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거의 16년 째다. 파마를 하기에는 시간이 안 되어, 커트만 하러 갔다.
몇 주간 머리를 감고 나면 빠지는 머리칼이 많아 선생님께 고충을 털어놓았다.
“2주 전부터 머리 감고 보면, 빠진 머리카락 개수가 늘었어요. 시커멓게…“
”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봄가을에 동물들이 털갈이를 하잖아요. 인간도 동물이니까 털갈이를 하는 것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중요한 건 빠진 게 다시 나느냐인 거죠.”
떠난 머리카락은 새로운 머리카락으로 채워질까 알쏭달쏭하던 차에 선생님은 어떤 탈모예방 샴푸를 쓰는지 내게 물었다.
“탈모예방샴푸 쓰세요?“
”네, 지금은 두 종류를 쓰고 있어요. A랑 B. 극적인 효과는 없더라고요. C도 써봤는데 머리가 꽤 건조해지더라고요.”
“두피가 너무 건조해지면, 내 두피는 지성이 아닌 거니까, 그럼 다른 거로 바꿔보는 게 좋아요. 예지님 얼굴피부, 지성 아니죠? 보통 얼굴 피부랑 비슷하거든요.“
그간 썼던 샴푸들을 떠올리다, 추천받았던 샴푸가 번뜩 떠올라 선생님께 물었다.
“옆 책상에 앉는 분이 D 와인색 샴푸를 추천 주셨어요. 어떨까요?”
“그거 좋아요. 좀 비싸긴 하지만, 매일 쓰는 것을 좋은 걸로 써보면 좋아요. 그 라인에 토닉도 있어요. 뒤는 풍성하니 앞부분만 토닉을 조금만 바르면 되어서 꽤 오래 쓸 거예요. 한 번 써보세요!“
이번 샴푸를 다 쓰면, 꼭 사야겠다 싶었다. 나랑 맞지 않았던 샴푸들이 기억을 스쳤다. 뒤이어 나는 말했다.
”한 번 써봐야겠어요. 다른 것도 그렇지만, 샴푸도 남한테 좋다고, 나한테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나한테 맞는 걸 찾아가야 되더라고요.“
선생님은 맞장구를 치며, 선생님 아버지께 들은 인생론을 이어갔다.
”맞아요!
저희 아버지가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답을 찾지 못하고 죽는대요. 나를 찾은 사람은 스님, 성직자고요.
그러니까 사는 동안 사람 죽이는 거 빼고 다 해보라고 하셨어요. 다 해봐야지 내가 누구인지 조금씩 알아간다고요.“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누구의 시선도, 누구의 바람도 아닌 나의 시선과 바람으로 나의 편함을 찾아가자며 나아가는 중인 요즘, 꽤나 지지가 되는 말이었다. 호제에게도 꼭 얘기해 주고 팠다.
“선생님, 지금 이 얘기 오늘 집에 가서 아이한테 꼭 해줄래요. 집에 가서 얘기해 주려고 엄청 귀 기울여 들었어요.”
나의 귀가시간과 호제의 하원시간이 얼추 맞아 중간에서 만났다. 오늘 들었던 얘기를 신 나서 풀어냈다.
말랑 할머니는 내가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죽을 때까지…”라는 말을 할 때, 뒷말을 이었다.
“답을 대번에 못 찾아. 찾아가는 거지.”
“오!! 엄마도 똑같이 얘기하네!!! 죽을 때까지 못 찾는다고 그랬대. 그러니까 우리 다 해보자. 선생님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죽이는 거 빼고. 호제야, 더더욱 더 많이 이것저것 해보자!“
오늘도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은 꽤나 고되고 불편할 때도 있다. 그래도 가보는 거다. 유레카!가 쌓이면, 조금은 내가 편안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