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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Mar 25. 2020

11년간 좋아한 으뜸이와 방송하는 날 왕다래끼라니

꿈은 [가끔] 이루어진다★그게 꼭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방송작가면 연예인 많이 보겠다.

실제로 본 연예인 중에 누가 제일 잘생겼어?”     


 

방송작가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비공식) 부동의 1위.

여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현재 진행형 레전드 질문.

‘방송작가면’까지만 들어도 다음 말이 유추될 만큼 자주 듣는 질문 중에 하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것인지 아직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만큼 제대로 된 답변은 찾지 못했다. 그렇게 잘난 사람 없던데? 이런 마인드는 아니고, 너무 잘난 사람이 많아서 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답변에 대답할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고 녹화장을 지켜본 지가 얼마 안 돼서가 맞는 것 같다. 천하의 쫄보라 그렇다. 그냥 가볍게 대답하면 될 것을.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했을 때, 꼭 듣는 이야기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방송작가는 그게 연예인에 관련된 질문일 뿐이다.     


방송작가는 방송국에 있고, 방송국에는 연예인이 있고, 연예인은 TV에 나오고, TV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사람들이 보는 모든 프로그램은 방송작가가 만드니 이것은 필수. 운명의 데스티니. 지구는 하나 수준으로 당연한 호기심이라 할 수 있다.          


의외인 이야기부터 하자면, 방송작가는 방송국에 잘 없고, 연예인은 더더욱 방송국에 없다. 물론 지금도 방송국은 수많은 연예인과 방송작가들이 채우고 있다. 하지만 같은 직업군 전체를 봤을 때 그들은 소수다.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 시스템은 방송국 내부에서 제작되는 본사(내부)와 외주로 구성된다. 예능과 교양을 총망라했을 때 대략적인 비율은 2대 8, 3대 7 정도? 본사 제작보다는 외주제작사에 수주를 주고 제작팀을 꾸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송국 내부에 상주하는 작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연예인의 경우는 더더욱 적다. 주로 연예인이 방송국에 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촬영과 미팅. 심지어 촬영도 내부 스튜디오보다는 외부 스튜디오, 야외 촬영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방송국 내부로 들어올 일은 잘 없다.  

   

이 모든 확률을 다 뚫고 연예인과 마주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연예인이 내 눈 앞에 등장했다는 것은, 오늘은 촬영 날이고, 녹화가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등에 불 떨어졌다는 소리다.     


     

촬영 순서를 위해 작성하는 큐시트. 실제 시간, 예상 촬영 시간(RT), 내용, 출연자, 소품 등으로 구성된다



큐시트를 보면 알겠지만, 연예인은 보통 녹화 직전에 도착한다. 촬영장으로 오기 전 헤어, 메이크업을 마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를 다 한 상태에서 도착하기 때문에 빠르면 1시간 전, 보통 30분 전쯤 녹화장에 도착한다.      


제작진은 2~3시간 전쯤 촬영장에 도착해 준비를 시작한다. 그전에 사무실에 들러 필요한 소품도 챙기고, 대본과 큐시트도 최종 체크해서 준비해야 하니 실제 활동 시간은 녹화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제작진이 아침 8시에 녹화장에 스탠바이 해야 한다면 실 활동 시간은 최소 오전 6시. 연예인도 비슷한 시간에 강남 샵에 도착해 준비를 시작하기 때문에 촬영 날은 양쪽 모두에게 굉장히 바쁘고 피곤한 날이다.     


이 녹화를 위해 매달렸던 지난 몇 주간의 시간이 곧 결판이 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를 했다 해도 녹화가 어떻게 풀릴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고, 그 뚜껑을 열었을 때 변수가 너무 많다 보니 모두 신경이 곤두선다.     


심지어 대부분의 제작진은 녹화 준비를 위해 며칠 전부터 카페인 과다 복용 상태가 되어 있는데, 녹화 30분 전쯤이면 내 머릿속은 아아가 반쯤 들어찬 느낌이 든다.     


