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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Mar 30. 2023

나의 샤갈 너의 피카소

다시 만난 화가

 모더니즘 화가들이 으레 그렇듯 마르크 샤갈 역시 얼핏 아는 정도의 화가였다. 그렇게 얼핏 알던 와중 아마 2012년도 겨울 즈음, 가족과 함께 ‘나의 샤갈 너의 피카소’ (제목이 확실친 않다) 전시회를 다녀온 뒤부터 에곤 쉴레와 동급으로 정말 좋아하는 화가가 되었다. 아 물론 제일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화가는 현재까지도 당연하게 반 고흐다.

 그렇게 8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2020년 여름이 되었다. 좋아하는 화가지만 그의 삶에 대해선 궁금하지 않았고 알 필요 또한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딘가의 도서관에서 책장 사이를 거닐다 오른쪽 책장에 꽂혀있는 상당히 두꺼운 두께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달콤 쌉싸름한 와인이 연상되는 버건디 색깔의 책등에는 ‘샤갈’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인쇄되어 있었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책을 뽑아 들었다. 그 자리에서 읽기엔 무리여서 대출한 다음 2주 정도의 시간 동안 전부 읽었다. 원래 책을 읽을 때 한 번에 정독하는 걸 선호하지만 당시 시간을 할애해야 했던 다른 굵직한 일들이 많았기에 일정과 일정 사이, 비는 시간마다 짬짬이 틈을 내어 읽었다.



 민음사에서 2010년 발행한 샤갈의 전기였다. 유치원 초등학생 시절 동화책 분량으로 읽은 위인전과는 아주 달랐다. 훨씬 자세했고 훨씬 두꺼웠다. 망설임 없이 취미란에 독서를 적을 만큼 독서를 즐기는 편이지만, 머리 좀 굵어진 이후론 개인의 인생을 한 권의 책에 담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있어 전기문을 찾아 읽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좋아하던 화가의 이름 때문이었을까, 두꺼운 두께의 책을 향한 도전 의식 때문이었을까 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읽게 된 샤갈의 전기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소개하는 것 이상으로 필자에게 영감을 줬다.


 글로 쓰인 그의 인생과 작품, 벨라와의 사랑은 필자가 어릴 적 눈에 담았던 샤갈의 그림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화사하면서 꿈꾸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그의 여러 작품이 눈에 선했다. 모든 그림엔 스토리가 있는 것처럼 배경을 알게 되고 그의 인생을 알게 되니, 샤갈이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연유에 관해 인정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보이는 사진과 그림들은 조금이나마 그의 생각을 확인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유약한 소년, 가난한 화가 지망생 청년 마르크 샤갈이 피카소와 마티스에게 인정받는 동료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책을 읽은 후 저마다 느끼는 감상을 다르겠지만 한 가지는 공통적으로 느낄 것이다. 인간은 성장한다는 것을. 말년에 주체적이지 못했던 샤갈의 모습이 아쉬움을 자아낼 순 있어도 예술에 국한하여 서술하자면, 그는 깊었다. 몽환적인 색채와 꿈의 신비로움을 곁들여서 말이다.




 도서관에 반납 후 같은 책을 구입했다. 두꺼운 양장본인 만큼 일반 책에 비해 값이 나갔지만 개인 소장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또다시 3년이 지났다. 몇 주전 오래된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나의 샤갈 너의 피카소’ 전시회 이야기도 나눴다. 2012년, 가족과 함께 전시회를 다녀오고 몇 달 후, 우연하게도 친구들과 또다시 갔다. 해당 전시회엔 샤갈과 피카소를 포함하여 세잔, 몬드리안, 마네, 앤디 워홀 등 미술사 거장의 작품이 미술관을 가득 채웠었다. 첫 관람 땐 솔직히 전시회에 감탄하느라 바빴을 뿐, 작품 하나하나에 집중하진 못했다.

 앤디 워홀과 피카소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함과 몬드리안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던 기억은 난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두 번째 관람에선 오직 샤갈이었다. 첫 관람 당시에도 굉장히 몽환적이라 생각했던 작품들과 다시금 마주하니 왠지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샤갈의 작품들이 있는 전시관에만 머물렀다. 총 다섯 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었던 그 전시회장에서 친구들은 걸음을 재촉하며 여러 작품을 관람하였지만, 몰입한 것인지, 몰입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그때의 나는 샤갈에게 온 시선을 빼앗겼다. 첫 관람과 재관람의 차이가 큰 전시회는 이것이 유일했고, 문화생활로 범위를 넓혀보면 아직까진 라라랜드와 함께 유이한 경험이다.




 인간에겐 까닭 모를 감정의 이끌림이 존재한다. 그리고 필자에게 미술로선 샤갈이 처음이었다. 그 처음은 무의식 중 이어져 전시회 재관람 이후 8년 뒤 여름, 도서관 책장에서 이유 모를 이유로 인해 샤갈 전기를 뽑아 들던 순간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또다시 이어져 1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환상과 같은 경험으로 남아있다.



마르크 샤갈 - 나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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