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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Dec 01. 2023

쉼, 그리고 설렘


한 달 내내 호제는 다리가 아프다고 성화다. 10월 펜싱과 축구를 가열하게 하더니 근육이 놀랐나 보다. 11월 어느 수요일, 호제가 먼저 얘기했다.


“나 다리가 아파서 금요일 수업을 쉬어야 할 것 같아.”


내전근 긴장도가 심해 손을 조금만 대어도 아픈 상태였다. 처음이었다. 펜싱수업을 안 가겠다고 말한 건. 아주 반가운 말이었다. 근육이 쉬어야 근육통이 사그라질 테니까.


”좋은 생각이야. 쉴 줄도 알아야 해. 그래야 근육도 회복하지.“




목요일에도 호제의 근육통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금요일 수업을 쉬자고 목요일 저녁에 얘기 나눴다. 금요일 아침, 호제와 전화통화를 하며 말했다.


”오늘 펜싱수업 못 간다고 원장님과 선생님께 연락 드려놓을게. “


갑자기 “나 펜싱 가고 싶어.”라며 “흥! 엄마랑 통화 안 할래. 엄마, 미워!“를 외쳐댄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말랑 할머니에게 넘겼다. 나랑 다시 통화하지 않고 등교했다. 금요일 펜싱 수업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퇴근하니 거실 벽에 정체 모를 숫자를 적은 종이가 딱 붙어있다. 호제가 절대 떼지 말라고 했단다. 말랑할머니도 정체가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고 한다.




호제에게 물었다.


“이 숫자들은 뭐야? 왜 14에만 동그라미가 되어 있어?”


“엄마, 이거 펜싱 단체전 대회까지 몇 밤 자면 되는지 적어둔 거야. 열네 밤만 자면 펜싱 단체전 대회 나가는 날이야.”


”허어어어어어우와아아아아꺄아아악 하하하하하핳 우리 호제, 진심이구나. 멋지다!“






다음 주 화요일 펜싱 수업 전까지 집에서 런지 자세는 하지 않기로 했다. 토요일 밤, Y가 호제 다리 근육을 꼼꼼히 만졌다. 여전히 아프고 간지럽다고 비명과 까르르 웃음을 발사했다.


Y는 호제에게 말했다. Y는 “다음 주 화요일”이라는 특정 문구를 생략한 채 호제에게 제안했다.


“펜싱을 쉬는 게 어때?”


호제가 발끈하며 얘기했다.

“나에게 펜싱을 하지 말라는 건 너무 해!!! 난 견딜 수가 없어!! 나 죽을 것 같아.”


Y가 말했다.

“아니, 화요일 말이야.”


호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리를 이쪽저쪽 움직이며 얘기했다.

“나 괜찮은데?!”


Y가 물었다.

“호제는 펜싱이 이기는 게 재밌는 거야? 져도 재밌는 거야? 펜싱하는 게 재밌어?”


“져도 재밌어. 펜싱 하는 게 재밌어!”

“그래, 그럼 재밌게 해. 쉬어야 할 땐 쉬어주고. 그래야 힘을 낼 수 있어.”


호제를 보면, 나는 호제처럼 이토록 좋아하는 게 있었던가 나에게 묻게 된다.






월요일 잠들기 직전. 호제가 이불을 배까지 덮었다. 두 팔을 올려 베개 아래 넣으며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내일이 빨리 됐으면 좋겠어. 설레. 기다려져.”

“왜?”

“알면서!”

“아~ 펜싱 가는 날?!”

“(눈 감고 입 꼬리를 올리고 미소 지으며) 응.” 이라 말하며 잠들었다.


설렘을 안고, 내일을 기대하며 잠든 호제. 덩달아 나도 내일이 기다려졌다.


화요일 해가 떴다. 나는 출근하고, 호제는 등교 준비를 했다. 등교 전화를 나누며 얘기했다. 나는 한껏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호제야 바로 오늘이야!!!!“


차분한 목소리로 호제는 대답한다.

”아직은 안 왔어. 기다려져.“


그날 펜싱 수업에서 호제는 신나게 수업에 참여하고, 집에 와서도 펜싱 자세를 취했다.






설레며 기뻐하는 호제를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이 기쁘고 내일이 기다려지는 게 다양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 등굣길 통화에서 호제에게 물었다.


“호제야, 설레는 걸 하루에 여러 개 만들어보자. 또 뭐가 있을까?”

“펜싱!”


“아, 펜싱이 하루 전체에 다 퍼져있어?”

“응, 난 펜싱을 매일 계속해도 질리지가 않아!!“


옆에서 듣던 말랑 할머니도, 나도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그래. 호제 뇌 속에는 펜싱이 가득 찼구나.”


그런 호제를 보고, 말랑 할머니는 말했다.

“지금 호제의 인생에서 신경 쓸게 뭐가 그리 많겠니. 펜싱이 지금 호제한테는 제일 크고 중요한 일이지.”






11월 24일 새벽. 출근 준비하느라 화장실에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린다. 호제다.


“나 쉬 마려워.”

눈도 못 뜬 채로 화장실로 들어왔다.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내뻗쳤다. 오줌이 마려워서 이른 시간에 잠시 깼다.


화장실로 들어오며, 호제가 대뜸 말한다. 눈을 채 뜨지도 못한 채.


“엄마, 오늘 좋은 날이야.”

“오!! 왜?“

”펜싱 가는 날이잖아.“

”아~~ 와, 좋겠다! 축하해!! 이따 저녁에 펜싱장에서 만나자. 엄마도 기다려지네! 펜싱장 가는 거!“


“엄마, 간다! 사랑해! 이따 통화하자!“

“응, 안녕.”




그렇게 쉼과 설렘 뒤, 펜싱 단체전 대회를 맞이하는가 싶었으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호제는 피해 가나 싶었으나 호제가 독감에 걸렸다.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몸을 일으켜 디데이 카운팅 차트에 동그라미를 쳤다. 소파에 누워 차트를 바라보며, 내게 “엄마, 단체전 대회까지 며칠 남은 줄 알아?”라고 매일 물었다. 누워 손가락으로 남은 날짜를 세며, 4일! 3일! 남았어라고 말했다. 권장 격리일이 끝났다.




이제 내일이 바로 디데이(d-day)!

바로 그날!

펜싱 단체전 대회날!


가즈아, 호제야!

설렘 발산하러!


쌀륏!

앙 가르드!

쁘레!

알레!




*쌀륏! 인사

* 앙 가르드! 기본자세 잡기

* 쁘레! 준비

* 알레!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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