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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Feb 08. 2022

쌓이기만 하는 기록에서 꿈꾸는 기록으로

저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다이어리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새해가 될 때마다 조그맣고 예쁜 다이어리를 구경하는 것이 큰 연례행사였죠. 여러 문구점을 돌아다니며 다이어리 구경을 했습니다. 오랜 고심 끝에 선택한 예쁜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기도 하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있을 때는 시험 계획을 세워두기도 했습니다. 스티커를 붙여가며 열심히 썼죠. 하지만 다이어리들은 보통 4월을 넘기지 못했고 흐지부지 되며 쌓여갈 뿐이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큰맘 먹고 당시 유행하던 프랭클린 플래너를 구입했습니다. 제대로 시간관리를 해보고 싶었고 커리어우먼 같아 보이는 멋진 플래너에 마음을 빼앗겼죠. 하지만 이 역시 꾸준하게 쓰는 것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매일 비슷한 학교 수업 일정을 빼면 일정이라고 할 것도 없었죠. 주로 책에서 읽은 좋은 구절을 옮겨 적거나 하루 일기를 간략하게 적는 정도였습니다. 2~3년 정도 쓰다가 방구석에 처박혔습니다.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할 때는 학습 플래너를 사용했습니다. 공부 계획을 적고 오늘 공부해야 할 것들을 적었죠.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을 쏟아내는 일기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꾸준히는 아니지만 이렇듯 계속 기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쌓여가는 기록들은 과거의 추억 이외에 큰 의미를 갖지 않았습니다. 다시 펼쳐보는 일도 없었죠.


임용고시에 합격을 하고 교사가 되자 저에게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관리하기 위해서 학교에서 교무수첩을 나눠주었습니다. 교무수첩에는 학교의 일정과 조종례 사항들,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할 사항들이 빼곡히 적혔죠. 교무수첩과 별도로 개인 적으로는 다이어리를 계속 사용하며 개인 일정과 일기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업무와 개인 일정을 별도의 수첩으로 관리하다 보니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학교 일정이 있는 날과 개인 일정이 있는 날이 즉시 연결되지 않았고 교무수첩은 주로 학교에 두고 다니기 때문에 집에 와서는 학교의 일정이나 정보들이 바로 파악되지 않았죠. 저녁에 학부모님의 연락을 받으면 상담이 어려웠습니다.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교무수첩은 학교에 있으니 내일 학교에 출근해서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점점 업무와 개인을 따로 관리하는 것이 불편해지던 참에 3P바인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독서모임 선정도서가 <성과를 지배하는 바인더의 힘> 이란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사면 간단하게 써볼 수 있는 3P바인더를 부록으로 함께 주었죠. 3P바인더는 강규형 이란 분이 이랜드 회사에서 사용했던 20공바인더를 응용해서 만들어낸 바인더였습니다. 그렇게 접하게 된 3P바인더를 통해 업무와 개인 사항을 함께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3P바인더는 하나의 상호명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20공바인더 라는 이름으로 통일하겠습니다.)


20공바인더는 링의 개수가 20 공인 바인더를 부르는 명칭입니다. 보통 3공, 6공 바인더는 문구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데 20공은 조금 특이했죠. 20 공의 좋은 점은 종이가 잘 찢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플랭클린 플래너는 3공 바인더라서 구멍 3개가 종이를 지탱하고 오래되면 아래, 위, 쪽의 구멍이 하나씩 찢어지곤 했어요. 3개밖에 안 되는 구멍에서 1개 찢어지면 종이는 금방 아슬아슬하게 덜렁거렸죠. 하지만 20공은 구멍이 1개 찢어지더라도 단단하게 종이가 고정되었고 종이를 20공이 함께 나눠서 지탱해서인지 찢어지는 것도 덜했습니다. 또 20공바인더는 크기가 A5 사이즈였습니다. A5는 A4의 절반 크기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성경책 크기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읽는 책의 크기이기도 하죠. 필기하기에 가장 좋은 사이즈이면서 읽기에도 편한 사이즈예요. 물론 여자들이 가지고 다니기에는 크기가 다소 큰 편이죠. 친구들이 저를 보면서 벽돌 들고 다니느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바인더의 두께를 줄이고 좀 더 얇은 서브바인더를 통해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20공바인더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혼자 써오던 다이어리, 플래너의 방법을 보완하여 나만의 방법을 만들어 갔습니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며 나에게 맞는 방법을 익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0공바인더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업무용 교무 수첩 내용을 바인더에 적기 시작했고 곧이어 개인 일기장도 바인더에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공부하며 떠오르는 생각도 바인더에 쓰게 되었습니다. 곧 바인더는 업무수첩이며 개인 일기장, 독서 노트이면서 아이디어 노트가 되었습니다. 내 모든 것을 관리해주는 비서가 하나 생긴 것이죠. 바인더를 쓰면서 점점 과거의 기록뿐 아니라 현재를 의식하게 되었고, 미래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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