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구원자
자유함이란 무엇일까? 나는 지금 왜 자유하지 못하다고 느끼는가? 휴가를 갈 수 있고, 가서 먹고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데. 휴가를 가지 않은 일상 속에서도 언제든지 마음껏 차를 마실 수 있고, 내가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고, 방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미친듯이 춤을 출 수도 있는데, 왜 난 자유하지 못하다고 느끼는가? 업무적으로 오는 큰 책임감이 부담스러워서 그런 것인가? 그럼 업무적 책임감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면, 내가 심적으로 느끼는 자유함이 늘어날까? 자유함이라는 하나의 박스가 있어서 그 안에서 무엇이 얼마나 차지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일까? 아니면, 어쩌면 자유/자유롭지못함 이란 형체들도 결국 내가 지어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내가 지어낸 것에서 나와야 한다. 그걸 벗어나야 자유로워 질 것이다. 발령이 나서 조금 더 업무환경이 나은 곳으로 간다고, 자유해질까? 퇴사를 하고, 아직도 미련이 있는 중국 어학연수나 오스트리아 워홀을 간다고, 자유해질까? 또 그 길에서 마주칠 어려움들에, 결국 또 그 현실의 틀안에서 발버둥치며, 자유로워지고싶다고 외치겠지. 결국, 내가 만든 틀에서 나와야 한다. 이미 주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해주셨는데, 내가 자유롭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나를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것을 깨고 나오면 된다. 어떻게? 그건 아직 모르겠다. 그렇다고 단순히 심리적인 스위치를 껐다켰다 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효대사 해골물의 이야기처럼, 내 마음가짐을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 내가 자유하지못하는 것이 단순히 나의 마음가짐때문이 아니란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현실의 족쇄를 풀고 세계여행이라도 떠난다거나, 자아를 찾겠다고 방랑을 한다거나, 그런것도 아닐 것 같다. 그게 답일리 없다. 현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답을 찾기 위해서 현실을 벗어나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번지수일 것 같다. 그럼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자유해질 수 있을까?
사랑, 사랑하고 싶다. 이 세계에서 날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건 사랑일것 같다! 아, 연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