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본 그 순간 난 움직일 수가 없었지
그대 그 아름다운 모습 난 넋을 잃고야 말았지
그대의 아름다운 그 미소가 나를 사로잡았지
HEY 거기 그래 자기
웬만하면 내게 오지
우리 여기에서 둘이 멋진 밤을 함께 하지
OH, HONEY 오 베이비 어쩜 아름답기도 하지 내게 오지 나를 믿지 절대 후회할 리 없지
- 박진영의 <허니> 중
가수 박진영이 부른 <허니>의 일부다. 싱어게인 시즌1, 30호 가수 이승윤이 부른 노래기도 하다.
호제가 한 달째 밤이면 밤마다 웬만하면 자기한테 오라며, 둘이 멋진 밤을 보내자고 외쳐댄다. 요즘 호제의 넘버원 가수는 싱어게인 시즌1에 나온 이승윤이다.
숙제하면서 외쳐대고, 샤워하면서 외쳐대고, Y와 함께 외쳐대고, 밥 먹으면서 외쳐대고, 이제는 기타를 들고 공연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는 7번 가수. 말랑 할머니는 3번 가수. Y는 0번 가수. 호제는 55번 가수.
호제는 핀 조명 아래에 있는 거실장에 걸터앉아 자세를 잡았다. 옆에는 노트북을 올려두었다. 이승윤의 허니 유튜브 영상을 일시정지 해놓았다. 스페이스 버튼을 누르는 순간, 노래는 시작했다. 내가 20대 때 산 작은 사이즈의 기타를 목에 걸고, 한껏 리듬을 탔다. 상체에 그루브를 주며, 강약중강약 조절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가끔 눈을 감았다 뜨기도 했다.
아… 마음이 오묘하다.
’귀엽군. 놀랍군. 꼭 저 노래여야만 했을까. 저 흥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왜 응큼한 생각이 나는 걸까.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그래, 고백할 줄 알아야지. 그래도 요즘 시대 고백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지. 고백에 트렌드가 있나. 자기 꼴대로 하는 거지. 아,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대뜸 너 맘에 드니 내게 와서 멋진 밤을 보내자라는 게. 이걸 멋지게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 먹힐 때가 있겠지. 뭐. 호제만의 스타일을 찾겠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허니> 노래에 나, 호제, Y가 함께 도서관에 간 날, 나는 어린이실 북카트에 놓여있던 <생리를 시작해요>라는 책을 다른 도서 사이에 쓱 넣어 함께 빌려왔다. 만화와 큰 글씨가 적혀 있는 얇은 단행본이다.
빌려온 날부터 밤독서로 한 챕터씩 읽었다. 호제 혼자서는 만화를, 내가 읽어줄 때는 줄글을 주로 봤다. 응큼한 생각을 했던 엄마는 아들에게 티 나지 않는 성교육을 시켜주고 싶었다.
<생리를 시작해요>를 읽고, 호제는 자궁의 모양과 생리대의 소형, 중형, 대형, 오버나이트 크기별 차이를 알게 됐다. 무엇보다 뿌듯한 건 생리하는 나를 보며, ‘엄마, 너무 아프겠다’라고 얘기할 줄 아는 공감이 생겼다. 친구들이 생리하는 걸 알아도 놀리지 않기로(왜 놀리는 거지), 놀리는 친구가 있다면 놀릴 일이 아니라고 알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호제는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아이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뻗을까. 아주 진지하게 얘기했다.
“엄마, 생리할 때 모기를 쓰면 어떨까? 모기가 피를 빨아먹잖아. 그러니까 모기들을 붙여서 피를 빨아먹게 하면 생리대를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아! 모기 침이 빨아 당길 수 있는 양이…
(아이의 상상력을 존중해 주자. 상상력에 현실을 들이밀지 말라고.) 아! 그래, 그러면 모기가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 개발해줘, 호제가! 그렇게 되면 편하겠다!! 피 다 빨아 당겨주고.”
호제가 좋다며 들려주는 노래에 깜짝 놀란 적이 7세 때도 있었다. 다니던 곳의 졸업 노래로 선정된 애니메이션 OST <New Friends>를 연습하던 무렵이다. 음원 파일이 없어 유튜브에 있던 곡을 들으며 연습했다.
어느 날, 퇴근하는 나에게 호제가 제목은 똑같지만 더 좋은 곡을 찾았다며 들려줬다.
“엄마 내가 다른 뉴프렌즈 송을 찾았어! 들어봐. 아주 좋아.”
노트북에 띄워진 영상을 보니 노을 같은 배경에 NEW FRIENDS라는 제목과 MATY NOYES 가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노랫말이 나오니 가사를 담은 화면으로 바뀌었다. 첫 가사부터 가관이다.
‘벗은 사진? 전 애인?‘
뭐라고?!!!!!
