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날이 오면
한 달에 한 번, 약을 처방받으러 병원을 찾는다.
지역 인구는 갈수록 줄어든다는데, 도로에는 늘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
주변을 몇 바퀴나 맴돌다 빈자리에 겨우 차를 밀어 넣었다.
병원은 환자들로 가득하다.
진료실 벽마다 의사 선생님이 직접 쓴 시가 걸려 있다.
눈에 담은 지 벌써 1년이 넘어,
이제는 누군가 제목만 읊어주어도 대강 술술 이어 나갈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글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매달 같은 시를 읽는데도, 읽을 때마다 와닿는 온도가 다르다.
선생님은 환자들에게 호통을 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긴 이들은 불만 가득한 리뷰를 남기고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 모습이 그저 푸근하게 다가온다.
이유는 하나다. 내가 그의 글을 아끼기 때문일 테다.
진료 중, 연세 지긋한 선생님이 자신의 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신 적이 있다.
하루는 내게 시가 어떠냐고 물어보시기에,
문학은 잘 모르지만 내 나름의 감상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선생님은 그저 옅은 미소만 지어 보이셨다.
돌아오지 않은 그 대답에 내 생각을 덧대보자면,
아마 그분도 아시는 게 아닐까.
모든 글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또 하루는 당신의 시가 낭송된 후 합창단의 무대가 이어졌다며, 직접 무대에 올라 시를 낭송하는 영상을 보여주셨다.
무대 위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격한 기쁨이었을까, 아니면 긴장감이었을까.
나는 알 수 없는 그 떨림을 눈치채지 못한 척 가만히 넘겼다.
교보문고에 이름을 검색하면 책이 몇 권씩 나오고 오디오북까지 있는 그 화려한 이력이 처음에는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 나는 그가 가진 단 '한 가지'만이 탐날 뿐이다.
자신의 보물 같은 글을 덤덤히 내보일 때 반짝이던,
세월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은 그 '눈빛'이 부러웠다.
글을 대하는 태도와 자로 잴 수 없는 깊이감.
그것은 묵묵히 삶을 짊어지고 온 자의 무게였다.
자신의 글을 그토록 소중히 품을 줄 아는 작가의 모습에 나는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내게는 아직 내 글을 온전히 껴안을 줄 아는 '모성'이 없기 때문이다.
먼 훗날, 내 글을 자식을 껴 안듯 품으며 사랑하는 그 날이 오면,
그땐 지나가는 바람에게도 말을 붙이며 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