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쉬어가는 페이지: 낄낄 깔깔 웃는 순간만 수집하고 싶다

by 권예지


여름휴가가 끝나간다. 아이와 꼭 붙어 있었던 10일의 시간의 끝이 보인다.


아이의 학원 방학도 끝나가고 있다. 덩달아 아이의 월요병과 방학 끝 후유증이 벌써 찾아왔다. 영어학원을 옮기기로 하고, 새로운 곳에 첫 등원을 앞두어서인지 아이의 불안과 두려움이 극에 치닫았다.


기존 학원을 그만두고 새로운 곳을 간다고 설레어하더니, 막상 휴가가 끝나고 새로운 곳을 간다고 하니 두려운가 보다.


짜증을 냈다가, 슬퍼했다가, 무섭다고 했다가,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때론 격하게 한다.


“그래, 그럴 수 있어.“

”표현을 하니 알 수 있어 좋네. 표현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격정적인 언어와 감정으로 아이가 마구 표현하면, 나는 당황스럽다.


그리고 화가 나기 시작한다!!!!!!!!


내 화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걸까.


힘들다고 목 놓아 소리 지른다고 ‘오구오구 힘들었어? 쉬어. 힘들면 하지 마’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지.


한 켠에서는 이게 진짜 힘듦인지, 감정의 표현을 본인만의 언어로 하는지 판단이 안 설 때가 있다. 수많은 육아서에 나온 기준에서는 괜찮을 것 같아도 내 아이한테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숙제가 아니라 감정의 기저에는 관계의 문제가 숙제로 나온 경우가 꽤 많다.


육아는 보편적인 기준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아이에게 맞는지도, 가정환경과 기질, 양육환경도 매우 중요한지라,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아이가 숙제가 많다며 짜증을 내며 아래처럼 외쳤다. 이런 날은 속이 뒤집힌다.


“엄마는 나를 몰라!!! 엄마는 내가 공부하는 걸 망치고 있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는!!“


누가 들으면 내가 애를 잡는 줄 알겠지만, 수학 1문제, 문장제(원리) 2쪽(어떤 날은 2문제, 어떤 날은 4-5문제), 수학 숙제가 추가되면 연산 1쪽. 빠르면 10분, 좀 걸리면 20분 컷이다.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은가. 공부정서는 헤치고 싶지 않은데 내가 정말 헤치고 있는 걸까부터 시작해,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누군가의 상황과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참으로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나의 해석이 옳은지도 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답이 딱 떨어지지도 않는다.


저 날, 저렇게 외친 아드님은 금세 마음이 풀려, 같이 놀자고 내게 왔다. 같이 놀았다. 너프건도 쏘고, 맨손복싱도 하고, 딱지도 치고.






나도 재밌고 즐거운 순간을 좋아한다.


숙제량이 많은가, 줄여야 하나, 학원을 안 보내고 돌봄이 가능한가, 혼자 계획을 짜고, 해보는 게 내가 일과를 옆에서 봐줄 수 없는데 등등 이런 고민 말고.


가족이 함께 갔던 코인 노래방에서 기기 작동법이 서툴러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노래를 정말 한 페이지 가득 예약을 해놓고, 이 상황이 재미나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보니 영상 속 여주인공이 욕은 아니지만 욕 같아 보이는 손가락짓을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우연과 재미, 나도 좋아한다.





아트박스 들렸다가 지나가는데 마우스패드에 적힌 문구와 디자인을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마우스 패드를사서 쓰는 사람들을 상상하니 넘 귀여웠다. 이런 순간을 나도 좋아한다.



4월 박보감 포스터를 보고, 포스터를 꼭 구해 방에 붙여놓고 안구정화 해야지,라며 다짐했던 걸 약 4개월이 지나 이뤘다. 무더운 여름, 일정이 꽤나 많았던 날, 포스터를 고이 들고 와서 벽에 붙이고 침대에 누워 즐거워하던 순간을 나도 좋아한다.




나도 낄낄, 깔깔, 웃는 순간을 사랑한다.

그리고 수집한다.


속 뒤집힐 때마다 하나씩

꺼내볼 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녹내장 검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