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하면서 깨달은 것
나는 남들보다 빠르게 취업했다.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원하던 방송국의 기자가 됐다. 그렇게 1년 3개월이 흘렀다. 평생 이 일을 사랑할 줄 알았는데, 직무갈등을 겪게 됐다. 직접 기사 아이템을 발굴하고 계속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는 직업 특성상, 선한 소식보다는 '비판'의 기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신입기자라 짧은 생각으로 이런 판단을 내린 걸 수도 있다...)
하루는 인천의 한 목사님께서 지역 재개발 문제로 교회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옛날 같았으면 이 소식이 안타까웠을 텐데, 그날 내 반응은 달랐다.
"오! 좋은 아이템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야 사람들한테 관심을 받는 취재 아이템이 되니까.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던 내가 이렇게 변질될 줄이야. 기자라는 직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와 맞지 않을 뿐이었다. 그동안 경험한 게 '말과 글' 뿐이니, 이 성향과 완전히 반대되는 일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기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은 조금 아쉽긴 하다. 경력을 더 이어가며 새로운 일에 도전했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쇼호스트'에 도전하게 됐다. 브랜드와 상품의 강점을 살려주는 일이 나와 더 잘 맞을 거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말을 하는 직업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둔 바로 그다음 주에 C사 쇼호스트 면접을 보게 됐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 PT를 공부해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리고 두 달 뒤, L사 쇼호스트 면접도 봤다. 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십 개의 질문이 쏟아졌다. 붙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3일 동안 엄청 울기만 했다. 예상 밖의 결과라서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도전하는 족족 다 잘 될 것이라는 근자감이 가득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교만했던 내 자아가 꺾이던 시기였다. 결국 쇼호스트 학원을 등록했다. 곧바로 G사 쇼호스트 면접도 보게 됐고, 또 떨어졌다.
그렇게 한 해가 흘렀다. 결과는 전부 불합격이었지만, 준비 기간에 비하면 꽤 괜찮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은 서류 전형 자체를 넘기기 쉽지 않아서 매번 공채 때마다 제출하는 사진과 영상자료에만 수십, 수백만 원을 쓰는 거에 비하면 나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금세 서류에 붙어서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라도 주어졌으니 말이다. 내년 공채에는 꼭 최종합격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여기까지가 내 2021-2022년도다.
2023년도는 입사로 시작했다.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 쇼호스트와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회사에 들어갔다. 입사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G사 쇼호스트 공채가 또 떴다. 당연히 지원했고, 서류 결과는 합격이었다. G사는 한 번 면접에서 떨어진 지원자를 다시 부르지 않는 회사로 유명한데, 나를 다시 불러줬다고? 눈을 의심했다. 분명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면접일이 문제였다.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제안서를 쓰고 있었는데, 하필 제안서 제출날과 면접일이 겹치고 말았다. 반차, 연차를 낼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입사한 지 1 달이니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마음에 주셨던 감동은 '정직하게 살자. 거짓말이나 편법을 사용하지 말자'였다.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녀오고 싶었던 나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쓰고 있던 제안서를 던지고 면접에 다녀올 수도 없었다. 억지로는 가능했지만 회사에 분명한 민폐였다.
그래서 G사 면접에 안 가기로 했다. 이 회사에서 하고 있는 과업을, 주님께서 주신 일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래서 내 꿈보다 하나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2023년 첫 공채는 마무리되었다.
그 해 여름과 가을, H사와 N사 쇼호스트 면접도 다녀왔다. 운이 좋았던 건지 모두 최종전형까지 갔다. 내 느낌에 H사는 떨어질 것 같았고, N사는 붙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불합격... 또 한참을 울었다. 이렇게 떨어질 때마다 나는 내 외모를 탓했다. 내가 남들보다 화면에 덜 예쁘게 나오는 걸까? 아.. 어쩌면 쇼호스트를 하기에는 내가 뚱뚱한 걸 수도 있어... 내가 옆에 있던 사람보다 매력이 없나 보다 등... 자존감이 낮아져도 너무 낮아졌다. 불합격이라는 결과에 여전히 허덕이고 있던 어느 날, 한 동생의 합격 소식을 듣게 됐다. 누구나 선망하는 방송국의 아나운서로 최종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참 기쁜 소식인데 그날따라 내 마음은 더 비참해졌다. 그렇게 새벽 4시가 넘도록 잠도 못 자고 그 친구와 나를 비교했다.
그렇구나. 역시 방송이라는 건 한 살이라도 더 젊고, 예쁘고, 날씬하고, 춤도 잘 추는... 모든 매력을 다 갖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위로받는 것도 지쳤다. 다들 내가 불쌍해서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차라리 누가 이렇게 말해주길 바랐다. "넌 어차피 안 될 거니까 그냥 지금 포기해"라고. 어쩌면 세상이 다 하지 말라고 말리는 소리를 나 혼자 못 듣는 것일 수도, 아니 안 들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친구보다 제가 먼저 버스에 탔는데, 왜 저 친구가 먼저 내리죠? 그런데 이 바닥은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하고 싶다고 해서 먼저 도착하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분명 길을 우회한다. 내가 그런 사람 같았다. 무엇이든 직선보다 곡선에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했는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도 안다고요... 근데 왜 하필 저예요?
그렇게 그날 이후로 매일 남과 비교하면서 지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나는 지금 회사, 재정, 꿈 모두 막혀버린 상황이었다. 다니던 회사는 임금체불 문제로 그만두게 되었고, 밀린 월급은 아직도 받지 못했으니 재정도 부족했다. 그리고 연이은 불합격 소식까지. 내가 봐도 내가 불쌍했다. 그리고 억울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지. 처음 며칠은 기도가 안 나왔다. 기도할 힘이 없었다. 그저 울기만 했다. 그래도 예배 때마다 주시는 은혜가 있어서 겨우 버텼다. 그렇게 기도한 지 2주쯤 지났을까? 하나님 앞에 이런 고백이 나왔다.
"하나님, 지금 제 삶은 마치 누가 작정이라도 한 듯이, 절벽 끝으로 몰아세우는 것만 같아요. 이 상황이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셨거나, 제가 주님으로부터 내팽개침을 당한 것이 아닐 거라고 믿고 싶어요. 몰아세우는 것도 주님이시라면, 이 또한 주님의 손길이 될 테니까요. 제 삶에 놓인 이 모든 상황이 주님께서 선택하신 거라면, 저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할게요."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인격이시다. 그분을 존중하는 자를 주님께서도 존중해 주신다. 나는 하나님을 존중해 드리기로 작정했다. 이렇게 결단하니 내 마음이 자유해졌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여전히 상황만 바라보면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내가 그 상황을 묵상하지 않으면 된다. 나도 모르게 자꾸 부정적인 생각, 비교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나는 믿음의 선포를 한다.
"하나님,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이렇게 내 2023년도 마무리가 되어 간다. 부디 유의미한 날들의 연속이었기를 바란다. 불행 중 수많은 다행으로 살아온 나에게. 일기 끝.
(내 몸보다 큰 오레오를 먹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꼭 끝내 이루지 못할 꿈을 잡으려고 했던 나를 보는 것 같다. 존재하지 않는 바람을 잡으려고 참 많이 노력했다. 실체 없는 별을 보고 빛을 발견했다고 착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