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지막 노래를 통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자칫 왕족과 귀족의 일반 대중에 대한 착취를 미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그치지 않는다. ‘함께 싸우자’는 커튼콜 음악은 그럼에도 연대와 투쟁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긴다.
#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평가가 싫었던 이유
왕족과 귀족을 옹호할 마음은 절대 없다. 개개인의 성품이 착하다고 하더라도 계급적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착취는 해결되는 게 맞다. 착한 노예주가 되기보다는 노예제가 폐지되는 게 맞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마리 앙투아네트가 착취의 대명사가 된 것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재정을 파탄내고, 실정을 거듭한 것은 루이16세가 더했을 것이다. 실제로 왕은 그였고, 정치를 하는 것도 그였으니까. 하지만 여성은 쉽게 사치의 주체가 되고, 악마 화된다. ‘김치녀’부터 온갖 여성을 호명하는 이름이 나온 것도 여성에게 딱지를 붙여 낙인을 찍고, 옴싹달싹 못하게 가두는 것만큼 쉬운 게 없어서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칭하며 조롱하는 뮤지컬 속 노래 가사에는 ‘창녀’, ‘암캐’가 등장한다. 노래를 듣는 내내 너무 불편한 말이었다. 하지만 여성을 가장 쉽게 공격하는 방식이기에 앙투아네트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였다고 생각한다.
남성은 성적으로 주체적이어도, 수동적이어도 그냥 그런 사람이 되고, 주체적인 것이 디폴트 값이다. 하지만 여성은 주체적이면 창녀가 되고 수동적이면 ‘알거 다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사람이 된다. 성기 그 자체로 여겨지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사람들은 여성에게 가장 쉽게 낙인찍힌다는 것을 잘 이용한다. 뮤지컬 속 프랑스 시민들은 그래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거짓 소문을 만들어낸다. 그게 루이16세를 끌어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면서.
뮤지컬은 사람들이 어떻게 마리 앙투아네트를 이용하는지를 세세하게 보여준다. 여성이기 때문에 쉽게 이용될 수 있었음을 대사와 노래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
# 마그리드 아르노: 여성 연대
극 초반에 마그리드 아르노는 “그녀가 행복할 때 난 바닥을 기었어.”라고 하거나 바스티유감옥 습격 이후 “여자는 감정적이야. 혁명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남성들에게 “아니야. 난 그녀를 증오해”라고 외친다.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사인 것 같아서 불편했다. 정의를 외치며 처음 봉기를 이끌었던 마그리드 아르노지만 결국 공을 남성에게 다 뺏기고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은 남성의 편임을 끊임없이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아르노가 앙투아네트를 감시하기 시작하면서 바뀌게 된다. 비록 아버지가 같다는 출생의 비밀, 모성애 같은 여성의 굴레가 되는 감정을 기반으로 연대감을 느끼게 되는 건 흠이지만 연대하려고 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각자의 위치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공유하고,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한 후 남성들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어떻게 선동했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는지를 폭로한다.
# 그럼에도 여성을 가르치려 드는 남성 캐릭터들
페르젠은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아르노에게 “네가 가난에 찌들어서 못 받은 사랑 때문에 그런 것. 넌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라는 말을 갑자기 한다. 여성이 정의를 위해 힘쓰는 것은 가난에 찌들어서 소위 ‘균형잡힌’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폄하하는 말이라고 느껴져서 불쾌했다.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도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아르노를 갑자기 대상화하는 대사로 느껴져서 불편했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앙투아네트와 아르노 두 여성 캐릭터의 감정과 역사를 충분히 그려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보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느 한 캐릭터가 눈에 띄게 비중이 크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힘을 모아서 싸우려고 했는지를 그려내며 ‘사람의 힘’을 보여주려고 했고, 그 시기 프랑스가 얼마나 어지러웠는지 또한 보여줬다는 점에서 좋았다. ‘정의’를 위해 싸우자는 아르노의 말에는 반응 안 하던 파리 시민들은 돈을 준다고 하자 시위에 바로 따라 나선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아르노같은 사람이 있다면 돈을 보고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하나의 목적을 바라보게 됐을 때 사회운동은 시작된다.
# 끝으로
시민의 고통은 사실이었고,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서 부와 명예를 얻으려고 했고, 여성들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며 참여하지 않으려다 돈을 보고 참여하게 됐으며 어떤 여성은 쉽게 악마화가 됐고 다른 여성은 정의를 외치며 악마화에 동조했다. 그러면 정의는 누구에 의해 정의되며, 결국 정의는 무엇인걸까?
뮤지컬 ‘시티오브엔젤’을 지난주에 봤을 때 시대에 안 맞게 여성을 대상화한 점이 너무 불편했었다. 남성들은 소설과 현실을 넘나들며 각자의 꿈과 사랑을 찾아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반면, 여성은 구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개척하지 못하는 존재였고 승리의 트로피였다. 이에 비하면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여성의 삶, 시민들의 연대를 그려내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아르노 역의 김연지 배우 노래도 좋았고, 발음도 또박또박 잘 들리는 것이 매우 좋았습니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