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의 20세기> 리뷰
누군가 나에게 어머니에 대해 얘기해보라고 하면 생각의 과거를 되짚어가기 전에 울컥한 감정이 먼저 솟구친다. 특별할 것도 다를 것도 없는 평범한 우리 어머니지만, 원래 어머니란 그런 존재다. 그래서인지 감독 마이크 밀스가 영화 <우리의 20세기>에서 보여준 도로시(아네트 베닝 분)는 특별하다.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이토록 담담하게 감정을 배제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열다섯 살 사춘기 소년 제이미의 엄마 도로시를 철저하게 제이미의 시선에서 묘사한다. 제이미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고, 도로시는 어린 시절 자신의 눈으로 본 어머니다. 차곡차곡 모아둔 기억의 조각을 앨범을 찾아보듯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니까, 어쨌든 살아지더라
“미래는 언제나 늘 빨리 다가올 뿐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가온다”라는 앨빈 토플러의 미래관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일어나기 어려운 사건 하나가 눈앞에 펼쳐진다. 너무나 평온하고 일상적인 마트의 정경. 주차장에 있던 차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른다. 그 차에 사람이 타고 있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로 갑작스러운 일이다. 그런 것이 미래라고 한다면, 그 미래가 현재가 되었을 때 재빨리 순응하는 것이 세상에 적응하는 법이다. 도로시처럼 무슨 일이 생겨도 순간을 모면하며 그때그때 해결책을 강구하며 살면 또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제이미는 엄마의 사는 방식이 못마땅하다.
“행복하냐는 질문은 하는 게 아니야”
행복하냐고 묻는 제이미의 질문에 “행복한지 확인하는 것은 곧 우울해지는 지름길”이라고 답하는 도로시. 둘의 대화는 언제나 엇나간다. 어머니가 늘 품에 안고 사는 먹먹한 슬픔을 지켜보는 제이미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과거에 머무르는 도로시의 태도가 답답하다. 헛헛하고 막막한 두 사람의 관계를 채워주는 건 한 집에 같이 사는 애비(그레타 거윅 분)와 매일 같이 드나드는 이웃집 줄리(엘르 패닝 분). 때로는 다른 사람이 간신히 이어가는 힘겨운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삶에 위안이 되고 살아가는 힘이 된다. 슬픔을 담담하게 맞서든 피하든 그건 각자의 몫이지만 누구에게나 세상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들어서기도 해야 하는 곳이니까.
삶과 행복의 관계
도로시는 왼손잡이인 전 남편을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오른손으로 내 등을 긁어줄 수 있었으니까” 좋았다고 말하는 도로시의 삶. 자궁경부암을 앓고 몸이 망가졌지만 록 음악에 몸을 흔들며 슬픔을 훌훌 털어내는 애비의 나날. 심리치료사인 어머니를 피해 저녁마다 제이미의 방에 몰래 숨어들어 속 얘기를 털어놓는 줄리의 밤. 누군가는 행복의 기억으로 상실의 슬픔을 이겨내고, 누군가는 슬픔을 기록하며 치유하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위안을 찾는다. 안타깝게도 행복은 늘 홀로 오지 않고 인생의 문제와 나란히 온다. 슬픔을 뒤집으면 기쁨이 되고, 행복을 뒤집으면 불행이 되는 것이 인생이다. 삶은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것이기에 각자가 택한 방법이 옳을 수도,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제이미는 당시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마음 속 어린 시절 앨범을 펼쳐본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나이가 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삶에 임하는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 그러나 나이가 들었다고 그 사람의 생각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 이제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어머니를 바라볼 수 있어서 이렇게 도로시를 담담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걸까. 마이크 밀스는 마음에 쌓인 먼지 더께를 털어내는 데 차를 타고 멀리 떠나는 것보다,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보다, 진솔한 대화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소중한 존재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지만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걸 알기에 자꾸만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