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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Sep 06. 2024

인기는 파도와 같아


거실장에 앉아 레고를 만들던 호제가 울먹이며 힘듦을 토로한다. 꾹꾹 눌러놓았던 마음이 터진 걸 누구라도 느꼈을 모습이다.


“엄마, 나 요즘 힘들어. 흑흑.

나 요즘 인기가 많아서 힘들어.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흑흑.“


학교에서 호제랑 놀고 싶다고 하는 친구들이 많아진 건 알고 있었다. 놀고 싶은 친구가 따로 있었는데 다른 친구랑 놀았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하던 때였다. 어떤 아이의 일에 엮여 질문세례를 받으며 억울함과 무고함을 풀어내야 한 때이기도 했다.


그 무렵 학원에서도 누나, 형, 친구들이 “호제야“, ”호제야“라며 호제를 부르는 소리가 유난히 빈번했다. 호제는 여기로 고개를 돌리고, 저기로 고개를 돌렸다는 풍경을 말랑 할머니에게 전해 들은 시기였다.






너무나도 진지한 호제의 말과 울음에 짠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인기”는 어른들이 사용하는 “대중의 관심이나 좋아하는 기운“의 의미일 수 있겠으나, 나는 호제가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말한다고 느꼈다.


호제가 또래관계, 인간관계에 한층 더 들어갔구나 싶었다.


“여러 일, 여러 관계로 요즘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말하며 호제를 안았다. 호제는 끄덕이며, 본인이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냐며 다시 얘기했다. 조금 토닥이다 혹시나 싶어 말했다.


“호제야, 인기는 있다가 없다가 하는 거야. 사그라지는 시기가 있어.


호제를 좋아하는 것 같은 친구 마음에 들기 위해 호제 마음을 억누를 필요는 없어.


친구랑 지금 같이 안 놀고 싶으면, 친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다음에 놀자고 얘기라는 거야. 친구가 조르면 다시 설명해 주는 거지.


친구도 호제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고. “


호제는 울음을 쏟고 한결 후련해진 표정이었다.






방학을 앞둔 몇 주 전, 아이들은 좋아하는 마음을 손에 잡히는 무언가에 담아 표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이 진화하는 중이다.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날은 친구가 자기 엄마아빠가 약국을 하는데, 브라운 당근으로 만든 약을 너한테 주는 거라며 물약통 하나를 받아 왔다. 보니 브라운 당근은 홍삼을 말하는 것 같고, 아주 달큼하고 쌉싸름한 향이 났다. 호제는 냉장고에 물약통을 넣어두고, 마음이 힘들 때면 냉장고를 열고 물약통을 확인하고, 이따금 꺼내 손에 꼭 쥐기도 했다.


>>>> 물약통 사진은 커밍순 <<<<


어떤 날에는 책상 위에 빈 포카리스웨트 캔이 올려져 있었다. 분리수거를 안 하고 왜 올려놓았을까 싶던 찰나, 같은 반 친구가 하굣길에 하나 사줬다는 거다. 물통에 물도 다 떨어져 목이 너무 말랐는데, 그 친구가 사준 음료수 덕분에 자기가 살아났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은혜’를 꼭 갚고 싶다고. 여름휴가 때 간 <Moon Walkers> 전시 기념품 가게에서 은혜를 갚을 노트를 하나 골랐다.


어떤 날 하굣길에는 다른 반 친구가 “내가 뭐 하나 사줄게!”라며 호제가 괜찮다고 해도 사주고 싶다며 편의점으로 호제를 이끌었단다. 마이쥬 파였던 호제는 이날 왜인지 모르겠지만 새콤달콤을 골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호제가 한 말을 짐작해 보면 작고, 너무 비싸지 않은 걸 고르려고 택한 듯하다. 마이쮸랑 비슷할 텐데 왜 새콤달콤을 택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호제는 이동하며 한 번에 새콤달콤을 다 먹었다고 했다. 혀가 새콤달콤에 절여져, 저녁밥을 먹을 때에 혀가 따끔따끔하다고 말하며 친구의 베풂을 장시간 느꼈다. 이 친구에게 간식을 사주고 싶어 돈을 챙겨갔지만, 다른 반 친구라 아직 만나질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호제가 말했다.


“엄마, 오늘 점심 먹고 나 혼자 있었어,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황을 최대한 붙잡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둘이서 놀고 있던 친구에게 같이 놀자 물었고, 그 놀이는 둘이서만 하겠다고 한 것이다. 다른 친구들한테 가보지 그랬냐고 나는 말했다. 이미 마음이 상했던 호제는 마침 개학 직후라 엄마가 보고 싶어 그리움과 슬픔, 소외감을 느끼며 앉아 있었다고 한다.


호제가 거절을 할 수 있듯, 다른 친구도 거절을 할 수 있는 거라 말해주며 얘기를 끝냈다. 며칠 지켜보니 다행히 지나가는 에피소드였다.






이후 어느 날 주말, 이동 중인 차 안에서  인기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어쩌다 인기로 넘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적은 일들이 번뜩 떠올라 호제에게 말했다.


“호제야,

인기는 파도 같은 거야.

나에게 왔다가 저 멀리 갈 수 있어.

사그라들 수도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고 눈치 보고 애쓰지 말고, 호제의 마음을 잘 들여다봐.“


운전하던 Y도 거들었다.  

“남들 기준에 맞추지 마.”


나는 이어 말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관계는 없어.

영원을 바랄 뿐이지.


인연일 때 재미있게 잘 지내면 되는 거야. 지나서 후회하지 말고.


살아보니 사람, 건강, 돈, 머리카락은 있을 때 잘 챙겨야 하더라.“


호제는 대꾸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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