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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Mar 12. 2023

바흐에게 입덕

바이올린에 실린 감정

 음악이란 신비롭다. 어느 순간이 떠오르기도, 어느 장소가 떠오르기도, 무엇보다 누군가 떠오르기도 하기에... 사실 모든 감각이 그러함을 알고 있다. 무언가를 기억함에 있어선 후각이 제일 뛰어나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들었다. 그러나 청각에서 음악으로, 음악에서 기억으로 이어지는 삼단논법! 낭만적이지 않은가..!? 편협한 낭만주의자의 논리를 귀엽게 봐주길 바란다.


 약 반년 전 충격이다. 음악으로 받은 최근의 충격은 말이다. 정확히는 무대 영상을 통해 경험한 충격이었다. 유튜브를 통하여 본 무대 영상의 제목은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흔히 ‘바흐 샤콘느’라 불리는 곡이며 정경화 씨의 2016년 리사이틀 영상이었다. 클래식을 분명 좋아하지만, 쇼팽과 멘델스존, 슈베르트나 라벨 등과 같은 낭만파, 혹은 인상파의 음악을 즐겼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두 달 전 감상한 그의 음악의 선율과 분위기에 필자는 압도당했다. 바로크,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다. 바흐의 음악에 찌그러지며 느꼈다. 2022년 9월 15일 오후, 샤콘느를 들으며 바라봤던 창밖 하늘의 탐스러운 구름, 바람에 맞춰 춤을 추던 푸른 잎사귀들, 가을을 준비하는 9월의 그 시간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선명히 기억될 거란 것을 말이다.




 현악기 중 가장 대중적인 악기를 꼽자면 단연코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기타를 꼽을 것이다. 그중 바이올린만이 품고 있는 분위기와 느낌은 벅차오르는 인간의 예민한 감성을 세밀히 표현하기에 알맞다. 이러한 것들을 극대화한 바흐의 샤콘느는, 참을 수 없는 우울감을 분출한 음악이라 여겨진다. 휘몰아치는 듯한 활의 움직임, 끊어지지 않는 음들의 흐름은 당시 몰아치던 감정으로 힘에 겨웠던 필자의 심정을 대변해 주었으며, 정경화 씨의 강렬한 연주를 통해 음악이 마치 나 대신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비단 눈물 흘리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닌, 소리 내어 터뜨린 울음과 같은, 너무나도 솔직한 감정을 사람의 흐느낌이 아닌 음악이 쏟아내고 있음을 느꼈다.

 힘들었던 과거를 투영하여 바라본 음악의 형태가 바흐의 음악이라는 점이 필자에겐 운명처럼 느껴졌다. 클래식 음악의 흐름에 스스로를 투영했던 적은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와 함께 들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과 ‘베토벤 전원 교향곡’ 뿐이었고, 다시금 클래식에 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된 곡이 바흐의 샤콘느라는 것이 신기했다. 이에 관해선 분명 이유가 있겠으나, 아직은 알 수 없을 이유 또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 샤콘느


 ‘바흐 샤콘느’, 물론 누군가에겐 별 의미가 없는 곡일 수 있고, 특별하지 않은 곡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 있어선 너무도 요동치던 마음의 갈피를 다잡아준 음악이라 단언할 수 있으며 동시에 바로크 음악을 향한 관심과 바흐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 무엇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분의 시간 동안, 힘들었던 필자의 마음이 안정되어 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던 선물과도 같은 곡이었다. 덕분에 비탈리의 샤콘느, 이루마의 샤콘느도 알게 되었으니 정말 선물처럼 다가온 곡이 아닐까 싶다. 글을 마무리 짓는 지금의 이 순간 역시 바흐의 샤콘느와 함께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내일 새벽에는 바로크 시대로 떠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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