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책상에 앉아

by yeji

책상이 단정해졌다. 고성을 다녀와 얻은 힘으로 며칠간 정리, 정돈, 유지를 마음에 새긴 덕분이다. 요즘 책상만큼은 이 깨끗함을 어떻게든 사수하고 있다. 책상처럼 일상도 단조로워졌다. 아침에는 운동을 하고 점심에는 샐러드를 먹는다. 저녁엔 데친 야채를 먹고, 책을 읽다가 이르게 잠에 든다. 만족스럽다.


깨끗이 비우고 최소한의 것만 올려둔 책상, 그 정면에는 오어즈의 포스터와 데스커라운지의 편지지가 있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나는 바다 앞에 서 있다. 파도가 출렁이는 가운데, 나는 둥둥 몸을 맡긴 채 떠 있다. 그러다 편지 속 어느 문장 앞에 멈춰 서서 오늘은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워볼까 고민한다.


우연히 발견한 끝집일기를 요 며칠간 눈이 벌게지도록 보았다. 내가 가고 싶은 끝점과 닮아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계단을 없애고 경사로를 선택하거나, 집 같이 보이지 않도록 노출 콘크리트를 선택하거나. 집의 크고 작은 모든 디테일에 선택의 이유가 있다. 단 하나도 그냥, 은 없었다.


파도가 출렁이는 책상 앞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묻는다. 디테일이 부족하다면 계속 벼리고 날카롭게 만들면 되지만 뭉뚱그려 그냥, 이라고 답하는 건 안될 말이다. 1년 뒤 살고 싶은 삶이 있다면 오늘부터 단정하게 잘 살아내 보자. 결국 내 삶의 무엇을 비우고 채울 것인지 이 단정함이 힌트를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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