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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Sep 21. 2023

죄악을 그리다

초현실적 지옥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 많은 미디어들로 인해 서구권 이름에 익숙해졌어도 좀처럼 입에 감기는 이름은 아니다. 분명 같은 네덜란드 화가인 렘브란트는 거부감 없이 기억하는데 왜 그의 이름은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그의 화풍이 훨씬 더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으로 유명한 화가인 그는 그로테스크하고 초현실적인 화풍으로 유명하다. 그의 여러 작품들은 종교의 힘이 막강했을 당시 시대상으로 보았을 땐 불경스럽다고까지 할 만하다. 그가 누군지 잘 모르고 처음 작품을 감상했을 당시엔 19세기 초현실주의 화가의 작품인 줄로도 오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화풍과는 독보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엔 상상이 가미된 부분이 많다. 물론 모든 회화엔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지겠으나 보스의 작품과 일반적인 15세기 회화 작품을 비교해 봤을 땐 차이가 크다. 당시 작품 대부분은 성경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작한 것이 많다. 신의 자비,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같은 것들을 주제 삼아 신비스럽거나 아름답게, 웅장하게 위의 주제들을 묘사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라파엘로의 많은 작품들을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성경의 사건들을 다뤄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인간의 죄악을 주제 삼아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린 그림은 말 그대로 초현실적이다. 상상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초현실주의의 이미지에 정확히 부합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딱히 영향을 받은 화가가 없으며 타 국가로 여행을 갔던 적없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술이란 것은 전, 현세대의 작품과 작가들의 영향을 무조건적으로 받으며 점진적으로 발전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로선 그저 놀랄 수밖에 없다.


 초현실주의라는 것이 언급조차 되지 않은 15세기의 유럽에서 어떠한 영향도 없이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들을 그려냈다는 것은 그저 초현실적이다.


 초현실주의 대표 화가인 달리와 마그리트의 작품과 비교해 봤을 때도 그의 작품은 뒤지지 않는다. 좀 과장한다면 오히려 초현실주의 자체가 보스의 작품에서 출발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 세잔도 포함이긴 하다 - 특히 달리 같은 경우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도 있으니 말이다. 몇백 년 전 작품임에도 20세기의 작품과 큰 차이가 없고 세련된 점이 많다는 점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 일곱가지 죄악과 사말


 그런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은 주로 인간의 죄를 드룬다. 인간에게 라는 것은 어겨선 안 되는 규칙이자 신과 멀어지는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신에게 가까워지기 위해선 죄를 멀리해야 하며 선이라고 말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하지만 죄라는 것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달콤한 유혹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허나 그런 유혹에 넘어지고 죄악에 붙들려 삶을 지속하게 된다면 남은 건 지옥이라는 영원한 형벌뿐이다.


 살아 숨 쉬는 인간이 직접 지옥을 경험해 볼 순 없겠지만 신이라는 존재가 시선을 돌린 공간인 지옥에서 겪는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보스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좀 더 자극적인 면을 부각하여 죄의 결과를 묘사했고 인간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본인의 상상력을 가미했지 않았나 싶다. 특히 위에서도 언급한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과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최후의 심판'에서 그려진 죄의 형벌은 상당히 적나라하다. 마치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된 지옥을 떠올리게 하며 아마 보스 역시 단테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처럼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섬뜩한 모습은 죄를 짓는 인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결과적으로 잔인한 형벌과 죄로 뒤범벅된 세상의 모습을 그린 배경에는, 죄에 대한 주의를 강조하는 보스의 진실된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보스처럼 염세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은 나 또한 다분하다. 완벽을 추구하고픈 마음에 죄악으로 점철되는 불완전한 이 세상을 좋게 바라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안타까운 심정을 바탕 삼아 타인에게 선을 가르치고 죄의 결과를 알린다면, 내 개인적인 염세와 허무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가치 판단이 어려운 시대이지만 죄라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며 범죄와 같은 옳지 못한 행위에 대한 결과를 부여해야 한다는 인식은 이전보다 더 굳건해진 듯싶다. 그렇기에 죄의 결과와 신의 애통함을 담은 작품을 창작한 히에로니무스 보스에게 감사하다. 작품 속 숨겨진 화가의 의도를 깨달아 현실에 대입할 수 있다는 건 지금의 예술가들, 아니 모든 이가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미를 담은 일을 하기 전, 의미 있는 생각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히에로니무스 보스 Hieronymus Bo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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