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데미안 샤젤을 음악 영화감독이라 해도 문제없을 것 같다. '위플래쉬'부터 이어진 재즈 감성은 할리우드 골든 에이지를 다룬 '바빌론'까지 이어졌고 그런 '바빌론'은 재즈를 포함한 여러 장르 음악을 배경 삼아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를 다룬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흥행은 하지 못했다. '라라랜드'로 최연소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감독도 관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단 증거다. 영화의 형식이 군상극에 좀 더 가까웠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흥행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영화는 아니라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헌사라는 평과 어울리는 영화 '바빌론' 개인적으론 상당한 수작이라 생각한다.
고전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좀 보는 인간이라는 티를 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1920년대에서 30년대로 넘어가는 그즈음,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는 시대와 그에 따른 인간들의 심리 변화를 잘 보여줬지 않았나 싶어서이다. 특히 잭 콘래드 역할의 브래드 피트가 보여준 연기는 박수받을 만하다. 톰 크루즈, 디카프리오와 함께 마지막 무비 스타의 대명사와 같은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주연 배우인 마고 로비와 할리우드 신인 디에고 칼바에 비해 분량은 적었지만, 무언가 절제되고 결여된 인물의 상을 뛰어나게 묘사했다. 영화 관람 후 만나고 싶은 인물을 꼽으라면 그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묵직하면서도 싫어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했다. 마고 로비의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의 강렬함이 이곳에서도 빛을 발했다. 디에고 칼바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정도 규모의 영화에 처음 참여하는 것 같지 않게 브래드 피트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고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생각되는 만큼 영화에 가장 잘 어우러진 인물이 아니었을까 한다.
여러 갱스터 무비와 선정적인 것에 익숙한 필자이기에 영화의 수위 측면에선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없었다. 다만 인물들의 전개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어 스토리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렵단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시적으로 무성에서 유성으로 넘어가는 영화사적 흐름이 메인이고, 그에 따른 사건사고들이 '바빌론'이란 영화를 구성하지만, 정통 드라마 스타일에 익숙하기도 하고 타 영화들에 비해 많은 타임 스킵이 필자의 몰입감을 살짝 방해했다.
그러나 데미안 샤젤 대단한 사람이다. 그의 엔딩은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 마누엘이 눈물을 흘리는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에 대한 헌사라는 문장과 걸맞은 감동의 집약체였다. '라라랜드'와 '위플래쉬'의 엔딩과 같은 몰입을 불러일으켰다. 아는 만큼 더 보인단 말이 잘못된 우월의식에 빠질 염려가 있어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영화 '바빌론'을 감상하고 엔딩을 볼 때면 정확히 부합하는 말인듯싶다.
할리우드 골든 에이지의 명작 중 하나인 '사랑은 비를 타고'가 꿈을 향한 행복을 다뤘다면, 이와 같은 꿈을 바랬어도 시대에 뒤처지고 현실에 잠식된 이들의 씁쓸한 향수를 다룬 '바빌론'. 고대 바벨론과 같이 무너질 왕국에서 불투명한 목표를 향해 손 뻗는 그들은 우리와 닮았다. 특히 변하는 시대 속에서 숨 쉬고 사랑을 추구하는 것만은 완전히 동일하다. 다만 우리는 인생을, 그들은 영화를 말하는 것이 다르다. 아니다. 어쩌면 그들의 인생이 영화일지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도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헌사다. 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인지라 '바빌론'을 통해 영화 인생에 대한 고민이 이전보다 짙어졌으니 빠른 시일 내에 '파벨만스'도 재관람해야겠다. 영화, 단어가 주는 예술성을 떠올리며 또 다른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삶을 경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