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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Mar 24. 2023

우울한 행복

오만 - 1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오만과 편견, 역시 좋은 책이다. 첫 문장이 굉장히 유명한 책이긴 하지만 어차피 동아리 사람들은 왜 유명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대학교 동아리방 갈색 소파 위에 앉아있다. 소파라고 해봤자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앉을 때마다 딱정벌레 대여섯 마리 으깨지는 소리가 나는 낡고 두꺼운 갈색 가죽으로 등받이를 덧댄 교회 장의자지만 말이다. 언제부터 있던 소파인지도 모르고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듣기론 5층에 있는 웬만한 동아리방에 하나씩 있다고 하니 희소가치가 뛰어난 물건도 아닌 거 같다.

 동아리방은 1층에 있다. 동아리방 전용 건물이긴 하지만 1층에 방이 있는 동아리는 우리뿐이다. 덕분에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학생들, 학기가 시작될 무렵엔 어슬렁거리다 관심을 가지는 새내기 신입생들도 많다. 동아리방 위치가 좋아 지원자가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자부심을 느끼는 선배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도통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선배들 대다수는 국가가 어떻고, 사회가 어떠니 하는 말들 없인 입에 가시가 돋는 사람들이다. 소파에 앉아 그들의 토론을 듣고 있으면 그동안 내가 으깬 딱정벌레가 몇 마리 정도 될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한 번은 일본의 버블경제가 한국에 미친 영향 따위의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일 때 나는 동아리방을 나와 5층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내가 나가는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건물이라서 4층쯤 올라갈 때는 숨이 가빴다. 대학생들의 등록금은 과연 어디로 쓰이나에 대한 고찰을 하며 문이 열려있는 다른 동아리방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아주머니 말대로 우리 동아리방의 소파와 똑같은 의자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사실 완벽히 똑같지는 않았다. 등받이를 가죽으로 덧댔기에 소파라고 하는 거지 이곳에 있는 장의자들은 가죽 등받이가 없었고 덕분에 소파가 놓인 동아리방의 느낌보단 작은 교회당의 느낌을 풍겼다. 엄숙하다고는 할 수 없으며 초라하다고도 할 수 없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초라함에 가까운, 비루한 느낌의 작은 교회당들이랄까.

 마침 노을이 지는 데다가 바람 없는 6월 날씨의 오래된 건물 복도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고 습한 기온 탓에 괜한 짜증이 밀려왔다. 짜증이 나서 그런지, 교회당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땀 냄새가 가득할 것만 같은 유도 동아리방을 지나 왼편에 보이는 기독교 동아리방이 시야에 들어오자 한번 들어가 봐야겠다 생각했고 안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지 않은 채 닫힌 문을 열었다.


 안에 있던 것은 인간 하나를 만들고 있던 인간 둘이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어온 줄 알았다. 분명 유도 동아리는 옆방인데 왜 여기서 유도를 하고 있지? 환히 켜져 있는 형광등과 자연스레 뒤엉킨 둘의 모습 덕분이었으며 우연이겠지만 유도복과 유사한 색깔의 옷을 입고 뒹굴고 있어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뒷면에 ‘Virginia Street’라고 적혀있는 흰 반팔티와 다리에 비해 길어 보이는 아이보리색 면바지를 입었고, 여자는(밑에 깔려 있어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푸른색 반팔티인가 원피스인가를 겨우 입고 있었다. 만약 옷을 벗고 있었다면 레슬링 동아리였으리라 착각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5층의 침묵을 깨는 남자의 당황스러운 기침 소리는 땀에 젖은 아이보리색 면바지를 끌어올렸다. 다리에 비해 길어 보였던 이유가 바지를 내리고 있어 그리 보였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가라고 고함치는 여자의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둔 채로 방을 나왔다.


 찐득한 땀 냄새와 함께, 여자의 원피스 안쪽에서 흘러나온 밤꽃 냄새가 열린 방문을 통해 복도로 분출됐다. 또한 낄낄거리는 나의 웃음소리는 오래된 5층 건물에 생기를 주었고 붉었던 노을을 좀 더 붉게 만든 듯했다, 사실 나는 방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봤던 게 유도하던 남녀였으니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맘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들어가지도 않은 방에서 섹스하는 남녀를 짧게 관찰했으나 막상 그보다 더 보고 싶었던 건 의자였다. 사이좋은 원숭이마냥 꼭 붙어서 바닥을 나뒹구는 남녀를 관조하고 있었을 비루한 교회당의 장의자 말이다. 의자 대신 엉켜있는 인간들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약간은 억울했지만, 얼핏 본 그곳의 의자는 기독교 동아리방이라 그런지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어쩌면 그 의자가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을 정도였으니까. 인간의 행위를 지켜보는, 그러나 인간이 앉아 쉼을 누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그러한 신 말이다.


 막상 성경에도 자손을 번성케 하라는 말도 있으니 어쩌면 교회당 바닥에 누워 자신 앞에서 섹스하는 인간들을 보며 흐뭇한 마음을 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신성모독적 생각을 하며 여러 교회당을 지나 5층에서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여닫이 방문을 열고 다시 동아리방으로 들어갔을 땐 아쉽게도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봤고 작년에 비해 이마가 넓어진 남자 선배가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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