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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Feb 24. 2023

광진구에서 만난 안톤 체호프

우리도 갈매기예요

 뮤지컬, 오페라, 콘서트 등을 제외한 일반 연극을 대극장에서 보기란 쉽지 않다. 희곡(연극)에 대한 수요가 위의 것들에 비해 큰 편이 아닐뿐더러 연극 볼 돈으로 영화 몇 번 더 보는 게 낫다는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말했다. ‘문학의 역사는 곧 희곡의 역사’. 현대에 들어서 문학 역시 비주류 장르에 속한다지만, 결국 지금의 영화, 드라마, 뮤지컬을 포함한 다수의 문화 활동이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와 같은 문학에서, 더 정확히는 희곡에서 시작되었다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인류 최초의 문학인 희곡이 얼마나 핵심적인 예술 활동이며 모든 문화 예술에서의 중요 갈래인지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곡을 쓰는 극작가 중 안톤 체호프라는 사람이 존재했다.


 안톤 체호프. 러시아 문학사의 빼놓을 수 없는 천재이자,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푸시킨과 견줄만한 대문호다. 그의 작품들은 매우 현대적이어서 시대를 초월하고, 그 덕에 연극영화과 학생들에겐 셰익스피어와 함께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같은 작가다. ‘체호프의 총’이라는 연극 법칙으로도 유명하며 희곡을 제외한 소설 또한 다수 집필했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을 꼽자면 단연코 희곡 ‘갈매기’다.




 23년이 시작된 1월의 첫 주, 서울 광진구의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체호프의 갈매기를 관람했다. 첫 문단에서 말한 것과 같이 시설 좋은 대극장에서 정통 연극을 관람할 기회는 정말 적다. 그래서 인터파크를 서핑하다 갈매기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하여 보니 이순재 배우님께서 연출하신 연극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배우님께 감사했다. 좋은 연극을 볼 수 있음과 함께 –이건 추측일 뿐이지만- 본인의 네임밸류 및 티켓파워를 스스로 인지하고 계셔서, 그에 맞는 좋은 장소에 극을 올리신 것 같았다.


유니버설아트센터 대극장




 그런데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배우가 연출하는 연극, 배우가 감독하는 영화를 터부시 한다. 그러나 그렇게 바라보는 건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의 오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연출자가 책임감 없이 설렁설렁 기획한 것이면 몰라도 하나의 극을 올리는 데에 투자된 시간과 열정을 그저 배우 한 명의 만용일 뿐이란 주장으로 치부할 순 없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극의 작품성을 기획자가 누군지로 판단하는 것이 오만이라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관람한 연극 갈매기는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물론 비평가들이 보기엔 다를 수 있겠으나 체호프가 극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찾는 재미도 있었으며 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추가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 말하는 만큼 배우분들의 열연은 필자의 시선을 고정시키는데 충분했다. 특히 쏘린 역의 주호성 배우님의 자연스러움엔 경탄할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이순재 배우님께서 연출하실 때 원작 희곡에 집중하여 극을 꾸리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희곡을 책으로 읽을 때의 느낌과 연극으로 관람했을 때의 느낌이 어느 정도 비슷했으니 적어도 내겐 배우님의 연출이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모든 게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다만 필자에게 상당히 좋은 여운을 남겼으며 기분 좋게 추억하는데 충분한 연극이었단 뜻이다.


 여러 인물 간의 관계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연인의 사랑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모든 인물이 선 · 악의 구분이 모호하고 거기에 빠져들어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차이가 드러나며, 수평적 구조라는 것이 인간관계 내에 실존할지에 대한 의문까지 던져졌다. 배우님들의 열연 덕에 많은 생각이 이어졌고 아직까지 하는 중이다. 이러한 고민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작품을 창작한 체호프는 천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또 다른 걸작 ‘벚꽃 동산’도 보고 싶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연극에 몰입한 필자의 후기를 감성적으로 마무리해 본다면 왠지 모르게 꼬스쨔의 심정보다 뜨레고린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라 말할 수 있겠다. 인간 두려움의 본질은 결국 무지로부터 시작된 불안, 그 불안에서 파생된 부정적 감정들의 현현이라 생각한다. (어둠이란 1차원적 요소가 이의 예시가 될 것이다) 또한 니나의 모습이 우리 모두와 맞물린다. 갈매기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모순되게도 자유를 갈망하며 안정을 추구하는 모습 말이다. 자유와 안정, 양자택일의 방법뿐일까..? 철없는 놈의 욕심이겠거나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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