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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Apr 12. 2023

뱅크시 : The Good Hipster

비판하는 미술

 11학년 당시 그래피티에 빠졌다. 라카를 들고 담벼락에다 자아를 분출하고 싶었지만, 그 정도의 깡은 없어 학교 뒤편 나만의 공간에 종이박스를 찢어두고 소심한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래피티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힙합문화를 좋아하게 되고, 트레인(그래피티의 종류)을 하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고 나서다. 차츰 그래피티 및 스트릿 아트에 관해 알아가다 보니 한 인물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인물의 이름은 Banksy,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현대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그런 아티스트다.


 이름인 Banksy는 가명이다. 자신을 공개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 그는 백인 남성, 영국인 정도를 제외하면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다. 처음에 이름을 듣곤 은행을 의미하는 Bank가 생각나서 돈이 엄청 많은 사람인가 했는데.. 아마 돈이 많긴 많을 것이다. 작품 하나에 몇억씩이나 하니 돈을 많이 벌 수밖에..! 어쨌든 뭔가 멋있는 이름인 것은 틀림없다.




 그래피티라는 예술의 특징은 짧은 시간 내에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완성한 장소에서 튀어야(?) 다. 그러기에 뱅크시도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이 짧다. 스프레이를 사용해서 벽에 그림을 그리지만, 스프레이만 쓰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모양에 맞춰 박스를 자른 그림틀 같은 걸 활용하여 모양 안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방식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 식이면 그냥 벽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모든 화가와 예술가들은 작가 본인의 생각 및 신념을 작품에 녹여내려야 한다. 그리고 작품을 마주하는 대중, 청중, 독자에게 관철시켜야 한다. 뱅크시가 유명해진 이유 또한 대중들이 바라보는 작품 속 담겨있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뱅크시의 가장 대표적인 신념은 ‘반전’이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2014년작 ‘풍선과 소녀’는 시리아의 반전 캠페인을 위한 것이고, 팔레스타인을 위한 작품인 ‘병사와 소녀’, ‘Donkey Documents’도 이를 증명한다. 그냥 캡처한 뒤, 인쇄하여 내 방 벽에 붙여둔 ‘꽃을 던지는 사람’과 같은 평화를 의미하는 작품도 있으며, 최근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우크라이나에 방문하여 평화를 상징하는 작품들을 그리는 것들로 보아 ‘반전’이라는 주제가 뱅크시의 중요 신념이고 그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가치임을 알 수 있다.



 스트릿 아트가 메인 스트림에 반항하는 반골 의식에 바탕한 것임을 알고, 뱅크시 역시 반전과 더불어 자본주의 비판과 같은 주제의 작품을 창작하고 그것들을 통해 유명세를 얻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의문점이 생긴다. 돈을 비판하는 사람이 돈을 만지고 부를 누리는 것이 뭔가 모순이지 않는가? 데미안 허스트 같은 상업성 짙은 예술가들을 제외한다곤 치더라도 어찌 보면 뱅크시는 그러한 반골 의식에, 특히 상업성을 추구하는 현대 미술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 생각하기에 그의 유명세, 부의 근원에 관하여, 과연 그런 것들을 비판하는 그가 정작 그런 것들을 소유해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들의 주제의식과 모순되는 그의 존재 자체가 현대 미술을 비판하는 따가운 가시와 같은 것이란 생각이다. 만약 뱅크시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공개한다면 모순으로 점철되는 현 상황이 하나의 인간이 누리는 부와 명예로 변모되어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실된 예술가가 자신의 신념보다 세상의 유혹이 더 거대함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임을, 모순에 모순을 더해 역설로써 세상을 향한 질타를 이어가는 그의 작품과 존재 자체가 이에 대한 증거다.



 그가 작품에 자주 사용하는 캐릭터인 쥐. 현대 대중문화예술의 중심에 있는 디즈니의 상징 미키마우스를 비꼬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예술과 미술을 의미하는 영문 ‘ART’에 관한 애너그램으로 ‘RAT’을 이용하여 미술계를 비판하는 것이란 해석이 적어도 필자에겐 더 의미 있게 와닿는다. 바다에 살면서 바다를 벗어나고픈 고래와 같은 뱅크시,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남기며 끝까지 자신을 숨기길 응원한다.





Bank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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