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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Apr 09. 2023

우울한 행복

오만 - 2

“야 찬준아, 넌 어떻게 생각하냐?”

 강찬준, 내 이름이다.
“뭐가요?”

 신고 있던 흰색 퓨마 운동화를 왼쪽부터 벗으며 물었다.
“일본 경제 내수시장의 발전은 뭐로부터 온 것 같냐고”
“저 경제, 사회 이런 쪽 잘 모르는 거 아시잖아요”

 아직도 일본 이야기다. 일본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너도 알아야 돼. 이런 게 진짜 중요한 거야”

 넓어진 이마를 쓸어 넘기며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선배였다. 주위의 몇몇 선배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병신들.



 동아리방은 넓은 편이다. 열댓 명은 넉넉히 앉을 만한 정도로 공간적 여유가 있고 평소에 강의가 끝나고 다음 강의를 들으러 갈 때까지의 공강 시간이 긴 학생들이 쉬러 오는 경우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대학의 모든 강의가 끝난 지금 시간대에 있다는 건, 할 일이 없거나 자신의 의미 없는 소속감을 증명하고 있단 것 둘 중 하나다. 당연히 나는 할 일이 없는 축에 속했다.
 신발을 벗고 소파에 앉으려 했으나 이미 소파는 여름방학이 되면 바꿀 본인의 헤어스타일에 관하여 쫑알거리는 스무 살 여자 둘과 스물다섯 복학생 형에게 점령당해 있었다. 나머지 앉을만한 곳도 마땅찮았기에 이마가 넓은 선배와 그의 동조자들이 앉아있는 방 오른쪽 구석에 가 앉았다. 혼자 떨어져 앉기는 민망했기에 차라리 선배들 쪽에 앉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바닥은 차가웠다. 옆의 선배들은 애국자다운 태도로 옆 나라에 대한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고 곧 끝날 줄 알았던 토론은 한국전쟁으로 주제가 변경되었다. 왜 혼자 앉지 않았을까라 후회했다.

“형, 형은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음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때 생기는 대화의 공백에 끼어든 뒤 무심한 말투로 질문했다.
“어? 뭐가?”
“신은 결국 의자가 아닐까요?”

 다른 이야기 좀 하라는 뜻이었다.


 선배들은 결론을 내지 못했고 내가 내린 결론은 ‘신은 변태’라는 것이었다. 동방에 있는 열 명 남짓한 사람들 모두 공감했으며 몇 분 전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무관심과는 달리 이번엔 흥미롭단 시선들을 쏟아붓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히죽거리며 1층에서 5층으로 뛰어 올라간 몇 명이 있긴 했지만 알 바는 아니었다.


“으 더러워. 왜 하필 그런 데서 하는 거야. 생각이 없나?”
 항상 스키니한 옷을 입고 다녀 남자 선배들에게 인기 많은 고학번 여자 선배가 물었다.
“그냥 급했나 보지”
 가끔 스키니한 옷을 입고 다니지만,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 없는 고학번 남자 선배가 답했다.
“그래도 웃기지 않아요? 동방에서 떡치다 찬준이 형한테 걸리고”
 종종 내 자취방에 놀러 가고 싶다 말하는 한 살 어린 스물한 살 과후배였다.
“난 땡큐지”
 남녀의 섹스를 목격해서보단, 선배놈들의 쓸데없는 토론을 절단할 수 있었음에 대한 땡큐.




“맞다 형, 저 오늘 형 여자친구분 봤어요”
“어디서?”
“그 어디냐 정문 앞 버스 정류장에서?”
“몇 시쯤에”
“4시에서 5시 사이인데.. 아니다. 5시는 넘었던 거 같아요”
 오늘은 금요일이고 여자친구는 금요일 수업이 없다. 학교에 올 이유가 없다.
“어. 이따 보기로 했어”
 거짓말이다. 오늘 만나자는 약속은 없었다.
“형이랑 형 여친분은 진짜 사이좋은 거 같네요. 부럽다!”
 후배의 말을 무시하고, 오늘 학교에 온다는 연락이 있었는지 확인할 심산으로 자연스레 핸드폰을 들어 여자친구와의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형”
“고맙다”
 그런 연락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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