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뒤통수 맞나. 그리하여, 관계란 무엇인가.
리스본의 '까싸 다 릴리'에서 살 때 난 누구보다 남아공 출신의 G와 폴란드 출신의 E 커플을 좋아했다. (G가 잘생기기도 했었다. 이런 속물 같으니라고. 하하!)
피가 펄펄 끓는 20대의 다른 하우스메이트들과는 달리 30대 중후반의 차분한 이 커플은 삶을 보는 태도나 생각이 우리와 비슷했다. 런던에서 오래 살았지만 삭막하고 복잡한 그곳이 싫어 자전거 여행을 시작, 프랑스, 스페인을 거쳐 리스본까지 내려왔고 우리처럼 까싸 다 릴리에서 리스본 생활을 시작했다. 아이만 없다 뿐이지 우리와 여러모로 비슷했기에 리스본의 여러 곳을 같이 다니며 관계를 쌓았고, 난 당연히 그들을 내 친구 리스트에 넣었다.
‘마마카라바나’ 프로젝트를 마치고 리스본으로 돌아온 우리는 아파트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그들 역시 다른 여행을 마치고 리스본으로 돌아와 아파트를 찾던 중이었다. 그래서 합의를 봤다.
같이 아파트를 구해서 살자!
미루를 데리고 아파트를 구하자니 효율적이지가 않아 곤욕스러웠는데, 그들이 있어 능률적이었고 마음도 든든했다. 또 워낙 미루를 예뻐했던 지라 좋은 하우스메이트가 될 거라 의심치, 정말이지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한참 뜨기 시작하는 리스본에서 아파트를 구하는 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 길거리에 나앉는 거 아냐? 점점 초조해지던 차 그들이 아파트 하나를 봤고 꽤 긍정적이라고 했다. 일이 있어 같이 보지 못했지만 사진만으로도 좋은 아파트였기에 난 그들을 믿고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다. 가까스로 그들 명의로 그 아파트를 구했고 (이게 결정적인 실수였어!)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음을 놓자마자 바로 날아든 SNS 메시지 하나.
우리 다른 여자랑 하우스메이트 하기로 결정했다.
한동안 멍하게 메시지를 바라봤다. 영어로 쓰인 메시지였지만 그건 영어가 아닌 외계어 같았다.
어, 뭐지?? 이 익숙한 기시감은??
아, 그래!! 데자뷔다, 데자뷔! 폰타네이라에서 피터와 모나 커플로부터 당했던, 그 편지의 데자뷔!
별다른 설명도 없고 미안하다거나 일말의 위로도 없는, 아주 드라이한 통보. 그 편지의 악몽이 되풀이되다니. 아뿔싸, 우리 명의로 할 걸 그랬구나!
적잖이 충격이었다. 피터와 모나 때도 이렇게까진 아니었는데, 꽤 마음을 준 친구들이었기에 그 충격은 배가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겁이 났다.
- 이거 이러다 패턴이 되는 거 아냐?
- 사람을 쉽게 믿는 내 성격을 탓할 수밖에 없겠지만, 혹시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거 아냐?
- 혹시 그들이 온갖 힌트를 주었는데도 내가 눈치 없이 캐치를 못 한 건가? 이거 내 대화법이 이상한 거 아냐?
나와 내 주변의 관계,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개념, 내 소통 방법 자체에 혼돈이 일어났다. 피터와 모나 커플에게 쫓겨난 이후 사람 조심할 거라고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또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다니. 그들과 주고받은 모든 메세지를 흩어보며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어긋난 건지 찾으려 했지만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이건 배신이야! 누가 뭐라 해도 이건 배신이야! 난 침 튀기는 송강호보다 더 말을 더듬으며 울부짖었다.
배-배-배-배, 배쒼이야, 배쒼! 배반형!!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씩씩거리는 호흡이 방의 벽을 뚫고 온 집에 울릴 것 같았다.
