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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Dec 17. 2020

제도판과 옷무덤과 블랙홀에 stay

내 방의 리즈 시절은 언제일까


현 내방 구 작은 방

이 집에서 가장 용도변경이 잦았던 이 방의 첫 역사는 [금기의 구역]이었다.


들어가면 안 된다고 누구도 이야기한 적 없지만 모두가 암묵적으로 [작은 방은 허락된 사람만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그 공간의 첫 주인은 바로 아빠였다.


아빠는 건축 미술을 했다. 너무 어릴 때 그 일을 그만두셔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설계도면과 건물의 완성 조감도를 그리는 것이 주 업무였던 것 같다. 그런 아빠에게는 집에서도 작업할 공간이 필요했고, 작은 아파트 안에서 아빠가 작업공간으로 쓸 수 있는 곳은 작은방뿐이었다. 작은방은 창문과 붙박이장이 전부였기 때문에 커다란 제도판이 들어갔고, 반대로는 제도판이 들어가면 공간이 꽉 들어찼기 때문에 작업실 외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방 안이 꽉 찰 정도로 커다란 제도판 앞에서 아빠는 항상 그림을 그렸고 온갖 건축 설계도와 채색 중인 완성도가 가득한 그 공간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포스가 느껴졌다.


아빠를 제외한 누구도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작은 방의 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딸들이 방문 밖에서라도 구경하라는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항상 발이 들어갈 정도로 살짝 방문이 열려있었고, 심심할 땐 밖에서 작업실 안을 구경하곤 했다. 비스듬히 세워진 제도판이 항상 창문을 반쯤 가렸기 때문에 따로 커튼을 달지 않았고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주말 낮이면 건축용 철제자에 빛이 반사되곤 했는데, 거실로 들어오는 빛과는 매우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작업실의 역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IMF가 터지고 아빠가 생업을 위해 건축 미술을 포기하면서 작업실의 짧은 역사는 막을 내린 것이다. 이 집으로 이사 오고 겨우 1~2년 정도? 작은방을 가득 채운 제도판이 누군가에게 팔린 후 작은방은 텅 빈 공간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잡동사니를 밀어 넣는 창고로 2기 인생을 맞이했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유배당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방은 온 가족에게 외면당했다.

그저 네 가족의 온갖 짐을 쑤셔 넣는 블랙홀이 되었고 사람이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천장 조명을 켜는 일도 드물어졌다. 그래서인지 그즈음 내 마음에 어둠이 커지기 시작해서인진 몰라도 작은 방의 어둠은 유독 더 까맣게 느껴졌다. 따로 말은 안 했지만 동생도 비슷하게 생각했던지라, 방문 밖에서 지켜보던 아빠의 작업실 시절과 달리 우리 자매는 작은 방에 들어가는 것을 기피하며 없는 공간 취급을 했다.


그리고 작은 방이 집 안의 물건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버려진 지 10여 년이 흐르고, 4년 전 동생에 의해 3기 인생을 맞이했다. 의류업에 종사하던 동생이 쇼핑몰을 해보겠다며 작은 방에 컴퓨터와 옷가지를 쌓아두고 창고 겸 작업실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생은 작은 방에 포토샵이 가능한 컴퓨터와 옷걸이, 스팀드라미 등을 가져와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고, 매일 시장에서 샘플을 받아오고 촬영하고 코디하고 작업하며 동업자와 바쁘게 작은방을 오가기 시작했다. 10년을 넘을 넘게 닫혀있던 작은 방 문이 얼떨결에 활짝 열리며 급격히 활기를 띄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방의 방문은 안으로 밀어서 여는 형태인데, 이 시기에는 늘 최대한으로 활짝 열려있었다. 최대한으로 열려있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컴퓨터를 둔 책상이 방 사이즈에 비해 지나치게 컸고 방문을 활짝 열면 책상이 걸렸기 때문에 애매한 각도로 방문이 열려있어서다. 아무튼 내가 이 집에 살게 되면서 처음 본 가장 큰 각도는 맞다.


동생이 작업을 하며 항상 작은 방 문을 열어두다 보니 나 역시 자연스럽게 작은 방에 들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잠시 머무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거의 없는 공간 취급하던 시절에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온갖 샘플과 쇼핑몰 촬영용 도구로 가득해진 방은 작업실 겸 창고의 역할을 동시에 역임했고, 동생이 쇼핑몰 사업을 접을 때까지 약 3년간 본연이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리고 세미 창고 겸 컴퓨터방의 역할로 휴식기를 거친 후 지금은 4기

바로 건너편 방에서 20년 간 거주하며 들여다볼 생각도 안 하던 내가 어느 날 짐을 옮기고 내 취향을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독립된 나만의 공간] 만들기를 시도하는 중이다.


이제 한 달여를 넘긴 우리의 관계를 이야기하자면, 테트리스 팀전을 함께하는 사이 같다.

동생이 작업할 때 쓰던 책상은 큰 방으로 옮겼기 때문에 방문은 본연의 역할을 다하며 완전히 열리고 닫히는 문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나는 이 좁은 공간을 꾸미면서도 정신 사나움까지 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잔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성격상 한 번에 모든 일을 해결하고 신경 안 쓰고 살고 싶지만 작은 방에 모든 물건을 때려 넣으면 대략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 사고 싶은 물건을 한 번에 결제하고 싶은 욕망을 꾹꾹 누르며 하나하나 가구와 소품들을 들이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줄자로 길이를 재고 머릿속으로 가구와 소품의 조합을 상상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머리에 쥐가 나서 와인이나 퍼마시고 자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중이다.



나도 어떤 공간을 완벽히 내 것으로 가져본 것이 처음이라

내 취향을 때려 넣었을 때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 수 없는 초보이고

작은 방도 20년 가까이를 창고와 작업실과 블랙홀 겸용으로 쓰이다가

누군가의 생활터전이 된 것은 처음이니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방 전체가 아닌 작은 공간부터 조금씩 확대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적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래도 친구 없는 집순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더더욱 밖에 나갈 일이 없어졌으니

이번 겨울은 작은 방에서 제대로 동면하게 될 것 같은데 억지라도 미리 터전을 잡아두길 잘했다 싶다.


이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현재로썬 먹고 자는 방의 기능을 하는 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으니

작은 방이 생각하는 리즈시절이 지금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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