그렇다 보니 눈앞에 연예인이 등장해도 동체를 빠르게 스쳐갈 뿐, 혹은 ‘출연자가 도착했다’는 인식이 생길 뿐이다. 물론 인사도 하고, 근황 이야기도 하고, 대본 리딩도 하고, 오늘 메이크업과 의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이 연예인의 외모가 어떤지, 정말 실물이 예쁘고 잘난지 확인할 겨를 같은 것은 없다.          



‘우리 아름답고 빠르고 깔끔하게 녹화를 끝내 보아요. 집에 가서 눕고 싶어요.’



내 눈 앞에 반짝이는 스타를 보며 머릿속을 맴도는 말은 이 정도다.

그래서 누구 실물이 어땠는지 물어보면 진짜 할 말이 없다. 어떻기는, 다들 평소에 열심히 관리하고 멋지게 차려입고 오니 당연히 멋지지. 나는 그날 한 머리를 못 감아서 모자를 눌러쓴 상태였거든.       

   

하지만 이렇게 고일대로 고인 나에게도

딱 한 번, 촬영 전부터 설레게 한 인물이 있었다.     


누군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눈웃음이 예쁘고 어깨가 넓고 다정한 남자’라고

자동응답기처럼 떠들게 만든 내 영원한 아이돌. 호영 오빠




오빠가 내 마음과 지갑을 가져간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육아일기가 내 인생을 지배해버렸다.     


그전까진 남자 연예인에 큰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는 이성에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직 이성에 눈 뜰 나이도 아니었고, 11살 때부터 나름 현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느라 바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god가 데뷔했다. 그때 나는 연예인이나 이성 친구보다는 겨우 다시 사귄 친구들이 더 좋았고, 운동장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거나 정글짐 꼭대기를 사수하는데 더 열정적이었다.     


당시에는 토마토, 파스텔, 뮤직 라이프 등 한 달에 한 번씩 연예인이 나오는 잡지가 발간됐는데, 신간 잡지가 발행되는 날이면 학교 옆 문방구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주로 옆 중학교 언니들이 잡지를 샀는데, 나 역시 매일 문방구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내 관심사는 잡지 옆 맥주 사탕, 잡지 위에 진열된 카드캡터 체리 스티커 쪽에 더 가까웠다.     


그 당시에 같은 반 남자 애가 초대해서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그 애가 누나 방에서 몰래 꺼내온 잡지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땐 그게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 애가 굉장히 비장한 표정으로 ‘너한테만 알려줄게’라고 하더니 핑클 이진의 사진이 실린 페이지를 펼쳐 보이며          



“나는 이진 누나가 좋아. 너는?”



라고 물어봤었다. 그 애 딴엔 굉장히 용기를 낸 거였고, ‘우리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자’ 쯤 되는 이야기였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비밀을 만드는 성숙한 대화의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감수성은 라디오와 멀어짐과 동시에 쌈 싸 먹었던 나는 그 친구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핑클보단 SES가 더 예쁘지 않냐?”          



같은 사회성 떨어지는 소리를 했고, 그 친구와는 영영 서먹해져 버렸다.

이때부터 내 인생의 로맨스는 막을 내린 모양이다.          




아무튼 그런 나에게 호영 오빠가 강렬하게 박힌 것은 육아일기를 보면서부터였다.


동년배들은 다 알겠지만, 그 시절 god는 굉장했다. 예능 인기와 더불어 대중을 사로잡은 명곡 파티까지 더해지며 나 같은 무지렁이도 정글짐에서 내려와 TV 앞에 앉게 만든 것이다.

(계속 호영 오빠라고 쓰게 되는데 중학교 때 오빠 이름으로 이름표 만들 때 빼곤 성을 붙여본 적이 없어서... 이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친한 친구가 먼저 그 프로그램을 보고 윤계상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친구와 놀기 위해 강제 시청을 하던 내 눈에 호영 오빠의 눈웃음이...! 그리고 디 엔드. 텍 마이 머니.

