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지기 벗 해피에게 쓰는 편지
추운 한파에 뜰장에서 태어나 형제들 품에서 버티다 형제들은 얼어 죽어가도, 어미 견과 함께 너는 그 형제들을 계속 핥았겠지.
그렇게 4개월을 또 견디다가 웬 낯선 이들이 너를 데리러 가려고 하니 공포에 오줌을 질질 싸며 울어 젖혔지. 어미 견의 불안한 눈빛과 너의 겁에 질려 뒤로 넘어갈 듯한 모습에 그 낯선 이는 짜증을 내었지.
너는 한 누군가의 죽음으로 삭막해진 집으로 왔어. 어머니와 할머니가 우울함에서 이겨내길 바라며 아버지 빈자리 대신 너를 데리고 왔지. 까만 귀에 수염처럼 주둥이는 검고 털은 삐쭉삐쭉 너무 못나서 정이 안 갔단다.
너는 영리한 아이여서 나름 연탄불 때우는 어머니 방에 뉘어주니, 네 발바닥에 처음 느껴보는 따뜻한 온기에 마음도 녹이고 '여기가 내 살 곳이구나' 하고 탐색도 했지.
나는 개가 싫었어.
너가 날리는 털도 싫었어.
나는 아버지가 그리웠고 망가진 모습으로 실연까지 당했어. 해피 너는 내가 주인인 걸 알고 최선을 다해 위로했겠지...
그런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너를 아프게만 했어.
집에 돌아오면 엉망인 내 방, 다 물어뜯어 버린 흔적들. 안경부터 폰까지 안 고장 내는 게 없었고 툭하면 이불에 실수를 하고 낯선 사람만 보이면 요란하게 짖어대는 너가 싫었어.
생긴 것도 못생겨서 산책 나갈 때 너가 창피했어. '너는 왜 그렇게 생겼니?'라고 속으로 물어본들 답이 돌아오기야 하겠어?
그럼에도 너는 내 옆에 붙어 있었어.
못난 건 말이야... 병든 나의 모습인 걸 알려주고 싶은 것 처럼 말이야...
그러다 할머니마저도 세상을 떠났지. 구급차에 하얀 천이 덮여 실려 가는 할머니 모습에 울부짖던 너. 낯선 이들이 할머니를 데려가자 공격적으로 변한 너. 고모는 시끄럽다며 너를 혼내자 나는 눈이 돌았어.
본인도 반려견을 키워 본 인간이 너만의 슬픔을 나무라니 화가 치밀어서 고모에게 대들었어.
장례가 치러지고 밤에는 집에 와 너와 잠들었지.
너는 한동안 우울증으로 밥을 먹지 않았어. 할머니 방을 쳐다보다가 그쪽에 누워 있기도 했어. 너의 그 모습 하나하나가 나에게 위로였다는 걸 아니?
아무런 대화가 흐르지 않는 너와 나의 침묵의 시간들이, 그 어떤 글과 그 어떤 시보다 아물게 하는 속도가 빨랐다는 걸 너는 알까.
그런 너가 이제 5살이구나. 너는 사고도 안 치고 대소변도 잘 가리는 멋진 친구란다. 얼마나 영특한지 개인기도 곧잘 하고, 너 닮은 모습 하나 없는 아들도 낳았지. 신랑은 너의 아들에게 '오태식'이라 지어주었지.
처음에는 혼자 독차지하던 사랑을 점점 나누어 가지게 되면서 너는 무언가를 포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봐.
'내가 나이가 들어서 어린 친구들이 좋구나' 하는 그런 눈빛으로...
가끔씩 나한테 안겨 솜뭉치 같던 그때 그 아기 같은 모습으로 있으면 나는 너의 귓가에 속삭여.
"사랑해 해피야, 나는 너를 가장 사랑해. 오해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가장 친한 친구야. 고마워, 항상 고마워. 그때 미안했어. 나를 용서하지 마."
너는 알아듣는지 '흐음' 하는 한숨 소리를 내며
'나 지금 편안해요'라고 비언어적 표현으로 소통을 하지.
사랑해 해피야
사랑하다 못해 너가 벌써 아파 노견이 되어 떠날 생각만 해도 눈앞에 안개가 생길 정도로 너를 사랑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