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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Dec 12. 2023

누가 뭐래도 나는 널 응원해


단체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저녁. 나의 감기몸살이 절정에 치닫았다. 다 귀찮지만, 끼니는 챙겨야지. 호제에게 치킨을 시켜줬다. 대회 출전날 저녁이면 꼭 자담치킨의 순살치킨을 거하게 먹는다. 나름의 자축 그리고 격려 식단인 듯. 난 Y가 주문한 순두부찌개와 제육볶음을 먹었다.


뒷정리를 한 후, 호제의 단체전 경기를 시청하기로 했다. 나는 소파에, 호제와 Y는 소음방지매트에 엎드렸다.


열이 치닫고, 감기약이 퍼지며, 호제와 Y의 말소리가 들려다 안 들렸다가를 반복한다. 나는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Y의 말이 또렷이 들려온다.


“선수할 거 아니잖아?”


‘뭐지, 이거 뭔 소리지? 내가 뭘 들은 거지? 호제는 대답을 안 하네. 호제 마음이 어떠려나. 호제가 펜싱에 지금 얼마나 진심인데. 펜싱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서 메달을 딴 뒤, 군대 면제를 받겠다는 야심 찬 계획까지 짜놓았는데. 뭐지, 저 말은. 뭐라 말할 힘이 없네. 영상을 계속 보고 있구나. 자꾸 잠이 오네…‘라고 생각한 뒤, 나는 이동한 기억도 없이 베개에 머리를 뉘이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결혼식 참석 일정이 있어 Y, 나, 호제 모두 빠르게 준비하고 Y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


도로 옆으로 광고판이 주르륵 이어졌다. 호제가 물었다.


“엄마 저건 뭐야?”

“Hi MO”

“아, 하이모. 가발 만드는 회사야.” 한 번도 생각지 않았는데, 하이모는 ‘안녕, 털’, 털에게 인사하는 브랜드명이었구나 싶다.


“저기 대학교가 있어?”

“아, 저건 광고하는 거야. 건물 위에 있는 광고판은 옥외광고에 속해. 엄마, 건물 사서 꼭 옥외광고판을 걸어둘 거야. 화질 좋은 대형 LED로. 꿈은 누구든 맘껏 꿀 수 있잖아. 옥외광고 하려면 건물이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곳에 있는 게 좋아. 호제도 지나가다 좋은 곳 발견하면 얘기해 줘.”


말하면서 어젯밤 일이 번뜩 떠올랐다. 호제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혹여나 의기소침해지진 않았을지 염려가 됐다. 더욱 힘주어 말했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어. 하고 싶어 하는 마음, 누구나 가질 수 있어. 목표를 높게 잡으면 그 목표를 달성하지 않더라도 뭐라도 얻게 될 거야.”






뒤이어 말했다. 호제 왼쪽 팔뚝을 꽉 부여잡으며.


“호제야! 그 누구든 호제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싶어 하는 호제의 마음을 지켜줘. 모두가 하지 말라고 해도 엄마는 호제를 응원할 거야.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엄마한테 마음껏 말해. 이 세상에 호제를 응원하는 단 한 사람은 꼭 있다는 걸 잊지 마.


호제 지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머뭇거리며 호제가 말한다.

”펜싱.”

“그래, 그러면 하는 거지.”


운전하고 있는 Y 쪽으로 몸을 대각선으로 기울이며 호제가 말한다.

“아빠가 꺾을 것 같아.”






Y 뒤에 앉은 나는 호제에게 말했다.

“아빠가 꺾어도 그 마음, 귀한 마음, 가치 있는 마음, 밀고 가는 거지. 다만, 펜싱이 하고 싶다면 지필시험 준비도 꼭 챙겨야 해. 국영수사과. 지필공부도 챙기고, 운동공부도 챙기고. 시간을 더 촘촘하게 써야 해. 미술을 해도 마찬가지야. 예체능을 한다는 건 두 가지 트랙을 모두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이기도 해.


엄마가 얘기했지? 나의 마음을 알고, 상대의 마음을 읽고 움직이려면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해.


또 하다가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 펜싱을 하더라도 나이에 따라 맡는 역할, 해야 하는 일이 달라지거든. 운동선수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리더도 되고, 관리자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게 많아. 그때 쌓았던 국영수사과 공부가 힘을 발휘해. 지식은 다 연결되어 있거든. 설사 마음이 바뀌더라도 호제가 해왔던 마음과 행동은 그다음 스텝에 좋은 영향을 줄 거야.”


Y가 거들었다.

”그래. 호제, 한국에서만 살 거야? 미국에서도 살아보고, 유럽에서도 살아봐야지. 공부를 해야 내가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






나는 이어 말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 건데. 하고 싶은 마음을 잘 가꿔봐. 꼭 엄마한테 말해주고. 망설이지 말고 나한테 얘기해. 난 호제를 응원할 거야. 누가 뭐래도!”


“같이?”

“아, 밸류(value). 귀한 것.“


Y가 말한다.

”호제야, 가치! 같이의 티읕이 이로 넘어가 나는 발음과 똑같지. 티읕이 아니라 받침 없이 치읓을 쓰는 단어야. 가치.“


나는 호제에게 말했다.

”그래, 호제야 같이! 같이 얘기하자! 해보자!“






달리는 차 안에서 하고 싶은 마음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


꿈이 있다는 건 얼마나 빛나고 소중한가.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생기고,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극복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과정. 내 마음이 말하는 걸 들을 줄 아는 귀한 과정을 지지해주고 싶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은 무수히 바뀔 수 있다. 이미 호제도 말했으니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미술학파별 대표작가 소개 책을 읽더니, 갑자기 그림을 그리며 얘기했다.


“엄마, 나, 어릴 때는 가수가 되고 싶었잖아. 그러다가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가, 펜싱선수가 되고 싶었다가. 미술 작가를 한 번 해볼까?”


“응, 좋지! 아주 좋지!”


그 무엇이건 간에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 이 마음을 밀고 나가는 행동과 용기. 마주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회복탄력성. 이 과정을 거쳐간다면, 무슨 일이건 해낼 수 있을 거다.


요즘 더더욱 느끼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두 하고 살아가기에도 시간이 너무 짧다. 그러니 호제야, 하고 싶은 마음 앞에서 망설이지 말고, 그냥 해보렴. 누구의 것도 아닌 호제, 너 자신의 인생이잖아. 누가 뭐래도 나는 널 응원한다!!!




돗자리를 날개 삼아 날아가 보겠다고 달리고 또 달린 호제.



누가 뭐래도 난 널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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