그때 저당 잡힌 내 마음과 지갑은 20년 넘게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작가의 꿈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한 번은 오빠와 스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공간에 있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고, 같은 프로그램을 하는 것은 불경스러워서 상상조차 못 했다. 그냥 스치기라도! 워낙 방송활동을 많이 안 하는 편이다 보니 스쳐 지나가며 보기라도 해봤으면...     


그런 내 꿈이 너무 빨리 이뤄져 버렸다

방송작가가 된 지 6개월 만에






엉망진창이었던 첫 방송을 마치고

이리저리 깨지면서 방송에 열심히 적응해 가던 때였다.


회의에 다녀온 메인작가님과 팀장님이 팀원을 모았다. 한 달 뒤에 있을 추석특집 예능을 준비하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추석을 맞아 우리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던 시간에 추석 특집이 편성됐는데, 공동제작을 맡게 됐다는 것이다.     


똑같은 돈을 받으면서 매주 생방송을 하고, 추석특집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당연히 팀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나 역시 겨우 적응하나 싶던 찰나에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특집 예능’을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기대가 됐다.     


방송작가가 되고 첫 명절을 앞둔 시기였다. 외할머니와 친척들은 그 잘하던 공부는 안 하고(할머니는 지금도 내가 공부를 잘한 줄 아신다) 글을 쓰겠다고 해서 속 터지게 만들던 큰 손녀가 성공했다며 매우 기뻐하고 계셨다.


우리 손녀 좋아하는 갈비를 해주고 싶은데 바빠서 올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는데, 내가 추석특집 예능 제작에 참여했고, 추석날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보겠다고 말한다면 할머니는 분명 기뻐서 하늘을 나실 게 분명하다. 



나도 드디어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

그래 힘들어도 이 직업을 선택하기 잘했어!          



당시에는 ‘스타킹’, ‘슈퍼스타 K’처럼 일반인이 나오는 쇼 프로그램이 대세였다. 그 특집 예능은 소규모 쇼 프로그램이었는데, 일반인 출연자들과 MC, 연예인 패널, 방청객까지 있는 나름 규모가 있는 형태였다.     


짧은 시간 안에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두 팀이 동시에 일을 진행했다. 출연자와 연예인 섭외를 반반 나눠서 진행했고, 전체 진행 상황은 두 팀의 막내가 공유해서 정리하고 전체 회의가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두 팀을 통틀어서도 막내였던 나는 총정리를 담당했다. 그리고 녹화 이주 전, 옆 팀 언니가 보내준 최종 섭외 파일을 열어본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출연자 명단에 그 이름이 있었다.

내 첫사랑. 내 지갑의 주인

호영 오빠가




“너 약 먹었지? 정신 나간 거 같은데?”


그때의 나의 기분을 말하자면 그냥 하늘을 나는 기분. 걸음걸이 하나하나 구름을 밟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선배들 앞에서는 조용히 있었지만 비슷한 처지였던 조연출 앞에서는 힘들다고 징징대던 내가 아무리 혼나도 좋다고 웃고 다니니 쟤가 드디어 미쳤구나 하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쨍하면 해 뜰 날이 돌아온단 게 이런 거구나!

11년 간 TV로만, 콘서트장에서 점으로만 보던 오빠를 가까이서 볼 수 있구나!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원래 방송활동도 자주 안 하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역시 하늘이 내 노력에 감동해 선물을 내린 걸까. 그래 나 자신이 6개월 간 잘 참아왔다 대견해 아주.     


분명 녹화 날은 정신없이 바쁠 것이 분명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애초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스쳐 지나가기라도 했으면 바랬는데, 무려 같이 프로그램을 하게 되다니. 잘하면 오빠한테 이름표를 달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며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문제는, 녹화 날 아침 터졌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무거운 기분? 분명 며칠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일했고, 새벽에 겨우 집에 들어와 잠깐 눈만 부치고 바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봤다. 


왼쪽 눈이 맞은 것처럼 퉁퉁 부어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동생이 자다가 쳤나???’



