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딩도 괜찮으니까 일단 좀 살아볼게요
최근 나에게 생긴 수많은 변화 중 으뜸을 꼽자면, 드디어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3n년간 한방에서 지지고 볶던 여동생이 결혼하면서 분가했고 자연스럽게 그 방은 내 차지가 된 것이다.
그 흔한 자취나 유학을 간 적도 없고, 한 방의 룸메이트가 자리를 비운 최장시간은 두 달여의 유럽여행이 전부인지라 온전히 [내 공간]이라는 게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태생이 예민하고 까칠하고 생각이 많은 나는 한 방을 공유하는 룸메이트가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간절하게 나 혼자만의 공간을 꿈꿔왔었다. 몇 년 전부터 행복주택에 계속 도전하며 끊임없이 자취 시도를 한 것 역시 본능적으로 내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프리랜서 작가의 벌이로 독립을 단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서 벌이가 나쁘지 않다고 해도 일반 회사와 달리 언제 프로그램이 끊길지 몰라 항상 불안정했고 실제로 구직하려고 해도 몇 달간 일자리가 없어 집에서 숨만 쉬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나에게 독립은 자유란 이름의 사치로 느껴졌다.
물론 하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안 되는 게 어딨어 다들 독립해서 열심히 사는데.
결정적으로 지금까지 독립을 하지 못한 건, 나 스스로의 문제였다.
부모님 집에 붙어있으며 약간의 잔소리와 간섭만 견디면 얻을 수 있는 편안함과 안락함에 취한 캥거루 습성이 항상 이겼기 때문이다.
간절히 원하지만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내 공간이 주는 자유]와
이미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진
[부모님 공간이 주는 안락함]
내 안에서 수없이 벌어진 밸런스 게임에서 승자는 항상 후자였다.
생각보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것, 편안함에 안주하는 걸 선호하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내 공간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오랫동안 꿈꿨음에도 실천하지 못하다가 동생의 결혼이라는 인생 이벤트가 발생하고 나서야 얻게 되다니. 심지어 이 얻게 되는 과정에서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다. 가만히 있기만 했을 뿐인데 알아서 내 방이 생기다니, 이것이 바로 누워서 떡먹기, 손 안 대고 코 풀기인 걸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원하는 걸 얻어서 행복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초반에는 내 방이 어색하고 불편해서 자꾸 방에 있지 않고 주변을 빙글빙글 배회하며 방황했고 방에서는 정말 잠만 잤다. 단순히 처음 얻는 내 방에 대한 낯섦이 아니라... 이 공간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던 공간에 그 사람의 물건만 빠진 상태에서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자유보단 비어있음을 더 느끼게 했다. 심지어 동생은 터전을 옮겼지만 방 안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고, 짐이 빠진 자리에 부모님의 짐이 섞이면서 거실의 확장 버전이 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동생과 그렇게 애틋한 타입의 자매도 아니었고. 심지어 한 방에 살아도 각자 일하느라 바쁠 때보다 더 자주 보고 시간을 보냄에도 불구하고, 방으로 돌아오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묘한 감정은 그야말로 시발이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든 솔직한 감상은
「줘도 지랄」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으면 차라리 그 입을 다물어라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데 워낙 소질이 없는지라 오은영 선생님처럼 내 감정과 마주하고 '왜 이런 감정이 들까? 우리 함께 생각해볼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 대신 스스로를 셀프 채찍질하며 바쁜 일정을 핑계 대며 문제 해결을 외면했다. 대화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외면은 고개만 돌리면 되기 때문에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내 방의 문제를 외면한 채 이유모를 짜증과 설움만 마음속에 꽉꽉 채워 넣었다.
어릴 때 엄마랑 색지를 붙여 만든 옷 정리함이 꼴 도보기 싫을 만큼
"나 컴퓨터 방으로 간다"
그래서 결정했다. 나도 이사하기로. 내 이사 목적지는 집에서 가장 작은 잡동사니 방, 일명 컴퓨터방이었다.
구 내 방에서 문 열면 맞은편에 있는 방으로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자 아파트 복도에 붙어있어 냉기가 올라오는 일명 k-장녀의 방이다. 우리 집은 구축 아파트라 거실, 부엌이 넓은 대신 방은 딱 두 개뿐이었고 부모님은 큰방을 두 딸에게 내어주고 본인들은 거실을 본인들의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작은 방은 관짝 사이즈라 어른 둘이 쓰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모든 잡동사니를 몰아놨고, 아빠, 동생, 내가 돌아가며 작업공간으로 사용했었다.
일명 죽은 공간이었던 셈이다.
이 코딱지만 한 집에 그런 공간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지만.
침대는커녕 토퍼를 깔면 꽉 차는 공간을 내가 쓰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굳이 왜?'란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은 이미 20년 넘게 안방을 제외한 집안 모든 공간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우리 집 최고의 맥시멀리스트가 나인만큼 제일 작은 방에 들어가 봤자 못 견딜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이 동생이 빠져나가며 짐 정리를 했지만 그럼에도 내 짐은 넘쳐났고(주로 옷과 화장품) 그 잡동사니를 들고 작은 방으로 이주하겠다는 게 스스로 봐도 웃길 지경이었다.
엄마는 컴퓨터를 들고 잘 생각이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하지만 한 번 이사 결심을 하자,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사람이 줄었으니 방 사이즈를 줄이는 것도 당연하고, 부모님이 거실 생활하는 것도 내심 불편하고,
무엇보다 남들이 말하는 내 공간이란 걸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살 때 이 집에 이사 온 후로 공간 변화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 이 작은 변화가 무슨 차이가 있겠냐 싶으면서도 바꿔보고 안 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자로 결론을 지었다.
그래 봐야 청소하고 짐 옮기는 게 다지만...
지금의 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으니 어떤 변화가 오든 큰 손해는 아닐 것 같다.
그래서 한 달 전 컴퓨터 방으로 이주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