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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지 Feb 26. 2020

자율 휴가제와 상한선 없는 복지비 제도 가능한가요?

'자유와 책임' 철학이 녹아있는 스캐터랩의 복지 제도

우리 회사는 스타트업답게(?) '자유와 책임' 문화를 지향한다. 그런 스타트업에 다니는 내가 팀 문화와 관련된 얘기를 할 때마다 듣는 반응은 다 이렇다.


"그런 회사가 있어요?"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에요?"


이런 반응을 많이 접하다 보니 한 때는 '내가 우리 팀을 과대평가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일단 지금의 우리 팀은 이상적인 편에 속한다.


나는 늘 우리 회사의 문화를 만들고 유지해가는 입장에서 사내 문화와 그 기반에 깔려있는 철학을 소개하고 기록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다들 우리 팀이 이상적이라고 하는데 정말 이상적인지 의견도 받아보고 싶다.

우리 회사의 철학부터 그 철학에 기반한 문화, 문화의 제도화, 제도의 실행, 시행착오, 그 끝에 얻는 달콤함까지.. 할 말이 많다.


첫 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사례는 우리 회사의 휴가 제도복지비 제도이다. 이 두 제도는 우리 회사의 '자유와 책임' 철학이 잘 스며들어있는 대표적인 복지 제도로 꼽힌다.




우리 회사는 아래 두 가지 철학을 기반으로 출퇴근 시간, 휴가, 복지비 등 사내 생활과 관련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 모든 팀원은 각 팀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모여있다.
  → 모든 팀원은 각 팀의 미션을 달성하기에 최적의 방식으로 일한다.

2. 책임감 있는 팀원은 자유 속에서 성장한다.
  → 팀원 각자의 책임감을 믿고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 규칙은 최소화한다.

위 철학을 기반으로 아래와 같은 휴가 제도복지비 제도가 만들어졌다.


휴가 제도

모든 팀원은 각 팀의 미션을 달성하기에 필요한 최적의 휴식을 취한다.   

휴가란, 내가 앞으로 더 멋진 일을 잘 해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 

    → 쉼, 재충전, 자기 계발, 놀기 혹은 anything!

자율 휴가제 

    → 휴가 횟수, 기간에 제한 없음

복지비 제도

모든 팀원이 각 팀의 미션을 달성하기에 도움되는 활동을 위한 금전적 비용을 지원받는다.   

식비, 도서 구입비, 컨퍼런스 참가비 등 모든 지출의 상한선 없음

자신과 팀에 도움이 된다면 떳떳하고 자유롭게, 책임감 있게 쓰기 

사용 방법: 공용 법인카드로 결제 혹은 개인카드로 결제 후 청구


제한이 없는 휴가와 복지비. 이게 말이 쉽지 정말로 잘 운영되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휴가를 너무 못쓰는 건 아닌지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고, 너무 남용할까 봐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사내에서 식비나 간식비도 법인카드로 자연스럽게 결제하고, 도서 구입도 활발하다. 휴가도 각양각색이다. 평균적으로 휴가 일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안 세어봐서 모르겠는데(카운트하는 시스템이 없다.) 다들 여행도 잘 다녀오는 것 같다.


이게 되는 이유는 1) 우리의 복지 제도가 우리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고 2) 팀원들이 우리 철학을 이해하고 가치관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팀원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일단 복지 제도가 어떻게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보자.


1. '자유'와 '책임'이 아닌 '자유와 책임의 밸런스' 추구

휴가 제도와 복지비 제도 모두 팀의 미션 달성을 위해 필요하다면 상한선 없음

'자유와 책임 문화'라는 말이 스타트업에서 유명하긴 하지만, 이게 '자유'와 '책임'이 아닌 '자유와 책임의 밸런스'를 의미한다는 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위에서 설명한 두 가지 철학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자유와 책임 그 어떤 한쪽 만을 추구하기보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자유와 책임의 밸런스를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팀원들이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주는 형태의 복지 제도가 탄생했다.


2. 철학을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하게 함

휴가 횟수와 복지비 지출의 상한선이 없다는 말은 그것이 팀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져서 답을 얻어내야 한다. 


복지비 제도의 목적: 모든 팀원이 각 팀의 미션을 달성하기에 도움되는 활동을 위한 금전적 비용을 지원받는다.