과장이 아니고 만화가 아니고 사람 눈이 그렇게 부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 눈이 부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왼쪽 눈은 빠르게 부어 점점 뜨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초특급 왕 다래끼가 난 것이었다.     


두 팀을 다 합쳐 나이도, 경력도 가장 어린 내가 녹화용 큐시트와 대본을 다 가지고 있었다. 우리 집은 경기도. 서울에 있는 녹화장까지 2시간 안에 가야 하는 상황.     


지금이라면 바로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거나 택시를 타고 빨리 가서 대본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병원을 다녀오는 등의 능동적인 대처를 했겠지만, 그때 그런 체계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나는 녹화장에 가야 한다」



그 생각만 들었다. 가족들이 놀라며 가지 말라고 하거나 말거나 짐을 챙겨 들고 녹화장으로 향했다. 안대를 하거나 택시라도 탔음 모양새가 덜 흉했을 텐데... 한 손에 노트북, 한 손에 대본을 든 채 ‘어떡하지. 오빠가 보기에 너무 흉한데’ 이 생각만 반복했다.          




그때 내 꼴이 얼마나 처참했냐면,

그날 모든 녹화 진행에서 나는 제외됐다.     


원래 제작 인원으로도 빠듯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내 얼굴을 봄과 동시에 ‘병원 가라’부터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녹화장에 들어서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순히 호영 오빠 때문이 아니었다. 추석특집 방송은 평소 내가 하던 생방송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더 긴박했다.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나도 이 제작팀의 일원으로 지금까지 일했고, 마지막까지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억울했다. 내가 얼마나 고대한 녹화 날인데...!

절대, 절대! 나갈 수 없어. 무조건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서 끝날 때까지 버티고 만다!     



줬다 뺏는 게 제일 나쁘다.

희망을 빼앗기기 직전의 나는 매우 초조했고 툭하면 울어서

수도꼭지가 별명이었던 평소와 달리 눈물조차 안 나왔다.          


일하지 말래도 버티는 이상한 막내가 된 나는 결국, 전염성 있는 눈병인지 여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과 대면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출연자가 오기 전까지 최대한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선에서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세팅을 돕고, 녹화 1시간 전. 출연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내 지정석으로 차출됐다.     

2미터가 넘는 지미집 뒤. 녹화장은 보이지만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는 구석 자리였다.

내 꼴에 다행히 지미집 감독님은 놀라지 않았고, ‘방송 견학이나 해라’ 하고 과자를 던져주셨다.       


녹화가 임박하고 방청객들이 먼저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연예인들도 하나 둘 녹화장에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내 눈에는 딱 한 사람 호영 오빠만 눈에 보였다.


욕심을 버리자 생각했지만 사람 마음이 그게 되는가. 오빠가 스태프와 방청객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며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는데 뭐라 할 수 없는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옆 팀 막내작가 언니가 이름표를 달아주는 모습을 볼 때 정점을 찍었다. 눈치 없는 다래끼는 하루만 더 늦게 나지 왜 하필 오늘 튀어나와서 내 인생 최고의 날을 망치는 걸까.

이제 내 몸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욕심을 버린다고 해놓고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서 지금 벌 받나 보다. 감히 으뜸이와 방송하겠단 꿈을 꾸다니. 하늘이 안 게지.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 그러게 결론을 내렸고 셀프 자숙의 시간을 가지며 엄숙하게 녹화를 지켜봤다.          



생방송이 아닌 스튜디오 녹화를 보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생방송은 방송이 바로 송출되기 때문에 큐시트에 맞춰 1분 1초가 중요하다면, 녹화방송은 다른 형태로 시간의 압박이 있다. 출연자들의 스케줄을 맞추는 것도 관건이었고, 방송을 위한 장치가 더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녹화에도 흐름이라는 것이 있어서, 출연자의 입장 순서, 타이밍, VCR 플레이, 전체 녹화 진행상황 조율까지. 처음부터 끝까지가 전쟁이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방송을 견학하며 제대로 된 진행방식을 배우는 기분이 들었다.

