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일 : 22.06.12
내용을 찾아보고 가진 않는 편임에도 워낙 티켓팅이 어려운 인기극이라 관극 순서를 좀 찾아봤었는데, 룸알레포는 빅→스몰 순서로 보면 좋다길래 냉큼 하루에 두 개를 잡았다. 룸알레포는 '시리아'가 배경인 연극이라 룸서울보다는 그래도 덜 슬프지 않을까했는데 웬걸, 연달아 보고 오열하면서 나왔다. 룸서울과는 다른 결의 오열을 불러일으키는 룸알레포.
인간 개인이 피할 수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운명의 소용돌이는 언제나 가혹하다. 선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 화이트헬멧도 예외는 아니다. 선한 마음과 용기에도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고 마음이 답답해지는 순간들이 다가오면 그 처음의 선한 마음은 지키기 어려워지고 더 큰 무언가를 향한 반발심이 든다. '내가 이렇게나 노력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세상이 가혹한가요'. 누군가 때문에 가족을 잃은 시민에게도 반발심은 당연하다. 지키지 못한 것들이 눈에 밟혀 무력해지고 화가 나다가 끝이 뾰족해져서 누군가를 겨냥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뾰족한 무기를 든 모두에게 각자의 명분이 있다. 한 명 한 명 그 이야기를 들으면 저 사람도 화날 만해, 그렇게 공감하게 되다가 문득 서늘해진다. 그 모든 공격은 어디에도 완벽한 악인이 존재하지 않는데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누군가가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그 누군가가 또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상처입힌다. 전쟁. 각자의 분노를 무기처럼 들고 서로에게 휘두른다.
그 모든 전쟁의 참혹함의 정점을 기억한 채 알레포 스몰을 본다면? 조금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는 전쟁을 아이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면?(알레포 스몰에서는 헬멧 A가 아이로 나온다). 아이가 원하는 건 정말 너무나도 소박하고도 당연한 그런 일상의 즐거움이다. 가지고 싶은 게 있지만 부모님을 위해 꾹꾹 참고, 그저 친구들과 놀고 싶을 뿐인 축구가 좋은 너무나 선량한 아이 한 명. 어른들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전쟁도 아이는 제법 잘 알고 있다. 상황 때문에 어른처럼 되어가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그리고 그 아이의 꿈을 들으면 마음이 정말 무너진다. 그 꿈마저도 하나도 거창하지 않고 너무 당연해서. 기꺼이 누릴 수 있어야 하는 일이 아이에게는 정말 솔직한 꿈이라는 그 사실이 더 전쟁을 가혹하게 느끼게 만든다. 모두가 명분을 가진 전쟁 속에서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아이 한 명.
그런 전쟁의 참혹함에 눈물을 흘려도 결국 인간은 너무 무력하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희망의 끄트머리라도 잡아보려 떠올리다 보면 헬멧 C가 떠오른다. 참혹한 상황에서도 선한 마음을 잃지 않은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목숨을 건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누군가가 마음이 흔들린다. 아이에게도 헬멧 C같은 사람이 있다. 전쟁을 멈춰주세요- 호소했던 어느 축구 선수.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아주 잠시나마 전쟁을 멈추게 하고 멋진 축구 경기를 보여준 그는 아이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펴주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선한 마음을 놓치지 않은 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래서 '바셋의 생일파티'를 기획한 배우분들과 스탭분들이 더 멋졌다. 내 마음속의 화이트 헬멧들. 영웅은 가까이에 있다. 서로가 서로의 영웅이 되어 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