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싶어졌다. 부귀영화를 꿈꾸냐고? 부귀영화는 이미 예전부터 바라왔던 거라 ‘더’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부귀영화, 세계평화, 무병장수, 가정평화는 내가 어딜 가든 비는 소원이다. 지금 말하는 ’더‘는 초롱초롱한 애정 어린 눈빛을 포함한 삶을 말한다.
이미 일 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다. 지민이가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고 보자고 연락이 왔다. 지민이는 2016년이었던가? 2017년이었던가? 학부 수업의 수강생이었다. 맨 앞줄에 앉아 매시간 반짝이는 눈망울로 수업에 참여하곤 했다.
취업한 후,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며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는 연락이 왔었다. 성실히 써서 영문교정을 교정 업체에 의뢰했다. 난 원어민이라 영어 추천서는 교정을 맡기는 편이다.
교정 봐주시는 분은 내가 강의하던 곳의 어학당에 있는 분이었다. 감사하게도 더욱 애착을 가지고 거의 자문 수준급으로 촘촘히 봐주셨다. 외국인의 반가운 오지랖에 감동했던 기회를 지민이 덕분에 얻었다.
합격증을 받은 지민이는 미국으로 떠났다. 대학원 졸업도 하고, 인턴도 하고, 미국에서 직장도 구했다며 한국에 잠시 들올 때, 뵙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만났다. 지민이는 그간 있었던 대학원 생활, 인턴 생활, 직장 구하기, 인간관계 얘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전했다.
그러면서 쇼핑백에서 그림을 하나 꺼냈다.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자, 처음 해보는 그림 선물이랬다. 이런 영광이 내게 오다니. 뉴욕의 어느 건물 안에서 유화 기름 냄새를 맡으며 붓터치를 했을 지민이를 떠올리니 가슴은 벅차올랐다.
이어 내게 질문했다.
“이 장면은 어떤 때~ 일~ 까~ 요? 선셋(sun set), 선라이즈(sun rise)? 해가 질 때? 해가 떠오를 때? “
나는 그림을 유심히 보며 말했다.
”노을 같기도 하고.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일몰? 일출? 일몰?“
지민이는 미소 지으며 얘기했다.
“둘 다 일 수 있어요. 저는 선생님이 해가 뜨거나 해가 지거나 그 언제든 즐겁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눈물이 핑 돌았다.
지민은 상체와 얼굴을 나의 상체 쪽으로 옮기며 속삭이듯 말했다.
“선생님, 저 요즘 너무 행복해요. 다음이 너무 기다려져요. 누구한테 처음 말해요.”
현재에 감사하고 미래를 기다려 설레고, 기쁨이 가득한 모습을 내가 꼭 기억해야겠다 마음먹었다. 힘들어할 때면 반짝이던 눈빛과 희망찬 에너지를 떠올리게 내가 고이 간직하고 꼭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꿈이 있어요.“
꿈이란 단어랑 지민이는 참 잘 어울렸다. 무슨 꿈일까 상상하려던 차였다.
”선생님 수업에 저 특강 하러 가고 싶어요!
”오잉?! 지금도 가능해요! 언제든 가능하죠!!! 제가 어떤 형태건 강의를 하고 있으면 가능하죠! 저야 완전 환영이죠!“
“수업 들을 때, 특강 하러 오신 분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이 얼마나 초롱초롱하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애정 어린 눈으로 보셨는지 아세요?“
그럴 만도 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특강비 지원이 있어서 만든 특강 시간도 아니었다. 스스로 기획, 섭외, 비용까지 해결한 시간이었다. 좀 더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의 1시간 강의비를 연사에게 대신드리는 금액뿐인데, 흔쾌히 와주셨다. 지민이가 봤던 연사는 박솔미 작가였다. 한 학기 1특강은 2년 동안 진행했다. 이 분들에게는 두고두고 내가 감사함을 갚아야 한다.
내가 지민이의 힘듦을 거쳐 만난 빛나는 순간을 기억해 줘야겠다 했지만, 지민이가 반짝이는 눈이 있던 나의 옛 시절을 기억해 줬다. 심지어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라는 메시지와 그 마음을 담은 그림까지 내게 안겼다. 이 고마움을 어찌 갚을 수 있을까.
잘 살아야겠다 싶었다.
잘 살고 싶어졌다.
지민이가 봤던 나의 애정 어린 초롱초롱한 눈을 나이가 먹더라도 갖고 있고 싶다. 세월이 흘러 거름이 쌓일수록 이 희망이 점점 커진다.
더 잘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