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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댈 곳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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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Jan 27. 2023

성: 뽀뽀해도 돼?


성(性): 1.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본성이나 본바탕. 2. 남성과 여성, 수컷과 암컷의 구별. 또는 남성이나 여성의 육체적 특징. 3. 남녀의 육체적 관계. 또는 그에 관련된 일.



성교육 대중화가 시작되던 시기,  학령기였다. 성교육 1세대 구성애 선생님 강연을 즐겨봤다.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을 세워놓고 순결 캔디를 나눠주던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무엇을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고, 귀찮게  운동장으로 오라가라일까, 사탕은  나눠주는 거지라는 생각만 기억이 난다. 오히려   읽었던 기사,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 중학교 과학 선생님이 그려주신 그림과 주변 공기와 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1.

각 가정마다 신문을 즐겨 구독하던 때라 우리 집도 신문을 구독했다. 의사 부부가 인터뷰에 등장했다.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성’에 대한 이야기만 기억에 남는다. 물론 기억이 왜곡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남성과 여성, 특히 여성의 성기가 완전하게 자라는 것은 20대 초반이기에 그전에 성관계를 맺는 것은 건강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들이 살아온 인생에서 자신들의 배우자하고만 성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이 얘기가 나오기까지의 다른 얘기들이 있었을 텐데 연결고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숙했던지, 이 사람들의 부부관계까지 알아야 되나 싶었다. 어쨌든 성기의 성장은 어린 나이의 내가 가졌던 예상보다 꽤 오랜 시간 성장하는 구나를 깨달았던 때였다.

   

#2.

초등학생 시절, 여성 비뇨기과 의사로 살아도 좋겠다며 꿈꿨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 비뇨기과를 선택 몇 번째 여의사라며 TV 프로그램에 비뇨기과 남자의사들과 출연했다. 여성들도 비뇨기과를 가야 하는데, 비뇨기과에는 남성 의사가 대부분이라 비뇨기과 가기를 꺼린다는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 이유로 각종 전문지식을 마구 설명했다. 어린 내 입장에서는 비뇨기과 여의사가 정말 필요하겠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게다가 몇 명 없으니 경쟁력도 있겠다 싶었다.     


#3.

성폭행에 관한 뉴스가 TV에 나왔다. 며칠 뒤에는 성희롱, 성추행 기사가 나왔다. 엄마에게 질문했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다 다른 거야? 뭐가 다른 거야?”

“아, 성추행과 성폭행은 달라. 성기 삽입 유무. 성추행은 블라블라블라.”     

 

성희롱 이야기와 뒤에 설명했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삽입이라는 단어가 강렬했고, 차분히 상세하게 설명하는 엄마가 멋져 보였다. 내가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나의 엄마처럼 설명해 줘야겠다 마음먹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처럼 포털이 발달하던 때가 아니라, 궁금하면 망설임 없이 물어볼 수 있는 엄마가 있어서 가능했던 질문이었다.     


#4.

중학교 과학시간이었다. 항상 정갈한 쇼트커트와 쨍하게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다니시며, 매시간 교구를 활용하시는 열정적인 과학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했다. 운동회나 축제 때면 마이클 잭슨의 춤을 리듬에 맞춰 추셨던 선생님이기도 하다. 매번 어떻게 재미있게 전달할까를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를 한 아름 갖고 오는 선생님이셨다. 점심을 앞둔 시간이었다. 주제는 생식기였다.     


“난자와 정자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신 뒤, 칠판 한쪽에 여성의 측면부 성기를 마술사처럼 그리셨다. 흰색 분필을 들고 커다란 타원을 슈우욱 그리시고, 외음부, 질, 자궁 등을 흐트러짐 없이 그리셨다.


그런 뒤, “자, 여기서 음경이 이렇게 자리를 잡으면 정자와 난자가 만날 수 있다.”라며 노란 색깔 분필로 음경을 그려 넣으셨다.     


학생들의 집중력은 하늘을 찔렀고, 여기저기 배고픈 꼬르륵 소리와 꼴깍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내가 어른이 된다면, 과학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엄마가 됐다. 구성애 성교육을 듣고 자란 1세대로서 자식에게 성교육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찼다. 성교육 책을 잊을 만하면 하나씩 읽었다. ‘성 기관’에 집중해서 생각하는 것에 벗어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점, 자기 결정권, 묻기와 동의/비동의, 경계 존중 등의 키워드를 기억하고자 메모했다.

     

추상적인 가치에 머물지 말고 일상에서 적용하는 실천으로 두 가지를 반복적으로 노력했다.


