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는 창의를 막지 않는다. 오히려 창의를 돕는다."
(2020.04.25. '주말, 글 쓰는 농장'에서 쓴 글)
"체계는 창의를 막지 않는다. 오히려 창의를 돕는다." 퍼블리의 디자인 관련 글에서 본 문구이다.
사람들은 체계라는 것이 창의와 정반대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체계라는 것이 창의성을 북돋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최근에는 UX 디자인에서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쓰이는 '디자인 프로세스'도 그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발산과 수렴을 반복하는 프로세스가 더 많은 아이디어, 그리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탄생하게 한다.
나에게 있어 체계와 맞닿아있는 말은 ‘계획’이다. 위에서 말하는 디자인 프로세스라는 것도 결국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계획해 놓은 템플릿 같은 것이다.
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걸 좋아하는데, 의외로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다.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계획하는 습관이 들어버린 경우랄까. 나한테는 꽤 자연스러운 일이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계획 세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계획에 대해서 선입견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 곧 고정된 틀에 박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예상치 못한 변수를 어떻게 다 컨트롤하고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우냐고 나에게 종종 물었다. 그래서 내가 왜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지, 계획이 어떻게 창의를 돕는다고 생각하는지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계획의 큰 장점은 계획이 더 많은 선택지를 탐색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계획은 앞으로 할 일의 절차,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최대한 많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산할 수 있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미리 정해놓는 것이므로 내가 실행하는 과정에서 틀을 만들어두는 것이지만, 그 틀이 꼭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전에 많은 가능성을 고려할수록 틀은 유연해진다.
그리고 그 틀의 목적은 나를 가두기 위한 것이 아니다. 틀이 있으면 정해놓은 대로 진행하면 되기 때문에 실행이 가벼워진다. 즉, 창의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아이디에이션을 한다고 하면, 어떤 순서로 진행하고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 계획되어 있다면 바로 아이디에이션을 시작하기가 수월하다.
계획에 따라 실행을 하면 시도한 가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아보기가 쉽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때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특히 실패했을 때 더 그렇다.
실패가 용인되는 경우는 실패로부터 배운 것이 있을 때인데, 실패의 원인을 알기 쉽게 해주는 계획은 실패로부터의 배움을 돕는다.
계획에 따라 실행하면 제한된 시간 안에 집중해서 타깃 가설을 검증할 수 있다. 그러면 나중에 얻게 된 결과에 대해서도 신뢰가 생긴다.
위와 같이 대답을 하면 계획을 세워보려 했는데 실패했다거나, 했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는 분들도 있다.
모든 계획이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다른 일들이 그렇듯, 계획을 세울 때에도 '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왜 그 계획을 세우는지, 무엇이 목적인지 알지 못하면 계획은 제 기능을 다 할 수 없다.
물론 이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지만 못한다는 것도 ‘왜’에 대한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 실패하는 계획을 세워보는 것을 추천한다. 앞서 말했듯 계획은 실패로부터의 배움을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