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부임하신 교수님은 핑크색 섀도가 잘 어울리는 세련된 도시 여자였다. 젊은 나이임에도 쉽게 보기 힘든 통찰력과 예리함을 지닌 분이었다. 예상대로 학기 초 면담이 잡혔고, 그녀와 30분 남짓 대화를 나누었다.
명품 스카프를 두른 그녀는 도도하고 서늘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묘한 매력을 풍겼다.
나는 사람을 긴장시키게 만드는 그런 눈빛을 좋아한다. 그런 눈매는 단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면담 도중, 교수님은 증명서 사본 한 장이 필요하다며 4층 행정실에서 복사해 오라고 하셨다. 하필 간호학과 행정실이라니. 어떤 분위기인지 잘 알기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조심스레 노크하고 문을 열자, 직원들이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용건을 전하며 교수님의 지시임을 덧붙였다. 면담 중이라 한 장이 급해 다시 교수실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음에도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앞 건물 학생 전용 프린터기를 이용하라며 딱 잘라 거절당했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서려는데, J 직원이 간식을 먹으며 툭 내뱉었다.
"근데, 교수님 누구여?"
원형 테이블에 앉아 가볍게 던진 그 무례한 말투에 순간 핏대가 섰다. 거슬리는 기분을 억누르며 짧게 대답했다.
"아, 제가 앞 건물 가서 복사해 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황급히 앞 건물까지 뛰어갔다 왔다. 복사를 마친 뒤 다시 마주한 교수님은 숨이 가빠진 나를 보더니, 4층까지 오르내리는 게 그렇게 힘들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J에게 새로 오신 교수님의 존함을 언급할 필요도 없었고, 교수님께 행정실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왜 내가 앞 건물까지 뛰어갔다 와야 했는지 설명할 이유도 없었다.
J가 그토록 까칠한 이유는 내가 그 자리에 앉아보지 않았으니 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수많은 학생에게 지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그 권위의식이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교수님은 이곳에 적응하기 바쁜 분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사본이 제시간에 전달되는 것뿐이다. 나는 주어진 '역할'만 잘 수행하면 그만인 것이다.
입을 닫으면, 이렇게 세상은 조금 더 평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