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활여행자 May 30. 2016

베를린 여행자로그2

독일 베를린 6일의 기록

2011년 캐나다 밴쿠버를 여행할 때 카우치서핑으로 머물렀던 집의 호스트는 내게 여행은 자고로 몇 주씩 지내면서 다시 여행할 필요가 없을 정도까지 그 도시를 오롯이 알고 또 느끼는 것이 진리라고 설파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녀가 섹스 테라피스트로서 하루에 세 번은 마스터베이션(?)을 통해 자신의 몸을 알아가야 한다며 내게 던진 얼토당토않은 조언은 귓등으로 흘렸으면서, 왜 이 여행에 관한 지론만큼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무튼 그녀의 조언에 따라 캐나다에서의 교환 학기를 마치고 2-3박씩 짧게 머무르며 캘리포니아의 많은 도시들을 여행하는 친구들을 속으로 비웃으며 진정한 여행을 하겠노라는 다짐과 함께 나는 2주 샌프란시스코 여행 계획을 세웠다. 친구들이 캘리포니아의 구석구석에서 많은 좋은 구경을 하는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아홉 번째 밤이 지났을 때쯤 도시의 거의 모든 지역을 구경한 나에게 유니온스퀘어를 맴도는 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계획이 없었고, 시애틀을 다녀오는 여행 일정을 급하게 포함시키면서 나의 잘못된 믿음에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이후로 나의 여행은 절대 한 도시에서만 장기간 머무는 일이 없는 모양새가 되었다. 


당시의 비싼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도시들을 여행할 때 나는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이 호기심은 대부분의 여행에 수반되는 환상인지, 도시가 풍기는 매력 때문인지, 혹은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인지 정의 내릴 수 없다. 런던에서는 여행 중 만난 현지의 친구에게 1년 안에 꼭 돌아오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기도 했고, 도쿄 여행 뒤에는 여운을 잊지 못해 인터넷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며 이주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번지르르한 피상적인 몇 일간의 방문에 생활자의 고달픔을 망각케 하는 도시들이 있다면, 베를린은 오히려 여행 내내 생활자의 고달픔이 살갗에 닿는 도시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다. 아마 한 번 더 여행하고 나면 분명해질 것도 같지만, 진짜 살아보면 다를 것 없는 생활의 타성이 갑자기 밀려들 것도 같다. 그러니까 베를린은 - 알 수 없고 혼란스럽다가도 그 매력에 다시 돌아보게 되고 또 생각나는 그런 도시다.


2016년 5월 12일부터 17일까지 독일 베를린 6일의 기록.


▼ 베를린 여행자로그1

https://brunch.co.kr/@yejinchoi/4


'Welcome to Berlin', 베를린 중앙역(Berlin Hauptbahnhof)의 플랫폼


프랑크푸르트에서 여덟 시간을 말없이 달려온 버스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친 승객들을 베를린 중앙 버스터미널에 퉁명스럽게 뱉어놓고 모습을 감췄다. 터미널에 진동하는 지린내는 프랑크푸르트의 것과 같지만, 어김없는 독일이라고 하기엔 무엇인가 다르다. 페도라를 쓴 긴 머리의 청년은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는 차에게 여유 있는 표정으로 두 손을 들어 올려 보인다. 깡마른 체구에 발목까지 오는 오버 코트, 그리고 자다 일어난 듯 자연스러운 짧은 머리의 그녀는 자동차 무리를 날씬한 자전거로 유유히 헤엄쳐간다. 이 도시, 지린내 위에 가난하지만 젊고 멋진 냄새가 난다.


밴쿠버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아마 '살아보는 여행'에 대한 예찬일 것이다. 9일의 샌프란시스코 여행이 유명 관광지만을 방문하기에 너무도 길었다면, 6일의 베를린 '생활' 여행은 짧지도 길지도 않았다. 삶의 연속에서는 오늘이 길지 않고 내일이 짧지 않듯이. Poor but sexy, 가난하지만 섹시한 이 도시의 젊음을 그리고 삶을 우리는 6일 동안 흠뻑 들어마셨다. 짧지도 그리고 길지도 않게.


크로이츠베르크에서 너와 내가 살던 망원동이 떠올랐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망원시장으로 달려 나가 삼천 원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동네 곳곳에 생겨나는 멋진 맛집들에 놀라고, 한강변을 따라 달리기를 하던 우리는 크로이츠베르크의 베이커리에서 3유로의 아침을 사고, 5분 거리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슈프레 강 수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망원동 위에 시간의 이름으로 덧입혀진 너와 내가 6일간 머물른 이곳, 크로이츠베르크는 우리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48시간 잠을 설친 너에게 언제나 있던 것처럼 피곤이 몰려왔을 때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칼바람에 마음이 길을 잃었을 때도, 너의 만보기가 2만 5 천보를 가리킬 만큼 쉴 새 없이 걸어 다녀 무릎이 아파올 때도, 우리는 '집' 생각이 났고 한 겨울 장을 보고 망원동의 집으로 서둘러 들어갈 때처럼 우리는 johanniterstraße 에 있는 집의 아늑함을 좇았다.