난 마음을 다스리고자 리스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전망대로 갔다. 바로 그라싸(Graca) 지역 꼭대기에 있는 Miradouro da Senhora do Monte 전망대로.
낑낑거리며 겨우 유모차를 밀고 올라와 바라보는 풍경. 노을빛의 리스본 하늘은 야속할 정도로 무심하게 예뻤다. 빨갛게 물들어 사정없이 반짝이는 테주 강의 빛은 너무 눈부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고 다닥다닥 붙은 지붕은 당장이라도 대화재라도 일으킬 것 같았다. 그리고 멀리 ‘4월 25일’ 다리가 앙상하게 화면을 가로질렀다. 유모차에서 미루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고 난 그 상팔자가 너무 부러워 더 슬퍼졌다. 칫, 미루야, 너 참 팔자 좋구나.
멍하니 벤치에 앉아 풍경을 봤다. 사실 그냥 멍 때리고 있었으므로 뭘 보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대신 질문에 질문이 이어졌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 질문은 노마드 삶의 필수 요건이다. 어딜 가든 그 여정에 대한 정당성을 찾아야 하니까. ‘왜 가냐’고 물었을 때 ‘그냥’이란 답은 단기 여행자에겐 자유의 이름으로 허락되지만 노마드에겐 어느 순간 공허함으로 전락한다.
블리브 미. 정말 그렇다.
이미 벌어진 일에 이유를 묻는 건 의미가 없었지만 앞으로의 행로에 대해선 다시 질문을 던져야 했다.
- 과연 여긴 우리에게 맞는 곳일까?
- ‘맞는 곳’이란 과연 있을까?
- 우리 스스로가 ‘맞게’ 만들어가면 될 것을, 공동체를 찾는 우리의 여행은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질문 속에 답이 있는 듯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렇게 또 피터와 모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화두를 던져준 G와 E에게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하나? 이 악순환은 언제쯤 멈출까?
세상 어딜 가든 삶은 관계의 전쟁터다.
살짝 허술하면 이용당하고, 살짝 방심하면 뒤통수 맞고, 살짝 부대끼면 곤란해지고, 살짝 불편해지면 피곤하고, 살짝 튀면 왕따 당하는, 모든 게 찰나 안에서 벌어지는 당신과 나 사이의 전쟁터. 이런 상황에서 상대와 정확한 선을 긋는다는 건 참 어려운 과제다. 어디까지가 문화 차이이며 개인 차이인지, 또 어디까지가 내 한계이며 수용해야 할 폭인지, 수많은 사건과 사고, 관계를 거치면서도 헷갈림과 고민은 반복된다.
무릎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도사의 눈을 가지고 싶다만,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음에도 나의 내공은 여전히 약하다. 과연 이 험한 세상, 누굴 믿어야 한단 말인가!
당하면 당할수록 도움을 주려는 사람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주고, 이 사람의 꿍꿍이가 뭔지 기필코 찾아내려는 내 자신이 싫어지지만, 결국 모든 일은 나 혼자의 일이 아닌 상대적인 일이다.
그저 관계에 최선을 다하고 뜻대로 안 되더라도 왜 그랬을까 자책하지 말 것.
그리고 그저 내 직감을 따라갈 것.
관계에 있어 아직까진 이게 내가 찾은 가장 현명한, 혹은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방법이다.
혹시 다른 방법 알거들랑... 알려주세요... 같이 공생하자고요...
P.S: 몇 달 후 그들은 사과의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관계는 다시 좋아졌다. 얼마 전 그들은 포르투갈 동부 카스텔로 브랑코 (Castelo Branco) 지역에 땅을 사 농장 생활을 시작했다. SNS를 통해 그 생활을 따라가고 있다. 그들의 건투를 빈다.
P.S 2: 내 첫 에세이 '착한 여행 디자인'에 쓴 몇 문장을 다시 가지고 왔다. 세상에나,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니!
All photos by Yellow D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