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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립 Dec 24. 2019

최저임금의 존재 이유를 물을 때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넣으면 누구에게 도움이 되나

최저임금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준을 강제하기 위해서 도입됐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이 정도의 임금은 받아야 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는 만큼 최소한의 삶의 기준이 올라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은 높을수록 좋고, 계속해서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포함되도록 한 이번 법안 개정은 이런 최저임금의 존재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산입 범위가 확대되면서 실질적인 임금인상률 자체도 감소했고, 동결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올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달 임금은 157만원이다. 기존에는 기본급과 직무수당을 합해서 157만원이어야 했다. 하지만 바뀐 법안에서는 기본급과 직무수당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더한 금액이 157만원이면 된다. 


같은 비율로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추가로 상승의 의미가 퇴색됐다. 실제로 최저임금이 15% 인상되면 현행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기준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은 9.5% 인상하지만 정기 상여금과 식대, 교통비가 포함되면 실제 임금 인상율은 4.6%까지 떨어진다. 이는 지난 9년간의 평균 인상률에서 달라진 게 없다.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을 받으면서 각종 복리 후생비로 부족한 임금을 그럭저럭 맞춰온 이들은 산입 범위 확대로 임금이 그대로 동결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피해를 본 영세 자영업자를 위해서 산입범위 확대가 불가피 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세 자영업자는 노동자에게 정기 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를 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경우 산입범위가 확대된다고 해서 영세 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다. 자영업자와 저임금 노동자 모두에게 이득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익을 봤던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폭이 낮아져서 양극화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소득을 끌어내려서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은 저소득층의 삶의 질 개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함께 더 많은 임금을 받을 방안을 찾아 야지 한쪽의 임금 감소로 양극화 해소가 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노동자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최저임금의 도입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 저소득층의 임금 수준을 높여서 양극화를 해소하는 게 진정한 의미에서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것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실질적인 인상 효과가 줄어든 만큼 최저임금 인상 폭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 현재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족한 액수다. 인상이 필요하지만 지난 해 인상 폭이 높았기에 올해는 그 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인상 폭마저 줄어든다면 임금 개선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어렵다. 실질 임금이 그대로인데 삶이 나아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상폭을 현재 수준에서 유지해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통상임금의 범위도 손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지만 각종 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임금을 최대한 주지 않으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각종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등으로 인해 임금 체계가 복잡하다. 기본급이 높아지면 수당으로 지급되는 액수도 올라가기 때문에 기본급을 최대한 낮춰 임금 수준을 맞추려다 보니 온갖 종류의 수당이 생긴 것이다. 이는 임금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라기 보다는 줄여야 하는 경영상의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런 관점으로 인해 노동자는 여러 개의 일을 동시에 하면서도 생계를 유지하기가 버거웠고, 양극화는 심해졌다.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 다 같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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