크로이츠베르크 우리집, 에어비앤비
리스팅이 있던 건물. 중간에 호프(Hof, 안뜰)가 있고 건물이 둘러싼 형태
낡고 한꺼풀 벗겨진 베를린의 민낯, 크로이츠베르크
온통 그래피티로 뒤덮인 일반적인 학교의 건물 외관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는 프레드리히샤인-크로이츠베르크 지구의 한 부분으로,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고 X-Berg라고 불리기도 한다. 베를린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로, 서베를린의 동떨어진 한 지역에 불과했으나 1970년대 이후로 대안문화와 반문화가 태동한 베를린의 문화적인 중심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펑크록으로 대표되는 베를린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터전이 되었고, 1970년대에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나 이기 팝(Iggy Pop)과 같은 뮤지션들이 자주 방문하는 지역이기도 했다. 지금의 크로이츠베르크는 여전히 베를린의 트렌디한 구역으로 많은 바, 펍, 나이트클럽 등이 위치해있다. 알렉산더 플라자, 하케쉐 회페 등 유명한 관광지들보다도 우리 동네였던 이 크로이츠베르크에 훨씬 저렴하고 맛있는 그러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식당이 많아, 어디를 돌아다녀도 항상 집이 있는 이 동네로 돌아오곤 했다. 아래는 가본 (가볼 뻔 한), 그래서 추천해 마지않는 베이커리와 레스토랑의 리스트.


아침

Back-Art GbR Andreas und Cordelia Pfanner

 Dieffenbachstraße 12, 10967 Berlin, Deutschland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연 유일한 집 주변의 베이커리. 3유로로 크로와상, 프레첼, 마멀레이드 잼이 들어간 빵 세 종류로 배부르게 아침을 해결했다. 다른 방문자들에 의하면 베이글 종류도 맛있다고.

KAFFEE FAHRRAD LOKAL A.HORN

Carl-Herz-Ufer 9, 10961 Berlin, Deutschland

호스트가 강력하게 추천한 거한(?) 아침(브런치에 가까운)을 먹을 수 있는 카페. 61명의 방문자에 의해 4.5점 만점 4.4점의 평점을 기록했으나, 피곤에 절어있는 우리는 30여분을 헤매다 결국 찾는데 실패했고, 먹을 것으로 넘쳐나는 베를린에서 다시 방문할 기회는 없었다.

Beumer & Lutum

Körtestraße 36, 10967 Berlin, Deutschland

베를린에 여러 지점이 있는 유기농/비건/웰빙 등을 내세우는 베이커리. 우리가 갔던 지점은 Südstern 역 주변에 지점으로 햇빛 좋은 날에는 야외의 자리가 사람들로 북적댄다. 샌드위치 종류도 판매.


점심 그리고 저녁

Burgermeister

Oberbaumstraße 8, 10997 Berlin, Deutschland

서울에서 만 오천 원 넘게 들여야 겨우 먹을 수 있는 수제버거를 5유로도 안 되는 돈으로 판다. 마이스터버거, 칠리치즈버거를 먹었는데,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강렬하고 독특한 맛의 칠리치즈버거 추천. 철길 아래 공중화장실이었던 컨테이너를 개조했다고 한다. 때에 따라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며(주로 금요일부터 주말), 맥주를 판매하지 않아 많은 이들은 Schlesisches Tor 역사의 편의점에서 미리 구매해 간다. 버거는 €4부터.

Ron Telesky Canadian Pizza

Dieffenbachstraße 62, 10967 Berlin, Deutschland

쇼케이스에 진열된 피자를 봐서는 볼품없는 씬피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지만, 카운터에 마련된 루꼴라를 포함한 정체 모를 채소들을 잔뜩 올리고 캐나다산 메이플 시럽에 푹 찍어먹으면 왜 사람들의 평이 이렇게 높은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단+짠맛의 조화는 언제나 옳으니까) 특이한 재료들을 사용해서 독특한 맛의 피자들로 유명하다. 베지테리안 피자와 퀘벡 피자 두 종류를 고른 우리가 지불한 돈은 고작 €7. 반조각으로는 판매하지는 않는다.

Mädchen ohne Abitur

Körtestraße 5,10967 Berlin, Deutschland

여행 중 테이크어웨이 음식만 주야장천 먹어대다 마지막 날 유일하게 갔던 제대로 된 레스토랑. 메인 요리는 €10에서 €20까지 다양한데, 메뉴판을 펼쳐보면 한 페이지에 파스타나 스테이크와 같이 항상 판매하는 고정 메뉴들(Old Girlfriends)이 있고 다음 페이지에는 그 달에만 판매하는 월간 특별 메뉴들(New Girlfriends)이 있다.




베를린 U-bahn 역 이름 디자인 모음




매거진의 이전글 베를린 여행자로그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