    Q. 그 비용을 쓰는 게 우리 팀의 미션을 달성하는데 정말 이로운가?

    Q. 나의 업무에 어떤 점이 플러스될까?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가?

    Q. 회사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내 돈을 쓰더라도 사고/하고 싶은가?


쉽게 말해서 본인 돈 쓰듯 쓰면 된다. 복지비 제도 중 가장 많이 지출되는 비용 중 하나가 바로 식비(식비+간식비)다. 팀원들은 팀에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할 책임이 있고, 일을 하는데 먹을 것은 중요하니까 먹는 비용을 결정할 자유를 준다. 현실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 아무리 자유라고 해도 회사 돈이라 눈치 보여서 못쓰겠다ㅠㅠ 싼 것만 먹어야지 (X)

- 점심은 회사 돈으로 먹으니까 비싼데 자주 가야지 (X)

- 평소에는 아메리카노 먹지만 회사 돈이니까 자바칩 프라푸치노 먹어야지 (X)

- 평소에 본인 돈으로 먹는 것처럼 먹는다 (O)

본인 돈 쓰듯이, 평소에는 절약하려고도 하고 가끔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땐 좀 비싼 것도 먹고.


비용이 중요하다기보단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제한이 없다고 꼭 남용되는 건 아니다. 마음가짐이 잘 잡혀있으면 적절히 잘 운영된다.


휴가의 경우에는 아래의 목적에만 부합하면 괜찮다. 다만 팀원은 그 휴가 기간 동안 최적의 휴식을 취할 책임이 있고, 본인 스스로 쉴 때를 잘 알고 본인만의 쉬는 법을 발견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한 팀원의 책임감을 믿고 회사는 휴가 횟수를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준다.


휴가 제도의 목적: 모든 팀원은 각 팀의 미션을 달성하기에 필요한 최적의 휴식을 취한다.

내가 일반적인 휴가 외에 추가로 휴가를 사용하는 경우의 예:

    - 반차 내고 카페 가서 조용히 일해야지

    - 요즘 컨디션이 별론데 이대로는 효율이 안 나올 것 같다. 이틀 뽝 쉬고 다시 힘내서 일하자!

    - 휴가를 내서 이번 가족 모임에 참석하자. 가족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도 내 일 효율에 중요해.     


3. 책임지는 만큼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함

보통 사람들은 '자유와 책임'이라고 하면 '자유를 누리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생각이 좀 다르다. '책임지는 만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를 누리는 것에 대한 대가가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책임에 대한 보상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후자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책임을 지면서 자유를 얻는 재미도 알게 되고, 책임을 넓혀감에 따라 더 많은 경험과 기회도 얻는다.


- "일단 혜택 먼저 마음껏 누리고 일 열심히 하지 뭐" (X)

- "난 이 팀에서 이런 역할을 하고 있어. 이걸 더 잘하려면 이러 이런 것들이 필요하고, 그걸 위해서 이런 복지 제도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O)

- "이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 책임감은 커지겠지만, 팀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더 주체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아" (O)


결국 '자유와 책임'의 문화는 팀원들에게 자유를 누리는 법이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인지하고 그 범위를 넓혀가면서 그 안의 자유를 누리는 법을 가르친다. 자연스럽게 팀원들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도전적인 목표와 책임을 찾으려 한다.

 



우리 회사는 이런 식으로 자유와 책임 문화가 복지 제도에 녹아들어 있다. 여전히 남용에 대한 걱정 어린 말들을 많이 듣지만 우리의 복지 제도가 어떻게 유지될지는 팀원들에게 달려있다. 팀이 할 일은 철학이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제도에 녹아들어 있는 철학을 꾸준히 리마인드하며 팀원들을 믿어주는 것뿐이다.


최근 처음으로 식비 남용의 조짐이 보여 타운홀 미팅이 열렸다. 아무래도 팀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보니 문화가 다져질 시간이 부족했나 보다. 다른 회사처럼 식비를 제한할까도 생각했지만, 복지비 제도는 위에 설명한 대로 팀원들의 자율성을 믿고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에 복지 제도의 취지를 리마인드 하는 타운홀 미팅으로 끝났다.


문화는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데 힘이 많이 든다. 그래도 이 문화를 더 잘 유지하고 싶고, 팀원들도 사내 문화와 제도를 자랑스러워하며 함께 잘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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