 될 줄 몰랐고, 그때의 내가 조금 부러워졌다.


이땐 할 말고 많고, 글 쓰는 것도 싫지 않았구나.

지금 나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글 쓰는 게 스트레스인데


요즘의 나는 꽉 막힌 수도꼭지 같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있는데 시원하게 나오지 못하고 넘실넘실 맺혀있기만 하다.

브런치 서랍장에, 메모장에, 일기에 깨작깨작 글을 적어두곤 있지만 무엇하나 속 편히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그분이 오셔서 신나게 쓴 글도 올리기 직전에 읽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발행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문장 구조는 엉망진창에 내용은 왜 이리 유치하고 알맹이가 없는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가도 그걸 확장시키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구성하며 정리할 생각을 하면 막막해서 접기 일쑤였다. 생각하려다가 생각하기 싫어서 금세 포기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렇다고 다른 흥밋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라

마무리하지 못한 글에 미안함을 느끼고 글을 안 쓰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에 일정 시간은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있는다. 셀프 고민 중인 셈이다.


재밌게 하자고 다짐했는데, 모를이다.


그에 반해 뻔하고 유치한 글을 쓰던 과거의 나는 후진이 없었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게 있으면 그냥 썼고, 수정도 거의 하지 않았다. 쓰는 행위가 재밌으니까 하고 끝맺음을 지으면 미련 없이 보낸다. 다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데 왜 한 발자국 내미는 것, 타자 한 번 치는 게 무거워졌을까?


스스로 즐겁게 하자고 되뇌는데도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사실 재밌게 하자고 되뇌는 그 순간 게임 끝이다.

진짜 즐거울 땐 즐거워지자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필요 없으니 말이다.


글쓰기가 좋아서 문예창작과를 나왔고, 일반 직장인보다는 글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데, 어째 글과 가까워지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정말 모럴이다. 처음 글에 재미를 느꼈던 때를 추억하며 초심을 불태워봐야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겨울방학이었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 안 나지만 그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시절의 초등학생들이 그러하듯 한가득 숙제를 안고 방학을 맞이했고, 방학이 오부 능선을 지나가는 시점까지 숙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매일 놀러 다니며 충실하게 시간을 허비했고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직전의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이쯤 되면 숙제를 해야 하지 않겠니?' 하는 부모님의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방학숙제 목록을 펼쳤을 때 특이한 숙제가 눈에 들어왔다.


[동화 쓰기]


숙제에 왜 이런 게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국영수 외에도 창의력 발달을 위해 다양한 체험용 숙제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필수는 아니었고, 독후감, 과학체험일지 등 몇 가지 숙제와 함께 선택사항에 있는 숙제였다.

책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한 번도 글 쓸 생각을 해본 적 없던 초등학생의 눈에 이상하게 그 숙제가 계속 밟혔다.


'이거 하면 좀 편하려나?'


잠시 고민하다 큰 어려움 없이 동화 쓰기 숙제를 선택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동화 쓰기를 선택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단 비교적 단순한 숙제들은 정해진 내용이 있다거나 분량이 많았다. 독서록의 경우는 정해진 책 목록이 있어서 내가 원하는 책에 대해 쓸 수 없었고, 과학체험이나 구구단 같은 공부는 정말 자발적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 비해 동화 쓰기는 원고지 3매 이상, 2편 이상 제출이라는 조건 외에는 아무런 부연 설명이 없었다.

즉, 분량만 채우면 내 마음대로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창작은커녕 원고지도 제대로 본 적 없으니 그 분량을 채우는 이야기를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 못했고 나는 용감하게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카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 선택에 부모님은 빨간색 줄이 쳐진 원고지를 사주셨다. 그래 한번 해봐라 그런 생각이셨던 것 같다.


흰 종이에 빨간 선이 네모를 이루고 있는 원고지와의 첫 대면은, 그저 신기함뿐이었다.

학교에서 쓰는 노트는 무지 아니면 긴 가로줄이 쳐진 기본 형태뿐이었다. 원고지를 보긴 했어도 그 안에 무언가를 적는 일은 해본 적도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지만, 종이에 형태가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새로운 일을 하는 것 같은 흥분감이 들었다.


그때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한참 보던 만화에 나오던 내용을 따서 모험 이야기를 쓰거나 동생과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 일기에 가까운 소설을 썼을 것이다. 그때 내가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의 한계는 그 정도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를 적는 작업은 꽤 즐거웠다.

