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 예비 엄마의 고민
2012년 11월 X일
타이머로 연결된 커피 메이커가 9시가 되자 쿠룩쿠룩 소리를 내며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아침에 못 일어나는 카밀이 궁여지책으로 고안해 낸 방법이다.
해롱해롱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커피 냄새를 맡으니 이건 뭐 커피 구름 위로 뛰어다니는 것 같다.
카밀은 준비된 잔에 커피를 따라 마시며 9시에 기상한 자신을 대견해한다.
‘이런 방법을 생각해내다니, 나 천재지 않아?’
‘응, 그래… 당신 천재야…’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지만 사실 이건 꽤 괜찮은 방법 같다.
문득 다시 눈을 뜨니 10시 반이다.
카밀은 옆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컴퓨터를 보고 있다.
그새 1시간 반을 더 잔 건가?
뱃속의 아가도 잠에서 깼는지 요동을 친다.
‘안 돼, 아가야… 넌 커피 마시기엔 아직 너무 어려…’
기지개를 쭉 켜며 커피의 유혹을 극복한다.
게으름 피기에 완벽한 날이다.
어제는 날이 좋아 무주구천동에 놀러 갔었는데, 오늘은 구름에 뒤덮인 하늘이 방안을 냉랭하게 만든다.
썰렁한 방 기운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이제 겨울이 코 앞까지 온 것을 느낀다.
이불에서 나와 둥굴레차를 끓이고 컴퓨터를 켠 후 메일과 페이스북을 확인한다.
이상하게 오늘은 그 흔한 스팸 메일 하나 없지만 반대로 페이스북의 담벼락엔 다양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누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에 피 토하는 분노를 표하는 한편, 누구는 어제 먹은 파스타 맛이 기가 막혔다며 인증 사진을 올리고, 누구는 날씨 때문인지 인생에 대한 염세적 철학을 읊고, 누구는 얼마 전 태어난 귀여운 아기의 사진을 올리고, 누구는 대학로 공연 소식을 전하느라 정신이 없다.
세상은 요지경…
가뜩이나 냉소적인 내 성격에 얼마 전엔 이런 생각까지 했다.
신자유주의의 기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대기업은 지구 곳곳에서 반인권적인 만행을 저지르고, 종교분쟁 및 지역 분쟁은 끊이질 않고, 기후 변화는 갈수록 심해지는데, 앞으로 결코 나아지지 않을 이 세상에 과연 뱃속의 이 아이를 내놓는다는 건 옳은 일일까?
나야 이미 40년을 살았으니 평균 나이를 80으로 봤을 때 반타작은 했다지만, 이 아인 지금 태어나면 한 세기가 넘어갈 때까지 살 텐데, 벌써부터 이렇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짓궂은 이 날씨 탓일까?
그래서 카밀과 난 이렇게 다짐했었다.
우린 아이 하나만 낳자고.
‘좋아요’를 누르는 사이 벌써 11시 반이다.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진안의 겨울을 바라본다.
이제야 해가 슬쩍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출출하다. 달걀 프라이나 만들어야겠다.
카밀에게 외친다. ‘배고파! 우리 밥 먹자!’
‘봄날은 간다’가 아니라 이렇게 나른한 초겨울의 진안이 간다.
이런 나른함도, 게으름도 아기가 나오면 다 사라지겠지.
즐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즐기자!
4주 남았다.
미루를 낳기 전 마지막 두 달을 전라북도 진안의 한 산골 마을에서 살았다. 행정 상 진안군이었지만 무주와 더 가까웠다. 가을에 내려가 겨울을 지냈고 예정일에 맞춰 친정으로 올라와 미루를 낳았다. (미루는 예정일보다 근 2주 늦게 세상에 나왔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평범한 산골이었지만 구석구석 아름다웠다. 형형색색 단풍은 말 그대로 눈이 돌아갈 만큼 어지러웠고 입동이 지나자 하얀 눈으로 덮인 덕유산 정상을 볼 수 있었다. 국내 여행은 많이 못 했지만 전라도의 산세는 항상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시골에 대한 로망은 진안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전에 여행하며 지냈던 시골에서는 이만큼 여유롭지 못했으니까.
남산만 한 배를 내밀며 늦잠 자고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산책 나가 단풍놀이하고,
햇볕 아래 책을 읽고,
집중해서 그림 그리고,
카밀은 나갈 때마다 어디서 그렇게 서리를 하는지 호박을 잔뜩 가져왔고,
그래서 호박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요리를 해 먹었고,
한 겨울 지인 집을 따뜻하게 해 줄 겨울 땔감을 패고,
처음 보는 산 길 끝에 흐드러지게 있던 구기자를 한 바가지 따와 차를 끓여 감기를 달래고...
자연의 잔인함과 시골살이의 고단함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유유자적 신선놀음이 따로 없던 진안에서의 두 달은 임신 생활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했고 아울러 시골살이에 대한 우리의 로망을 부풀게 했다.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던 날, 아파트촌에 묻힐 내 모습을 생각하니 진안을 떠나는 게 어찌나 싫던지...
이때 내가 했던 고민은 아직도 유효하다. (난 정말 진지했다! 혼자 진지 떤다고 핀잔도 들었지만,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중압감은 부모가 된다는 대명제 앞에 나를 누르고 또 눌렀다.)
급행열차처럼 빠르게 자라는 아이와
역시 급행열차처럼 격변하는 세상을 보면서,
아이에게서 얻는 행복만큼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내놓은 죄책감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고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혼자서는 개미만큼의 힘도 발휘 못 하는 미약한 인간의 존재를 한탄하고 또 한탄한다. 그래서 그렇게 연대를 찾아 돌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선 할 수 없으니 같이 하자고, 어디 한 번 같이 바꿔보자고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그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광화문에 나와 촛불을 들었을 거고, 스페인 남부 지방에서 만난 히피들이 자연으로 돌아가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을 거다.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우리가 유럽을 갔을 때 내걸었던 ‘자연 속에서 마음 맞는 이웃과 함께 오손도손 자급자족하고 예술 활동을 하며 사는 소박한 삶’은 아직 유효하다. 결코 소박하지 않은 이 거창한 꿈은 이제 그 형태는 살짝 바뀌었지만 근본적인 마음은 여전하다.
진정 유토피아는 있을까?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걸 꿈꾸는 난 어리석을까?
아무렴 어때.
꿈꾸는 자에게는 죄가 없는 걸.
작년의 살인적인 무더위만큼 추울 거라던 겨울이 부드럽게 지나갔다.
이제 봄이 오겠지.
그때의 내 걱정은 코나 팽! 하고 풀 휴지 조각이라는 듯 아이는 무럭무럭 반항하며 잘만 크겠지.
쎄 라 비. C'est la vie.
진안의 단풍을 보고 싶다.
문득 감기를 달래고자 마셨던 구기자차의 여운이 살짝 내 혀끝에서 맴돈다.
All photos by Yellow Duck.