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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 Jan 27. 2023

정말 나쁜 말

그때 왜 그랬어

대학 때 일이다. 4학년 1학기였고 취업 준비에 몰두하던 때다. 학점이 조금 아쉬웠던 터라 수강신청은 학점 잘 준다는 수업들로 세팅했다. 휴학을 여러 번 했었기 때문에 마지막 1년은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고 의지에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땐 몰랐다. 그중 한 수업 때문에 그 학기 전체가 내게 트라우마로 남게 될 줄은.


지루한 원론 수업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수업이 점수 얻기 쉽다고 생각했다. 출석 잘하고 하라는 대로 과제 잘하고 시험은 외워서 보면 되니까. 어떤 창의력과 재치가 필요한 수업이 아니라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놓을 때 즈음 시작된, '출석 누락'.


그 수업의 교수 ('님'자는 생략. 이번만큼은 '님'을 붙이고 싶지 않다.)는 나이 지긋한 노교수였고, 사회에서 꽤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수업을 시작할 때 손수 한 명 한 명 출석을 불렀는데 어쩜 매번, 내 이름만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늘 이 말을 붙였다.


"혹시 내가 깜빡하고 출석 안 부른 사람 있으면 수업 끝난 후 와서 얘기하도록."


수업이 끝나면, 교단 앞에 서있는 그 교수에게 가서 제 이름을 안 부르셨다고 말해야 했고, 그는 매번 능글맞게 웃으며 '아니 내가 우리 이쁜이 이름을 어쩌다 안 불렀지? 미안미안" 하며 출석체크를 해주곤 했다.

당시의 난 어리숙했고 유난히 쭈뼛거리던 소심한 학생이었다.

그가 그렇게 말하며 볼을 꼬집어도

허리를 툭툭 쳐도

본인 비서로 취직하라며 등을 쓰다듬을 때도  

온몸이 굳은 채 눈만 꿈뻑이고 있었다.

이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크고 센 상대였기에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지금과 조금 달랐다. 불합리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던 시기. 그렇기에 내가 상당히 불리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온갖 나쁜 프레임이 씌워지고 온갖 구설수가 떠돌고 이 때다 싶어 날 할퀴려 드는 사람들도 생길 거라는 거. 예민한 과대망상 학생 때문에 명망 높은 교수에게 흠이 생기게 할 리 없다는 거. 결정적 액션과 증거를 남기지 않는 교수 때문에 나 역시 결정적 반항을 하지 못했다. 결국 그 수업은 포기하기로 결정했고, 더 이상 출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끈질긴 전화. 전화를 받지 않으면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우리 이쁜이 어디 아픈가? 왜 안 오지? 보고 싶은데. 지난번 시험도 잘 봐서 내가 학점 잘 줄텐데 다음 수업은 꼭 나와.' 그 메시지를 듣고 휴대폰을 던져버렸던 기억.


그로부터 몇 년 뒤 한창 미투운동 관련 기사가 메인에 뜨던 시절, 댓글을 자주 읽곤 했다. 기사마다 공통적으로 따라오는 댓글들이 있었다. 추천 수는 적었지만 그들은 꼭 등장했다. - 그때 똑 부러지게 안된다고 했어야지 왜 뒤늦게 이 난리냐고. 입 두었다 뭐 하냐고.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는 암묵적 동의로 받아들인 것 아니냐고. 꽃뱀. 블라블라블라. 아물지 않은 상처를 예리한 칼날로 후벼 파는 그런 말들.


4학년 1학기의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었다. 어렵게 털어놓은 상처에 사정없이 뿌려대는 굵은소금 같은 말.


함께 그 수업을 수강하던 선배에게, 위의 일들과 그 밖에 언급하지 못한 일들을 용기 내어 털어놓았다. 위로와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가만히 듣던 선배는 '피식' 웃었고 순간 내 눈을 의심, 그다음엔 귀를 의심했다.


"야, 넌 좋겠다. 교수가 너 좋아하니까 A+ 나오겠네? 부럽다야."


'나쁜 말'이라 함은 상스러운 욕이 아니라 이런 게 정말 나쁜 말 아닐까.

교수에게 받은 상처만큼, 아니 사실 그보다 조금 더 아팠다. 그 간 괴롭긴 했어도 슬프진 않았는데, 선배의 말을 듣고 그 학기 들어 처음으로 울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사회생활의 축소판이었다. 100명 중 98명의 사람이 상식적이어도 2명의 미친 자가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곤 하니까. 졸업 전 미리 경험한 셈이다. 그렇다고 실망과 배신감이 뒤섞인 채 살 순 없었고, 그런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늘 마인드 컨트롤 하며 살고 있다. 별의별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다짐한 건. 이 어둠에 잡아먹히면 안 된다는 것. 이 감정을 계속 품고 있기엔 내 인류애가 너무 크다는 것. 그들 때문에 다른 좋은 사람들을 의심하면 안 된다는 것. 상처는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기보다, 똑똑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무른 나는 작은 생채기에도 아파하지만, 그런 상황을 좀 더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법. 미리 예방하는 법. 같은 걸 익혀가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미어캣처럼.


팬지 _ crayon on paper, 20x30, 2022 by 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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