세세하게 콘티를 나누는 것도 없고, 저작권의 개념이란 것도 없으니 뭔가 재밌겠다 싶으면 그냥 막 적기 시작했고 신나게 원고지를 채우다 보면 금방 분량을 채울 수 있었다.


정답이 없는 숙제는 꽤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구구단에는 정답이 있고, 독후감은 정해진 패턴이 있었지만 창작은 무에 가까웠다. 정해진 것은 분량뿐이었고,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있든 흐름이 어떻든 아무도 터치하지 않았다. 구몬 학습지 10장을 푸는 것은 지옥 같아도 원고지 10매를 채우는 것은 일사천리였다. 부모님은 수학 숙제의 정답은 확인해도 내가 방학숙제로 쓴 동화는 읽기만 할 뿐 옳고 그름에 대한 피드백을 하지 않으셨다.


첫 창작의 즐거움을 깨달은 어린 나는 방학숙제 분량을 끝마치고 나서도 손으로 계속 뭔가를 적었다.

빈 종이에 그냥 생각나는 걸 적기도 하고, 그림 옆에 크레파스로 쓰기도 하고, 남은 원고지 앞뒤면을 꽉꽉 채워 의미 없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 덕에 개학 직전에는 방학숙제로 정해진 분량을 가뿐히 뛰어넘는 분량의 동화를 썼다.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사라진 경우도 많았지만, 완결본으로 묶은 동화만 4~5편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학숙제로 시작했지만 자랑스러운 나의 첫 창작품을 썩혀두는 게 아깝다고 판단한 나는 동화를 모두 바리바리 싸들고 개학날 학교로 향했다.


정해진 양 이상으로 숙제를 했으니 칭찬받지 않으려나, 선생님이 동화 쓰기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등등 두근두근한 마음을 가지고 숙제를 제출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큰 리액션이 없었고, '이런 숙제가 있었나?'하고 방학 때 나눠준 숙제 목록을 확인하고는 내 숙제를 받으셨다. 그리고 작고 얇은 내 원고지 뭉치는 다른 친구들이 낸 화려한 방학숙제 사이에 끼여 사라졌다.


사라진 동화들은 훗날 생기부에 [글쓰기를 즐겨합니다]란 문장으로 돌아왔다.


짧지만 정확한 문장이었다. 잘하지 않지만 쓰는 게 즐거웠고, 한 번 맛을 들인 후로 항상 다음에 뭘 쓸지를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소설을 써보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하며 계속 뭔가를 창작했다. 구조적으로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연재를 할 때도 바로 다음회차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늘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썼고 머릿속에서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긴 했는지 꽤 오랜 시간 글을 써서 연재를 마치기도 했다.


꾸준히 글을 봐준 사람들이 있어서 연재하던 곳에서 월마다 발표하는 이달에 소설에 몇 번 뽑히기도 했다.

물론 이것 역시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에게는 내용보다도 쓰는 행위가 중요했던 게 확실하다. 내용은 하나도 안 떠오르는데 신나게 매일 뭔가 쓰던 내 모습만 떠오르니 말이다.


지금과 차이가 뭘까 돌이켜보면, 글 쓰는 행위에 대한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이 큰 것 같다.

글 쓰는 것이 익숙해졌고, 직업이 되면서 자기 검열이 강해졌다.

되는 대로 쓰던 감각을 잃어버리고 조금 쓰다가 돌아가서 다시 읽어보고, 지우고, 정답을 찾게 된다.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막 쓰다가도 '뭐가 어떻게 되길 바라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 막막해진다.


글쓰기를 하면서 나는 뭘 얻고 싶은 걸까?

과거의 나는 쓰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이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이걸 통해 무언가를 얻고 싶은 걸까?

즐거움보다 내가 더 얻고 싶은 게 있는 걸까?



사실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전히 막막하지만 친구가 보내준 사진을 보고 있으니 옛 생각이 났고 그땐 쓰는 게 즐거웠고 즐겁지 않으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한테도 그런 자세가 필요한 게 아닐까?


재밌으면 하고, 재미없으면 하지 않을 것

뭘 어쩌고 싶은 거냐고 물어본다면 '모르겠다'

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

원고지에 처음 동화를 써보던 과거의 나와 동기화를 시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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