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으로 걸어가며 뭘 먹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라면 이야기를 했어서 그런지 면요리를 먹고 싶었다. 라면은 안된다 했으니 2순위는 파스타였다.
“파스타 좋아해?” 학교 앞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며 내가 물었다.
“응 좋아해”
“그거 해줄게”
“좋아! 무슨 파스타일까?” 키가 작은 그녀와 함께 걸으며 대화할 때 그녀와 눈을 맞추려면 나는 고개를 좀 숙여야 했고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야 했다.
“좋아하는 거 있어?”
“다 좋아. 그런데 지금은 부드러움 좋아” 그녀의 베이지색 트렌치코트가 바람에 펄럭였다.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대답했다.
종종 가는 자취방 근처 마트에 들렀다.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파마산 치즈 가루를 샀다. 그녀는 파스타엔 와인이 필수라며 마트 바로 옆 편의점에서 만 원짜리 레드와인 한 병을 샀다. 당연히 까베르네 소비뇽이었다. 자취방에 말벡 와인이 한 병 있었지만 집들이 선물이라 생각하여 사는 걸 말리진 않았다.
“찬준, 나도 이쪽에 살아” 편의점 봉투에 와인을 담아 들고 있는 그녀였다. 자취방 건물이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살아 나” 그녀는 손가락으로 건물을 가리켰다. “찬준집은 어디?”
“거의 다 왔어”
“우리 가까운 곳 살고 있었네” 그녀는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자취방 건물 1층 주차장에 들어서자 그녀의 표정은 놀란 사람의 표정으로 변했다.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찬준 여기 살아...?”
“응” 1층 현관의 비밀번호를 쳤다. 문이 열렸다.
“언제부터?” 그녀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었다.
“올해 스무 살 되고부터” 내가 앞장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봉투를 부스럭거리며 날 따라왔다. “잠깐만 기다릴래?” 201호 앞에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 던져놓은 옷가지를 세탁기에 집어넣고 열려있는 옷장을 닫았다. 그것들 외엔 더러워 보이는 건 없었다. “들어와” 호실 문을 다시 열었다.
“깨끗하다 찬준 집” 신고 있던 로퍼를 벗고 내 자취방을 훑어본 그녀는 말했다.
“그냥 그런 편이야”
“책이 많네?” 그녀는 책상 위의 책 한 권을 들고 침대 옆 바닥에 앉았다.
“없진 않지” 나는 바로 파스타를 만들 준비를 했다. 침대에 기대 책표지에 집중하는 그녀를 보니 전에 빌려준 찰스 부코스키 시집이 생각났지만 웃지 않는 그녀에게 질문하고 싶진 않았다.
“맛있게 해 줘. 부탁해” 그녀는 왠지 억지로 기분 좋은 척하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같은 건물에 살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 같아도 놀랄 것 같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어찌 됐든 난 요리를 시작했다.
소금을 조금 풀은 물을 끓이고 스파게티면을 삶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마늘 5개를 꺼내 도마 위에서 얇게 썰었다. 칼질에 자신이 있진 않아 천천히 썰었다. 3개는 썰었고 2개는 다졌다. 자취방 가스레인지엔 두 개의 화로가 있다. 하난 크고 하난 작았다. 큰 화로에서 면을 삶았고 작은 화로에선 팬을 달궜다. 펜에 올리브유를 둘렀고 얇게 썬 마늘 3개를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볶았다. 2분 정도 볶다가 다진 마늘 2개도 함께 약불에 볶았다.
내 자취방은 조리시설이 있는 곳과 침대가 있는 곳이 미닫이 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일반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유리문이라 생각하면 된다. 불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 문을 닫고 요리를 하면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삶은 스파게티면을 냄비에서 건져 면수를 푼 국자 두 큰 술과 함께 마늘향 가득한 펜에 옮기며 문득 그녀가 뭐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면수와 올리브유의 비율을 2대 1 정도로 면이 펜에 눌어붙지 않게, 마늘향이 면에 잘 배도록 휘적였다. 이탈리아에선 페페론치노를 잘게 부순 뒤 넣어주지만, 한국에 사는 이상 청양고추를 구하는 것이 더 쉽다. 적당히 다진 반절짜리 청양고추를 펜에 투하해 면과 함께 4분 정도 휘적이면 된다. 4분이 지나면 접시에 옮겨 담는다. 파스탕 전용 접시가 없어 일반 플레이트에다 담았다. 두 개의 플레이트에 나눠 담을 정도의 적당한 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마트에서 산 파마산 치즈 가루를 넉넉히 뿌린 뒤 후추를 살짝 뿌렸다. 알리오올리오 완성이었다.
미닫이 문을 열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트렌치코트는 벗어 의자에 걸쳐두었고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맛있는 냄새야” 앉은뱅이책상을 펴는 나를 보면서 그녀는 말했다.
“맛도 있으면 좋겠네” 책상에다 알리오올리오를 옮긴 뒤 스푼과 포크를 가져다 놓으며 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