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와 다른 ‘함께’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독서 모임 멤버 분들을 꼭 한 번은 고성에 모시고 가고 싶었다. 하영 님과 아침 커피챗으로 만난 3월의 어느 날, 맹그로브에서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고성 프로그램을 기획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하영 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소식이었다. 마침 언제 고성을 갈까 생각하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건 우리 멤버들을 위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필연은 그렇게 우연처럼 온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바로 클럽장님께 보고(?)하고, 클럽장님을 대신해 5월 커뮤니티 리더들의 여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고성에 가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는 4월 중순부터 진행되었다. 한여름의 주말을 내어달라 부탁을 드리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원래는 클럽장님의 일정도 맞추기 위해 7~8월쯤 떠나려다가, 8월부터 잠시 모임을 떠나 계시는 파트너님을 위해 6월로 일정을 앞당겼다. 처음 여행 수요조사를 했던 날은 5월 1일, 멤버가 확정되어 단톡방을 만들었던 날은 5월 22일이었다. 5월과 6월 사이에도 2명의 새로운 멤버가 추가되었고, 3명의 멤버가 사정이 생겨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6월 27일에 여행을 떠났다.
고성을 다닐 때 열 번 중 여덟 번은 혼자였다. 고성에 갈 때만큼은 계획을 세우기보다 매일 나의 컨디션에 맞추어 다니기 때문이다. 워케이션으로 가게 되면 밤 늦게까지 일을 붙잡고 있는 날도 많아서 멀리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누군가 함께 가더라도 4명을 넘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일단 고성은 4명이 넘어가면 한 자리에 앉기도 쉽지 않다. 맹그로브도 2인실로만 예약이 가능한데 홀수가 되기라도 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독서 모임 멤버들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있었다. 서로를 잘 아는 분들이기에 설령 내가 완벽하게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더라도 그들이 알아서 빈 곳을 채울 것을 믿었다. 그것이 바로 혼자가 편한 내가 이번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겠다는 마음 만으로도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맹그로브에 간 횟수를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올해 안으로 스무 번을 채울 것 같다. 이제는 어딜 가도 익숙하고 편한 곳들만 쏙쏙 골라 다닌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게 되면 결정의 기준이 내가 아니게 된다. 내 취향만 고려하지 않고 함께 할 이들을 고려해서 선택의 폭을 넓힌다. 혼자서는 매번 스쳐 지나가다가 이번 여정에서 새롭게 경험하게 된 곳들이 있었다. 혼자라서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동행한 이들 덕분이다. 굳이 백촌막국수 옆 카페에서 커피가 아니라 망고 빙수를 먹었을까?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에 굳이 건봉사에 갔을까? 앞바다 모래 위에 앉아 인생 그림책을 소개할 수 있었을까? 다음엔 아야진까지 달려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 함께 가느냐 그리고 누가 가느냐가 중요한 것은 모두가 저마다의 컬러를 더해 완전히 새로운 여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다들 나에게 고생했다고 하지만 나 스스로는 수고로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여행길이 펼쳐졌고, 이번 여행은 어쩌면 내가 얻은 것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이번 여정의 순간 순간에는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쑥쓰러워 넘어갔을테지만, 이번만큼은 진심을 담아 고맙다는 말을 꼭 전했다. 지금의 내가 고성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먼저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나눠준 이들이 있었다.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보면 내가 나눠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먼저 마음을 열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맹그로브 매니저님들과 여사님들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고성에 다시 오게 만든 이유는 데스크를 지키던 매니저님들 덕분이었고, 고성에서 매번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여사님들 때문이었다.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일출 그림책방을 열어주셨던 미나 님과 차와 명상을 함께 했던 토토님도 맹그로브에 다시 올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다. 맹그로브에 머물 때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로 처음 본 이들도 원래 알던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일출을 보러 혼자 앉아 있었다는 이유로 걱정된다며 말을 걸어주시던 마을 이장님, 그저 하영 님의 친구라는 이유로 환대해 주신 왕곡마을 분들과 광수 선장님. 내가 고성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 흔쾌히 좋다고 해줬던 많은 지인들까지. 지금까지 내가 받은 사랑과 마음이 차고도 넘친다. 그걸 돌려드리는 것뿐이다. 이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내가 고성에 간다면 해야 하는 일은, 사랑이 내 안에만 고이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이 끝나고 대부분의 멤버들이 다음 고성 일정을 예약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내게는 그것보다 기쁜 일이 없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 여정을 예약완료했다는 멤버, 기념일에 좋은 호텔보다 고성을 선택했다는 멤버, 참 좋았던 코스를 콕콕 집으며 다음에 올 멤버들에게도 꼭 소개해달라던 멤버들까지. 우리가 함께 다녔어도 각자가 공간에서 머물며 느꼈던 감상은 다를 것이다. 그들이 느꼈던 고성을 또 그들의 방식으로 소중한 이들에게 전해주기를, 고성에 새로운 사람들과 사랑들이 흐르고 넘치기를. 고성이 그들에게도 힘들 때 마음껏 도망칠 수 있는 도피처가 되어 주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