“유튜브!! 진짜 죽일까, 살릴까”라는 문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렇게 연구했던, 연구하고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진정이 된 후에야 떠올랐다. 리터러시고 뭐고 일단 ‘유튜브, 너 나와봐’였다. 머리와 마음속은 난리통이었지만,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음악과 음악을 느끼는 호제에 최대한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훅(hook)이 나오니 호제는 눈을 게슴츠레 감고 머리와 몸을 리듬에 맞춰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Ooh, ah, yeah 부분에서 공기반 소리반을 내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Ooh, ah, we never get along
….
I think, I think I need some new friends
New friends, new friends, yeah
I think, I think I need some new friends“
가사가 예사롭지 않다. 이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잘 표현할까, 아니 세련되게 안 드러나게 할 수 있을까 이성을 부여잡으려 노력했다.
Naked pictures of your ex
네 전 애인의 벗은 사진
Man, I didn't need to see that shit
내가 그 딴걸 꼭 봤어야 해?
Now I'm thinking about y'all having sex
이제 난 너희가 섹스하던 것만 생각나잖아
Maybe you should keep it to yourself
그냥 좀 너 혼자만 가지고 있어
You can't come over when you please
내가 너한테 내 집 열쇠를 좀 줬다고
Just because you have a key
맨날 오지는 말아 줘
You sit around my house and smoke
넌 내 집에 앉아서 그냥 약만 해대잖아
No wonder your ass is always broke
니 뒷 주머니에 돈이 항상 없는 이유가 궁금하지도 않다
And my best friend just got a boyfriend
내 베프한테는 새 남친이 생겼네
And I don't hear from her anymore
그리고 걔는 이젠 연락도 없네
And my other best friend just got a girlfriend
또 따른 베프한테는 새 여친이 생겼다네
I don't hear from him anymore
그 친구한테서도 연락이 끊겼네
Ooh, ah, we never get along
우린 절대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지
I think, I think Drake got it all wrong
내가 보기엔 드레이크가 틀렸어
Ooh, ah, I call you out again
이런 너를 또 불러냈네
I think, I think I need some new friends
아무래도 난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어야 할 것 같아
New friends, new friends, yeah
새로운 사람을 말이야
I think, I think I need some new friends
아무래도 난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어야 할 것 같아
New friends, new friends, hey
새로운 사람을 말이야
I think, I think I need some new friends
아무래도 난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어야 할 것 같아
If you can't pay for your Uber here
여기 오는데 우버에 쓸 돈이 없으면
Then I might never see you, dear
뭐 우리는 만날 일이 평생 없는 거지
Spent it all up at the bar
있는 것도 다 바에 버리기 전에
Should have put the gas up in your car
니 차에 기름정도는 채워놨어야지
And my best friend just got a boyfriend
내 베프한테는 새 남친이 생겼네
And I don't hear from her anymore
그리고 걔는 이젠 연락도 없네
And my other best friend just got a girlfriend
또 따른 베프한테는 새 여친이 생겼다네
I don't hear from him anymore
그 친구한테서도 연락이 끊겼네
Man, fuck this shit
참 지랄들 한다
Ooh, ah, we never get along
우린 절대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지
I think, I think Drake got it all wrong
내가 보기엔 드레이크가 틀렸어
Ooh, ah, I call you out again
이런 너를 또 불러냈네
I think, I think I need some new friends
아무래도 난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어야 할 것 같아
New friends, new friends, yeah
새로운 사람을 말이야
I think, I think I need some new friends
아무래도 난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어야 할 것 같아
New friends, new friends, hey
새로운 사람을 말이야
I think, I think I need some new friends
아무래도 난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어야 할 것 같아
You need to help with the rent, the groceries, I would assume
너 집세도 내야 되고, 장도 봐야 하지 않아?
You could take out the dog, I would do it for you
너 집에 있는 강아지를 데려오면 내가 그 정도는 해줘야지
And if you pause to think about it, know I got a life, too
근데 잠깐 멈춰서 생각해 봐, 나도 내 인생이 있잖아
Y'all just don't respect me like I respect you
내가 너희한테 해주는 것만큼 너희는 해주질 않잖아?
And why'd you hit my boyfriend up on Instagram
대체 내 남자친구 인스타에 하트는 왜 누르는 건데?
Letting him know that you know he got a nice dick
걔 물건이 크다는 걸 안다는 걸 알리려고라도 하니?
What the fuck?
시발 뭐야?