하늘에서 방송 좀 천천히 지켜보고 배우라고 기회를 준 걸지도. 다른 방식이었으면 좋겠지만.      


    

“같이 사진 찍자고 이야기해줄까?”

“됐어. 오빠한테 옮으면 어떡해. 안 해.”          



녹화 중간 쉬는 시간, 처량한 내 꼴이 불쌍했는지 다른 팀 조연출까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거절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며 나오는 진정한 팬의 자세...는 아니고 차분히 앉아서 머리를 식히다 보니 나도 이제 이 세계에 발을 들인 프로인데 직장에서 호들갑을 떨어 팀 전체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한 공간에 있으면 됐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대로 얌전히 앉아있다 녹화가 끝나면 잘 정리하고 집에 가서 쉬자. 오빠의 모습은 편집할 때, 자막 작업할 때, 본방까지 세 번이나 더 볼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진행되는 긴 녹화라 1, 2부로 나눠서 촬영이 진행됐다.

그 사이 식사시간 겸 쉬는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에 나에게도 배정된 할 일이 있었다.


미리 대기실에 식사를 세팅하고 옆 팀 막내 언니가 1부 대본을 싹 걷어 오면 내가 가지고 있던 2부 대본을 건네주고 내가 1부 대본과 큐시트를 가져와 정리하는 일이었다.     


대본과 큐시트가 워낙 많기 때문에 혹여나 섞여서 녹화에 지장이 생기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미리 정해둔 일이었다.     


눈치 없는 내 다래끼로 인해 내 몫까지 고생하는 옆 팀 막내 언니한테 숨겨놨던 초콜릿과 함께 대본을 건네주고 회수한 자료를 받았다. 출연진들은 아직 식사 중이라 녹화장에 없었고 마지막으로 녹화장을 다니며 이전 녹화 대본이 없는지 체크한 후 지미집 뒤로 돌아갔다.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걷는데 누군가와 급 거리가 가까워진 것이 느껴졌다. 아직 누가 올 타이밍이 아닌데 생각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내 꼴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나는 고개를 더 숙이며 대본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작가님 눈 어떡해. 아프겠다.” 



큐시트에 얼굴을 묻고 지나가는 내 뒤로 다정한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감사하다는 인사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 말을 들은 채 만 채 하며 후다닥 내 지정석으로 도망쳤다. 그 날 하루 종일 울고 싶은 적은 없었는데, 그 순간 처음으로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누군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목소리다. 10년 넘게 들어왔으니까.  


2부 녹화는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녹화는 순식간에 끝났고, 나는 모든 출연자들이 사라질 때까지 망부석처럼 구석에 얌전히 숨어있었다. 혹시라도 또 이 꼴로 누군가와 마주치는 불상사는 방지하고 싶었다.     


녹화가 끝나고 출연진이 모두 떠난 후에, 이제 좀 병원에 가라는 지시에 따라 막내 주제에 제일 먼저 퇴근했다. 문 닫기 직전에 찾아간 안과에서는 다래끼라는 진단을 받았고, 지금 째면 금방 가라앉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픈 건 싫다고 필사적으로 매달려 약 처방을 받았다.     


무식하게 컸던 다래끼는 일주일 정도 시간을 두고 서서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여파가 남았는지, 지금도 정말 피곤하면 일 년에 한 번 정도 다래끼가 난다.

그래도 그때처럼 무지막지하게 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빠 그냥 아래에서 올려다볼게요. 20년간 그랬더니 그게 마음에도 편해요.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세트로 오지만, 그게 꼭 좋지도 꼭 나쁘지 만도 않은 거 같다.

그냥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만날 사람은 만나고.

역시 내 스타는 내 돈 주고 콘서트장에서 볼 때가 최고 같다.

내 마음도 편하고, 내 눈도 편하고.


그래서 실제로 본 연예인 중에 누가 제일 잘생겼냐고 물어보신다면,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내 의견을 말하자면

호영 오빠는 내 마음속에 영원한 별이고, 목소리만 들어도 빛이 나고,

일로 만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음 좋겠고,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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