 (1) 아이더라도 기저귀를 갈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 꼭 알려주고 기저귀나 옷을 갈아입힐 것,

(2) 뽀뽀해도 되는지 물어봐야 한다는 점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나도 실천할 것.     


“오줌을 많이 쌌네. 기저귀 갈자. 바지 내릴게.”

“뽀뽀하고 싶거나 안고 싶을 때는 꼭 상대방한테 물어봐야 해. 알겠지?”     

 





35개월이 넘어가던 때, 호제는 발레를 배우고 싶어 했다. 스치는 호기심이었다. 나는 찰나의 호기심에 내 욕심 한 바가지를 부어 발레학원 3개월치(총 12회)를 결제했다. 3개월치 결제는 학원의 방침이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발레리노처럼 옷을 입고 발레학원으로 향했다. 첫 수업은 성공적으로 끝냈다. 두 번째 수업에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고 나온 뒤, 수업을 지켜보거나 옆 강의실에서 놀았다. 쌍둥이 언니 수업에 따라온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10회 수업 때였다. 호제는 어김없이 수업에는 들어가지 않고, 보호자 대기석이나 옆 강의실에서 쌍둥이 동생과 놀았다. 사무실 안에서 쌍둥이 여동생과 빙글빙글 돌며 잡기 놀이를 했다. 그러다 호제가 말했다.

    

“나 안아도 돼?” 눈이 더 풀리더니,

“나 뽀뽀해도 돼?”     


‘황홀’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눈 풀림이었다. 황홀은 “어떤 사물에 마음이나 시선이 호기하여 달뜸”이라는 뜻을 지닌다.     


쌍둥이 여동생은 여전히 잡기 놀이에 집중하며 도망치기 바빴다. 호제는 나 뽀뽀해도 되냐며 그 뒤를 뛰어갔다. 쌍둥이 여동생은 빙글빙글 큰 원을 그리며 계속 뛰었다. 싫다는 표시가 아니었을까 싶어 나는 뛰어가는 호제를 잡아 안았다.

      

쌍둥이 여동생 어머니는 아직 아이가 잘 몰라서 그런다며, 사과를 했고. 나도 사과를 했다. 우리는 왜 사과를 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36개월 평생 알려준 보람이 있군! 싶다가도 뭔가 마음이 석연치 못했다. 눈이 풀린 아들이 퇴짜 맞는 모습을 봐서 그런 걸까. 이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뭘까, 뭘까 생각하다가 그제야 떠올랐다.   

  

‘묻기와 동의/비동의’는 한 세트라는 사실.      


이제껏 난 호제에게 ‘묻기’만 가르쳤던 것이다!!! 이때부터 다시 알려주기 시작했다. 묻고 오케이! 하면 포옹이건 뽀뽀건 하는 거고, 싫다고 하면 하지 않는 거라는 걸.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마음도 접을 줄 알아야 한다고. 호제한테도 누가 호제의 동의 없이 뽀뽀하거나 포옹할 때, 싫으면 싫다고 얘기해도 된다고. 지금은 뽀뽀할 기분이, 포옹할 기분이 아니라고 얘기해야 한다고.   

  

어릴 때 만난 멋진 어른들처럼 성교육을 하고 싶었으나 현실은 우당탕탕 허점투성이다. 이럴 땐, 다음 문장에 기대어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성과 관련해서 우리 성인들도 여전히 미완성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45쪽). (중략)
성은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영역이다(46쪽).”     

 *출처: 마티아스 바이스, 엘케 립케., 미하엘라 글뢰클러, 볼프강 괴벨, 만프레드 반 도른 저, 이정희, 여상훈 역(2019). <발도르프 성교육>. 싱크스마트.     


80개월 호제가 물었다.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언제 오나 싶은 순간이 왔다!

자! 이제 본격적인 성교육 시작이다.


같이 배워보자.




나 뽀뽀해도 돼?





*참고문헌

마티아스 바이스, 엘케 립케., 미하엘라 글뢰클러, 볼프강 괴벨, 만프레드 반 도른 저, 이정희, 여상훈 역(2019). <발도르프 성교육>. 싱크스마트.

손경이 저, 원정민 그림 (2020). <아홉 살 성교육 사전 남자아이 몸>. 다산에듀.

손경이 저, 원정민 그림 (2020). <아홉 살 성교육 사전 남자 아이 마음>. 다산에듀.

손경이 저, 원정민 그림 (2020). <아홉 살 성교육 사전 여자아이 몸>. 다산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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