I can forgive but I won't forget
용서야 할 수 있지만 절대로 잊지는 않아
Baby I give but I never get
난 주기만 하고 받는 건 없지
Man, you really need to stop this shit
하아... 이제 그만 좀 해라
Damn, I'm really over it
아 몰라 걍 다 ㅈ까라 그래
Ooh, ah, we never get along
우린 절대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지
I think, I think Drake got it all wrong
내가 보기엔 드레이크가 틀렸어
Ooh, ah, I call you out again
이런 너를 또 불러냈네
I think, I think I need some new friends
아무래도 난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어야 할 것 같아
New friends, new friends, yeah
새로운 사람을 말이야
I think, I think I need some new friends
아무래도 난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어야 할 것 같아
New friends, new friends, hey
새로운 사람을 말이야
I think, I think I need some new friends
아무래도 난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어야 할 것 같아”
*출처: https://beaking.tistory.com/m/124
노래가 끝나자 호제는 물었다.
“엄마, 어때? 좋지?”
“.... 어! 좋네!”
당혹스러웠다. 당혹스러웠던 건 나도 노래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노래가 별로라고 생각했으면 빠르게 “이건 좀…”이라고 얘기했을 텐데 내 마음에도 들었다. 7세가 벌써 이런 가사를 들어도 되나 싶었지만. 다행히 가사가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하는 듯했다.
염려 많은 엄마는 유난을 떨었다. New Friends와 비슷하지만 다른 곡으로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바꿔 놓고자 New Friends 노래의 장르를 찾기 시작했다. 팝은 너무 큰 장르 같고, 세부장르를 찾아봤다. 도무지 무슨 장르인지 모르겠다. 찾으면 찾을수록 미궁이었다.
결국 권익도 음악 전문기자님께 자문을 청했다. 역시 전문가셨다. 기술 발달로 가상악기 종류도 늘어나면서 세부 장르를 구분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영상 장르나 음악 장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가 보다.
New Friends는 “크게 보면 팝, 세부적으로는 전자 힙합 비트 요소를 넣어서 흥이 나면서도 조금 가라앉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들으니 호제의 취향이 왠지 멋스러워 보였다. ‘흥이 나면서도 조금 가라앉고 차분한 느낌이라니!!!’
대안으로 샐럼 일리스(Salem Ilese), 에밀리 본(Emily Vaughn), 헤이 바이올렛(Hey Violet), 팝스러우면서 모던록 쪽 긍정적인 사운드를 내는 앤 마리(Anne Maire), 엘리 골딩(Ellie Goulding)도 추천 주셨다.
호제가 주로 쓰는 노트북 유튜브 창에 하나씩 검색하고, 영상을 틀었다. 영상 추천 알고리듬에 뜨길 바라는 마음에서. 호제가 다른 곡도 즐겨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유튜브 알고리듬은 내 희망을 들어주지 않았고, 호제는 다른 곡들도 좋긴 하지만, 본인은 New Friends가 지금은 제일 좋다고 했다.
약 세 달 동안 호제는 New Friends 곡의 애청자이자 애창가였다.
밤마다 허니(honey)를 찾는 호제를 보며, 여러 생각이 오갔다.
‘음악이 예술이라면, 예술의 미는 표현 아니던가. 음악이니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걸 가사와 선율로 표현해야지. 더군다나 자연은 리듬을 갖고 있고, 사람은 자연 속에 있으니, 자신의 리듬을 갖고, 리듬을 타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사람마다, 상황마다 걸음의 리듬이 다르고, 심박도 높았다 낮았다를 반복하잖아. 오히려 음악을 곁에 두고 유영할 수 있다는 게, 신날 수 있다는 게 큰 복 아닌가. 그런데 왜 나는 가슴 저편에 불안을 안고 봤을까. 나의 틀에서, 혹은 사회적 시선에서 왜 벗어나지 못했나. 벗어난다고 해도 이런 쪽으로는 새가슴이라 티도 안 날 벗어남일 텐데.
밤마다 허니를 찾는 게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도 아닌데 뭘. 뉴프렌즈에 나오는 친구를 만날 수도 있잖아. 그럼 다른 친구를 만날 수 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렇게 쌍욕이 들어간 노래, 야한 노래 다 들어놓고. 왜 아닌 척이래.
그래!
그러니까
이게 뭐 어때서!!’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호제랑 살다 보면, 불필요하게 옭아매었던 것을 하나씩 풀어내는 순간을 만난다. 관성으로 다시 감길지라도 말이다. 감사한 순간이다.
감사한 일이 또 하나 있다. 이 글을 조각조각 적어나가는 동안 호제가 음악 레퍼토리를 확장했다. 신해철의 <연극 속에서>,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이효리의 <치티치티 뱅뱅(ChittyChitty BangBang)>, BTS의 <소우주>, 이적의 <물>. 가수 이승윤이 싱어게인에서 불렀던 노래를 섭렵하고 있다.
물도 “물 물 물 물 물 물 좀 줘요. 목 목 목 목 목말라요”라고 노래를 부르며 부탁한다.
그래, 즐거우면 됐다.
같이 듣자! 같이 놀자! 같이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